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nontroppo Aug 02. 2016

아름다운 너의 눈동자

아름다운 이 별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너의 눈동자를 기억해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순식간에 이 빛나는 눈동자 한 쌍에 빠져버렸다. 당차게 보이기도 하고, 호기심이 가득해 보이기도 하고, 미래를 응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 결연해 보이기도 하다. 유명한 초상화에 나오는 사람처럼 어딘가 의연해 보이기도 하다. 

바다 건너에 사는 너를 만나러 가지는 못하기 때문에 나는 결국 정기적으로 사진을 받아보기에 이르렀다. 벌레를 사냥해 방문 앞에 놔준다는, 종이 가방 안이 마음에 들어서 나오지를 않는다는, 의자 위에서 온 몸을 뒤틀고 잠이 든, 움직이는 장난감을 잡으려고 애쓰는 너의 일상이 사랑스럽다. 눈에서 또륵또륵 굴러가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이 빛나는 눈동자를 한참 바라다보고 있다 보면 또 생각하는 눈동자 한 쌍. 

둘리, 너는 새카만 검은 눈을 가졌었지. 




온갖 종류의 동물이 많았던 우리의 집에 열 마리가 넘는 개 중 처음 들어온 개였던 둘리. 처음 키워보는 개에 마냥 설레 심혈을 기울여 이름을 골랐다. 그런데 둘리는 이미 원래 주인으로부터 불리던 이름이 있었고, 그 이름이 둘리라는 것에 조금 실망했다. 우리가 골라놨던 (멋있다고 생각한) 이름은 '파트라슈'였다. 어쨌거나 둘리는 우리의 1호 개가 되었다. 



둘리, 너는 달리기를 좋아했지. 둘리는 저녁마다 등대로 산책을 갈 때면 늘 우리가 30분은 넘게 걸어야 갈 수 있는 거리를 혼자 3번쯤은 왕복을 하고서야 직성이 풀렸다. 등대 가는 길에는 주인 모르는 무덤 한 쌍이 있어 늘 내가 지나갈 때마다 무서워했던 곳이 있었는데, 언젠가는 앞서간 둘리가 무덤 뒤에서 튀어나와 그대로 뒤로 넘어져 구를 뻔도 했었다. 우리 집의 다른 개들은 몰라도 둘리만은 늘 등대 산책을 함께했다.


둘리는 늘 이만큼 먼저 가서 우리를 기다렸다.

또 둘리, 너는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했지. 그때 살던 동네에는 해군 부대가 있었기 때문에 저녁마다 늘 애국가가 흘러나왔다. 둘리는 어느 날부터 애국가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마당에 있는 평상에 올라가 자세를 가다듬고 목을 길게 빼어 '아우- 아우-'하고 불렀는데, 우리가 집에서 지켜보는 것을 눈치채면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딴짓을 했다. 그러다 우리가 또 쳐다보지 않는 것을 보면 아무렇지 않게 노래를 했다. 내가 아무리 들키지 않게 창문으로 눈만 내어 둘리를 봐도 둘리는 어떻게 알았는지 금방 눈을 찾아 마주치고 노래를 멈췄다. 답지 않게 부끄럼이 많은 개였다. 




내가 등을 길게 쓰다듬어주면 팔자 눈썹을 만들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검은 눈으로 나를 바라봤던 둘리. 


내가 춤을 추자고 앞발을 잡고 일으키면 눈을 맞추고 같이 엉성한 스텝을 밟던 둘리. 


바다 건너 아기 고양이의 검은 동자를 보자니 그 속에 자꾸만 둘리가 보인다. 호기심 많은 고양이의 빛나는 파란 눈동자가 마치 우주 속에서 빛나는 은하수 같다면 둘리의 눈동자는 주변의 별도 빨아들일 것처럼 검게 빛났다. 

둘리야,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져 내릴 것 같은 너의 눈동자를 사랑했어.





그런데 여기에는 빛을 잃은 눈동자가 너무 많다. 


한 때는 둘리와 같이 반짝였겠지만 지금은 눈물마저 바싹 말라버린 눈동자들. 둘리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사람과 제대로 눈 마주쳐 본 적이 없을 아이들. 화면 너머에서, 가끔은 길에서 마주치는 그 눈동자들을 보고 있으면 그때도 늘 둘리가 생각난다. 



"한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마음을 내줘서 너를 기쁘게 만들어서 미안해. 아무것도 모르고 내어준 마음을 거둬가서 그것의 제곱으로 너를 슬퍼하게 만든 것은 더 미안해. 도대체 우리가 뭐라고 너희들의 눈에서 빛을 앗아가서, 아프게 만들어서, 무섭게 만들어서 미안해."



어쩌면 이러한 사과로는 한참 모자라다.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지. 그렇다면 이 별이 아름다운 이유는 수많은 둘리의 눈동자 때문이라고 말할래. 


너희의 그 눈동자가 언제까지나 반짝반짝 빛날 수 있었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밝게 빛나는 이 두 눈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으면.

저 멀리 다른 별에서 이 지구를 보았을 때, 빛나는 수 만, 수십 만, 수백 만의 눈동자가 반짝이는 것이 보였으면.

매거진의 이전글 8. 강아지의 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