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랑하는 것은

팔불출 아내의 내편 자랑

by 하루


내편: 여보, 그거 알아? 애들 데리러 나가면서 내가 쓰레기 다 버렸다는 거—


나: 아— 그랬어? 잘했네—


내편: 알고 있으라고—


나: 으음— 그래그래— 잘했네 잘했네—



'칭찬이 고픈 불혹의 아저씨는 오늘도 집안일을 찾아 열심히 움직입니다.'



살아온 시간 동안 지금을 가장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다는 내편. 해 본 적 없는 일이라도 가족을 위해 하나씩 해 나가며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아빠'라는 이름으로 진화하고 있다.





지금이야 내가 '팔불출 아내'라고 자칭하며 내편 자랑까지 할 정도로 여러모로 훌륭하지만, 결혼 전까지만 해도 집에서 아무 일도 안 했던 사람이다. 청소, 빨래, 설거지 같은 건 해 본 적도 없고, 그나마 집에 혼자 있을 때는 있는 반찬으로 끼니는 챙겨 먹었다는데 안 하던 설거지를 한 번 하다가 유리로 된 냄비 뚜껑이 깨져 뚜껑을 잡고 있던 손을 크게 다쳤었다. 그런 건 두꺼운 강화유리던데 숨겨 둔 힘이 있는 건지.. 그게 어떻게 깨진 건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다치려면 어찌어찌 이상하게도 다친다고.. 그렇게 그의 생애 첫 설거지는 날카롭고 깊은 상처로 남았다.


그때도 사귀고 있을 때였는데, 다쳤다는 전화를 받고 병원을 가니 손에 칭칭 붕대를 감고 엄지를 치켜 세운 따봉 깁스를 하고 있었다. 장애가 남을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에 걱정이 컸지만 시선을 빼앗는 따봉도 그렇고 설거지를 하다가 그렇게 된 것이 민망했는지 멋쩍게 웃는 그를 보며 나도 어처구니없는 웃음이 났다.



안 하던 일을 하다가 크게 다치니 결혼 후에도 뭘 시킬 수가 있어야지.. 다른 건 몰라도 설거지는 웬만하면 내가 하려고 했었다. 나 역시 집안일에 능숙하진 않았지만 아쉬운 소리를 하기 싫고, 트집 잡히기 싫어서 논스톱으로 임신, 출산, 육아를 착착 아무렇지 않은 듯 잘 해내야 될 것만 같았고, 서툴다고 누가 뭐라 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내 자리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다른 가족들에게 그 부재에 대한 영향을 끼칠까 이를 악 물고 하루하루를 버텨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 한 명을 키우기 위해서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아이에게는 많은 손이 필요했고 출산 후 몸이 많이 안 좋았기에 자연스레 내편의 육아 참여도가 높았다. 아이를 집에 데려와 처음 목욕도 내편이 해 주었고, 손목과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파 설거지와 젖병 세정도 내편의 몫이었는데 늦은 퇴근으로 고단한 날에도 사용한 젖병은 꼭 닦아 소독기 안에 넣어 두고 잤다. 그래야 새벽에 또 분유를 먹일 테니까.

너무 힘들어서 나중에는 식기세척기를 사고 말았지만 졸려서 눈이 감겨도 어쨌든 그것 만큼은 감당해 주었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늘어갔다. 트라우마 있는 설거지도 마다하지 않고, 분리수거도 하고, 구멍 난 양말도 꿰매고.. 일의 구분 없이 자신이 좀 더 하려고 노력해 주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집안일을 온통 내편이 한 것 같지만 실제 육아와 가사 일은 끊임없이 엄청났다. 우린 뭐든 '함께' 하자는 마인드였고, 서로의 부족함이 눈에 거슬려도 다름을 인정하고 탓하지 않았다. 어떻게 사람이 칭찬뿐일까. 밥도 차려주는 흔치 않은 남자지만 음식이 나오고 난 주방의 모습은 심란하다. 옷은 옷걸이에 걸다가 만 건지, 바지는 그마저 걸리지도 못하고 차곡차곡 쌓여간다. 화장실 청소는 왜 항상 내가 하는 거지.. 샤워 후 배수구에 있는 머리카락은 안 보이는 거야?



흠을 잡으려면 끝이 없다. 늘 좋기만 한 건 아니지만 나 역시 완벽하지 않기에 '이 사람은 이게 부족하구나' 하며 한 번 더 내가 하고, 열 번 더 내가 하고.. 그러다 보면 거울치료처럼 스스로 알아가기도 하고, '이제 좀 알려줘야겠다' 싶어 지금까지의 인내와 불편함을 솔직히 얘기하면 서로 간에 수긍하고 함께 사는 '우리'를 위해 변화를 노력했다. 그래, 서로가 인내하고 있음을 헤아리고 불편함을 얘기했을 때 끄덕거렸던 자세가 우리의 삶을 좀 더 나아지게 해 주었나 보다.



뭐든 마음에서 시작한다. 아무리 얘기해도 마음이 없으면 눈에 보이지 않고,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내가 자랑하는 것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노력하는 그의 마음이다. 그 마음이 우리 가족의 웃음을 받쳐 주고 있음이다.



결혼을 하고 아빠가 되면서 많은 책임감으로 많은 능력도 생긴 내편. 아빠가 집에 오기만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때론 버겁고 집에 들어오는 발걸음이 무거울 수도 있을 텐데 집에 오는 게 좋다며 우리의 지금을 소중하게 생각해 주는 그 마음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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