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너두 할 수 있어!

팔불출 아내의 내편 자랑

by 하루


우린 성격까지도 잘 맞다고 생각했다. 보수적이고 고지식한 게 비슷해서 서로 불편함이 없었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 데이트할 때도 늘 가는 식당과 카페, 영화관.. 매번 거기서 거기인 평이한 일상이지만 새로움을 찾아 어디 멀리 나가긴 또 귀찮아서 동네를 돌고 돌았다.


쇼핑을 해도 내가 먼저 지쳐서 한 층을 다 돌기 전에 '그만 가자' 했고, 불금이라고 늦은 밤까지 놀지도 않았다. 술도 마시지 않고 클럽도 안 가니 남자친구는 나에 대해 걱정할 일이 없었다. 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들과 종종 갖는 술자리도 언제 만나는지, 언제 집에 들어가는지 내게 보고하고, 여자친구인 나 외에는 다른 여자에게 곁을 주지 않았기에 불안할 일도 없었다.


살아가며 성격이 바뀌는 것인지 한쪽으로 더욱 분명해지는 것인지 나는 이전보다 더 현실적인 성격이 되었고, MBTI는 잘 모르지만 그중 확실하게 T이다.

내편은 학창 시절부터 유명한 트리플 A(혈액형)였고,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F이다.

: 내향적이며 감성적인 편.



F에게 공감법을 배우다.

내편은 설거지도 잘하고, 음쓰(음식쓰레기)도 잘 치운다.

어느 날 음쓰를 치우는데,


"악!"

"왜?? 다쳤어?"

"아니, 으... 얼굴에 튀었어."

"아"

"얼굴에 튀었다고오—"

"어, 닦아."

"야, 너 T 지!!"

"아 왜? 무관심한 게 아니고 나도 튄 적 있어. 근데 뭐, 빨리 닦아야지 어떡해."



너무나 T인 나의 반응이 좀 섭섭했나? 갑자기 내편의 티칭이 이어졌다.

"자, 공감하는 거야— '튀었어!' 하면 '튀었어?',

'힘들어' 하면 '힘들어?' 그렇게 해보는 거야—"

쳇.. 뭔가 바뀐 거 같은데.. 육아 프로그램에서 같이 봤던 솔루션을 내게 적용하고 있었다.



결혼 전에는 나 스스로 꽤나 감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TV 속에서 누군가 울면 나도 여지없이 눈물이 흘렀다. 지인들의 얘기를 들어주기 좋아했고 상대의 감정을 조용히 기다릴 수 있었다. 나 역시 감정표현에 서툴고 생각이 밖으로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라 다른 이들에게도 그런 기다림을 줄 줄 알았나 보다. 한데 요즘의 나는 조금도 기다리기 어려운 급한 성격이 되어 아이의 더딤을 자주 재촉하고 있다. 내편과 이야기를 할 때에도 나는 오래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그릇을 치우고 쓰레기를 버리고 돌돌이를 미는 등 눈에 보이는 일들을 따라가느라 바쁘다.



F의 공감법이 입력되었다.

하루는 내편이 떡국을 끓여 주었다. 달걀지단까지 부쳐 예쁘게 잘라 올리고, 김도 모양에 맞게 길게 잘라 보기에 그럴싸했다.

"어머나—" 나도 나름의 좋은 반응을 해주려던 건데 감정은 없고 큰 목소리로 책을 읽듯 출력된 나의 표현에 내편은 주저앉아 배꼽을 잡고 웃었다. 아이들은 아빠가 왜 주저앉아 큭큭거리는지 몰라 어리둥절했고, 내편은 그렇게라도 표현해 주니 더 낫다며 나의 노력을 칭찬해 주었다.

"그래 그래, 잘했어—"


이렇게 밸런스를 맞춰 가는 건가 보다.


극 T지만, 그래 나두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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