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 육아
육아는 도와주는 것이 아닌 '함께 하는 것'이라는 누구의 말이 고마웠다. 지금도 여전히 여성의 독박육아를 당연시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럼에도 세상은 많이 달라져 육아 참여도가 높은 아빠들이 많이 보여진다.
나의 배우자는 고맙게도 그런 사람이다. 가치관이나 아이들에 대한 교육관도 우리는 같은 입장으로 서로 다툼 없이 아이들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말할 수 있었다.
신랑도 결혼 전에는 집안일이라고는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이것저것 다 처음이고 서툴렀지만 완벽하지 않아도, 시간이 많지 않아도, 잘 몰라도.. "내가 해볼까?" "내가 해줄게" 미루지 않고 함께 해준 것이 늘 고맙다.
시간이 부족하면 5분이라도 아이들과 집중해서 놀아주라고 하는데, 현실은 아무리 놀아줘도 아이들의 부족함을 채우기가 어렵다. 쉬는 날 틈틈이 놀아도 밥 먹느라 못 놀았고, 엄마 아빠가 치우느라 못 놀았고, 이거 저거 다 하고 싶은데 이것만 하고 저 놀이는 못해서 아쉽고.. 한 번 더 조금만 더, 몸은 작아도 산타할아버지 선물꾸러미처럼 한 없이 들어가는 그 마음을 채우고 싶어 아이들은 아빠에게 매달렸다.
아이들의 체력을 따라갈 수는 없지만 '좋은 아빠'이고 싶다며 아이들과 구르고 부둥켜 놀았던 시간들이 제 역할을 해 아이들은 언제나 아빠가 좋고, 아빠와의 시간을 기다린다.
엄마 나 커서 아빠 될 거다
그래애 —
얼굴도 점점 아빠랑 같아지지?
아빠 얼굴이 좋아?
아빠가 좋아서.
아빠가 좋아서 아빠 얼굴도 좋은 거야 —
아이들을 재우다 보면 신랑은 누구보다 먼저 잠이 든다.
아이들과 잘 놀아주지만 잠만큼은 참지 못하고 아이들이 잠들기 전부터 그르렁 코를 곤다. 요란한 코골이에 아이들이 쉬이 잠들지 못하면 내가 신랑을 흔들든 토닥이든 아이들이 잠들 때까지 코골이를 조율한다.
그날은 이왕 하는 터치, 신랑의 손을 잡고 살살 주물러줬다. '오늘도 수고했겠네..' 쓰러지듯 잠든 모습이 측은하기도 하고 손을 잡고 보니 어느새 많이 두툼해진 것 같은 손아귀가 일을 많이 한 나의 아빠의 손과 닮아 그 느낌이 참 생경했다.
어릴 때 아빠의 손을 많이 주물러 드렸었다. 전자음향악기를 다루시는 아빠는 무거운 스피커도 옮기시고 손수 기계를 고치시니 손도 늘 뻣뻣하고 상처가 나 손끝이 갈라지기도 하셨었다. 고단한 저녁이면 "손 좀 주물러라.", "어깨 좀 주물러라." 그럼 나는 손은 물론이고, 아빠 머리에 수건을 얹고 정수리와 뒷목까지 꾹꾹 눌러 마사지를 해드렸다. 그러고 나면 한결 부드럽다고 좋아하셨지.
그랬던 아빠 손이 생각난다.
신랑의 손을 잡으니 이 사람도 '아빠'라는 이름으로 무던히 열심히겠구나.
우리 아빠도.. 그러셨겠구나.
부지런히 아이들을 위해 뜨느라 신랑을 위한 뜨개를 한지는 오래되었길래 노력하는 가장을 위해 양말을 떠보기로 했는데, 왜 양말이냐..
신랑은 칼발이다. 그래서 그런지 양말이 오래가지 못하고 엄지를 내놓기 일쑤다. 구멍 숭숭 뚫리는 양말들을 보며 '앞 코를 덧대줘야 하나..', '그런 튼튼한 양말은 없나?' 생각하다가 양말 뜨는 방법을 찾아보며 오랜만에 그 사람을 위해 떴다.
양말 뜨는 거 쉽지 않네.. 평소보다 얇은 실을 썼는데도 등산양말처럼 도톰하게 떠져 외출할 때 신기엔 불편할 듯했다. 그래서 그냥 집에서 신도록 했는데 쌀쌀해진 날씨 덕분에 수면양말인 셈 쳤다.
본래 신랑은 열이 많아 반바지에 에어리즘을 사시사철 입었고, 겨울에 칼바람이 불어도 갑갑하다며 목도리도 안 하고 옷소매를 걷고 다니던 사람이다. 그런데 작년부터인가 몸살에 걸리고 며칠 끙끙거리더니 춥다며 극세사 잠옷을 위, 아래로 복실 하게 착용하셨다. 불혹을 넘어 불같던 당신도 나이가 드나 보다..
그렇게 나이 든 덕에(?) 수면양말로의 효용이 있었다.
원래의 목표였던 앞 코가 튼튼한 양말은 아니었지만, 보들보들한 이런 양말을 신으니 기분이 좋다며 꽤나 코지(cozy)한 감성이 되어 보였다. 나 역시 길고 긴 하루의 불을 끄고 이불속으로 들어가는 그때가 가장 편하고 안락하여 절로 입꼬리가 올라가니 신랑에게도 그런 포근한 위로가 되었나 보다.. 라고 가늠했다.
열기가 식은 남자는, 손이 두꺼워진 남자는
따뜻한 챙김을 받고 아이처럼 마음이 채워져 코골코골 잘 잤다.. 고 하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