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소녀시리즈
나는 원래 강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어렸을적 큰 떠돌이 개가 나를 쫓아온 기억때문에 무서워했다.
그게 언제쯤..바뀌었을까. 맞아 군대에 있을때 였다.
군생활을 하면서 '포성이'라는 군견이 있었다. 사실 군견이 아니라 아주 멋지게 생긴 사모예드녀석이었다.
훈련소를 마치고 배정받은 부대로 가는 차안, 나는 그녀석을 처음 만났다.
아주 작은 아기였다. 아니 아기강아지였는데 눈빛이 달랐다.
우리 둘은 상황이 매우 흡사했다.
1. 엄마에게 떨어져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잡혀가고 있다는 점
2. 둘다 하얗다는 점
3. 서로 어색하다는 점
4. 뭔가 두렵다는 점
새끼강아지면 막 달려들기도 하고 앵기기도 해야하는데, 이 녀석은 고양이 마냥 시큰둥했다. 아주 시큰둥했다.
부대에 도착하고나서도 목줄을 하지 않아도 될정도로 가만히 있었다.
상실감같은 걸 겪고 있는 것같았다. 그럴만도 했다. 아주 어린아기를 엄마랑 떨어뜨려놨으니..이해가갔다.
우리는 함께 군생활을 적응해 나갔다. 이 과정도 비슷했다.
1. 어딘지 모르는 곳에 점점 익숙해진다는 점
2. 점점 까매진다는 점
3. 서로 친하게 지내야 심신에 좋다는 점
4. 이제 서로밖에 없다는 점
포성이는 부대원들에게 앵기지 않는 츤데레였지만, 모두가 귀여워했다.
나는 훈련이 끝나고, 점호가 끝나고, 일과가 끝나면 포성이에게 달려갔다.
빅팜을 주고, 같이 떠들었다. 사실 나 혼자 이야기했다.
여자친구가 면회를 오면 포성이에게 소개시켜줬고
포성이는 여전히 시큰둥했지만, 그래도 '뭐 좋아보인다 야' 정도는 표정으로 말해주었다.
오늘 하루가 힘들었다고 말하면 ' 목줄감긴 나보다는 낫네'라는 표정으로 땅에 머리를 파묻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추운 겨울날 여자친구에게 이별통보를 받았다.
나는 그날 당직이었고, 새벽 3시 담배하나를 물고 포성이 집으로 향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어. 다 떠나가기만해. 모든게.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할수 없어.."
포성이는 잠에 깬 눈으로 흐리멍텅하게 나를 보는 것 같았다.
"포성아, 왜 떠나보내는 법만 배우냐 이곳에선, 내가 뭘 잘못했길래. 진짜..말도안돼 이건.."
포성이는 조금 눈이 동그래져서 내게 다가왔다.
"선임들도 전역하고..여자친구도..모든게 떠나가 정들었던 것 모두가 떠나가.. 근데 난 아무것도 못해"
새파란 겨울밤이었고, 눈같이 차가운 눈물을 그녀석 옆에서 흘렸다
포성이는 여전히 조금은 뚜렸하지만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렇게 2년이 지나 전역날이 왔다.
수많은 후임들의 도열속에 나는 군생활을 마쳤다. 너무 기뻤다. 아니 사실은 떠나는 맘은 무거웠다.
나는 포성이에게 가지 못했다
갈수 없었다. 녀석을 볼 자신이 없었다. 왜인 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연병장을 지나 좁아터진 경계근무 초소를 지나, 부대정문에 도착했다.
그때였다.
"멍!"
개짖는 소리.
포성이의 외침이었다.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나는 뒤돌아보고싶지 않았다.
"멍! 멍!"
다급한 외침이었다, 나는 뒤돌아볼 수 밖에 없었다.
여전했다. 녀석은 꼬리를 흔들지도, 일어나 있지도 않았다.
다만 고개를 들어, 나를 정확히 주시하고있었다.
녀석의 눈은 나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고생했어, 이제 너도 떠나가는 법을 배웠구나. 고마웠다 최종훈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