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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그루 May 05. 2023

한동안 머리가 아팠다.

지난 며칠간 계속 두통이 있었다. 왼쪽 관자놀이가 지끈지끈거려서 스위치가 있다면 딸깍 눌러서 꺼버리고 싶었다. 왜 이렇게 계속 머리가 아플까? 병원에 가는 것 대신 일기를 쓰고, 명상을 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상담을 했다.


가까운 사람이 그랬다. 그루는 너무 먼 미래에 대해서 고민을 하느라 자꾸 신경을 쓰는 것 같아. 당장 해야 하는, 당장 가까운 일에 집중해보는 건 어때?


순간 머리가 띵했다.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었다. 부드러운 그의 말투에는 어떤 단호함도 있었다.


내 가까운 사람들은 알고 있다. 나는 걱정을 사서 하는 편이라는 것을.


아빠에게 약속한 대로 공장 옆에 집을 지어주고 싶었다. 집이면서도 우리 농장을 찾아주시는 분들과 함께 먹고 자고 할 수 있는 '팜스테이'의 공간으로도 쓸 수 있는. 수 많은 설계도면과 건축디자인을 살피고, 관련된 지원자금이나 대출을 알아보면서 어쩌면 정말로 그 집을 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설랬다.


그런데 혹시나 싶어 알아본 바로는, 어쩌면 안 될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미 정책자금으로 구입한 농지이기 때문에, 주택은 어려울 수 있어요. 물론 주택을 주택으로만 쓰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허무했다. 잘 알아보지 않은 나에게 실망스럽고, 약속한 아빠에게 죄송했다. 죄책감이 들었다.


며칠 전 아빠와 밥을 먹는 자리에서 상처가 되는 말을 들었다. 어차피 넌 입으로만 나불대고 행동하지는 못 하잖아. 너무나 맞는 말이라서 밥을 먹다가 울컥했다. 아빠가 말하는 내가 입으로만 나불댄 행동 중 하나는 집에 대한 약속도 있을 거라는, 혼자만의 자책으로 우울했다. 나는 아빠에게도 믿음을 주지 못 한 사람인 것인가.


또 며칠 전, 국책연구소에서 인터뷰를 하기 위해 멀리서 찾아온 손님이 계셨다. 5년 후에는 어떤 모습일까요?라는 질문에 그 날 밤은 참 멍했다. 부모님이 은퇴하시면, 아니, 지금 부모님을 뺀다면 내 자리에는 무엇이 남을까?


이런 저런 오만가지 생각이 들어가있어서 내 머리는 지끈거리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였다. 그런 와중에 가까운 사람이 말했다. 당장 해야 하는, 당장 가까운 일에 집중해보라고. 너무 멀리 생각하지 말자고.


결혼과 육아를 포기하는 대신 요즘 젊은 사람들은 '갓생'에 혈안인 듯 싶다. 하루하루, 일분일초를 아끼지 않고 잘 먹고, 잘 놀고, 열심히 일도 해야 한다. 너무 멀리 생각하지 않으려 하는 것은 '하쿠나마타타' 노래나 부르는 한심한 티몬과 품바처럼 보였다. 나는 내 한몸도 먹여 살리기 힘들면서 우리 가족들도 책임져야 하고, 우리 고객님들도 책임져야 하고, 언젠가 결혼을 하면 생길 또 다른 내 가족들도 책임져야 하니까. 이대로 멈춰있으면 안 되니까.


하지만 정작 고민만 하고 걱정만 하느라 해야 할 일을 못 하고 있던 게 아닌가 싶다. 우울한 기분에 속지 말자. 오늘 아침 유튜브 속 아이유가 한 말이다. '핑계'는 그만두고, 당분간은 당장 해야 할 일들만 들여다보자. 그럼 자연스럽게 집도 짓고, 팜스테이도 하고, 우리 부모님이 은퇴해도 먹고 살 수 있는 일들이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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