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 육아
"아들— 이번 생일에는 쿠션 어때? 엄마가 쿠션 만들어줄까 하는데?"
"음.. 그럼 엄마, 피카츄로 만들어 주세요."
주문이 들어왔다. 피카츄... 아들은 정말 엄마가 뭐든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1년 중 가장 중요한 아이의 생일. 어린이날에는 원하는 걸 사줬지만 생일에는 좀 더 엄마의 정성을 담은 선물을 하려고 한 달 전부터 기획에 들어갔다. 푹신한 걸 끌어안고 자기 좋아하는 아이에게 슬쩍 쿠션 얘기를 했는데, 최애 만화 캐릭터인 피카츄를 얘기할 줄이야... 몸통까지 다 만들기는 복잡하고 동그란 쿠션을 피카츄 얼굴 모양으로 만드는 선에서 타협했다.
'그래, 한번 해볼게..'
미디어 노출을 줄이려 해도 TV를 아주 안 보여줄 수는 없었다. 커갈수록 아이들도 사회생활을 해야 하니, 어른들이 유행하는 드라마를 안 보면 직장에서 대화가 안 되듯이 아이들도 또래의 유행 캐릭터를 알아야 친구들과 소통도 되고 놀이에 참여할 수도 있다.
어릴 때는 뽀로로, 로보카 폴리를 많이 보더니 크면서 옥토넛, 안녕 자두야, 라바, 브레드 이발소, 캐치 티니핑, 포켓몬스터... 성장에 따라 취향도 달라져 어릴 때 보던 건 유치하다며 콧방귀다.
아들이 심취했던 포켓몬스터는 여러 시즌을 두루 찾아보고 주제가도 줄줄 외우고, 수많은 캐릭터를 그리고 색칠하고 잘라서 만화의 내용을 복기하며 역할놀이까지 했더랬다. 어떻게 기억하는 거지.. 캐릭터의 동작과 대사를 스토리 따라 재연하는 걸 보면 또 '내 자식이 이쪽 분야의 영재인가' 홀로 착각의 문을 연다.
아이와 공감하기 위해 만화를 같이 보고, 같이 노래 부르고,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하면 아이도 엄마와 죽이 맞아 신이 났다. 딸아이도 오빠 덕분에(?) 또래보다 앞서는 경험들을 하여 친구들은 뽀로로 볼 때에 딸은 오빠와 함께 포켓몬스터를 봤다. 우리 집은 한동안 포켓몬 세상이었다.
아이는 모든 걸 뜯고 맛보고 즐긴다. 색칠북도 여러 권 샀고, 심지어 한글공부도 '포켓몬스터 한글 공부책'으로 했다. 뭔가를 하나 좋아하니 가지를 뻗듯이 스스로 찾아 하는 아이가 신기했다. 한글을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좋아하는 피카츄, 파이리, 리자몽, 이브이, 뮤츠... 포켓몬 이름을 쓰고 그리며 스스로의 재미로 한글을 익혔다.
요즘은 초등 입학 후에 한글을 배워도 충분하다며 학교 측에서는 선행학습을 지양하지만, 누구는 벌써 한글을 읽고 쓰고 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부모들은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조급해진다. 아이는 저 스스로의 기쁨을 따라 그것에 전념함으로 부모의 기우를 덜어주는 도리까지 다 하였다.
보편적이고 평균적인 기준은 한글 쓰기 책에서 아이들이 따라 쓰기 좋게 희미하게 그려진 가이드라인 같은 것이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때에 각자의 개성을 담은 글씨체를 만들어낸다. 스스로 피우는 때에 가장 예쁘게 핀다는 걸 알아간다.
무얼 만들든 나의 생각대로 만들었고, 변수가 생기면 중간에 디자인 수정도 가능했는데, 이번에는 아이가 원하는 결과물이 있으니 더 신경이 쓰였다. 알맞은 둥근 쿠션을 찾고, 노란색 실을 넉넉히 확보하고, 아이의 생일에 맞추기 위해 부지런히 바늘을 움직였다.
다행히 기대에서 많이 멀진 않았나 보다. 아이는 무척 좋아하며 '엄마 최고!'를 해줬고, 얼굴에 그물처럼 실 자국이 나더라도 꼭 그 쿠션을 베고 잤다.
'생일인 사람이 주인공이다. 내가 주인공이 아니어도 다른 사람을 축하해 줄 줄 알아야 한다.'
더 어릴 때는 주인공이 아닌 조연에게도 작은 선물을 주었다. 이제는 축하해 주는 것도 배워야지 싶어서 생일자에게만 선물을 줬는데, 아직 어린 마음은 그걸 알면서도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을 어쩔 수가 없다. 아직은 어렵구나 싶어 뒤늦게 쿠션 하나를 더 만들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딸을 위해 뾰족 귀도 달고.. 고양이로 시작했는데, 수염이 없어서인지 만들고 보니 다람쥐가 되었다. 그래도 보들보들한 감촉이 마음에 들었는지, 오빠처럼 자신도 쿠션이 생겨서 좋았는지 딸아이의 만족도 얻을 수 있었다. 끝나지 않는 1+1 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