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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그루 Dec 29. 2023

당신은 왜 그 일을 하고 있나요?

월터 아이작슨 <일론 머스크>

20대 때, 월터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 전기를 읽은 적이 있다(정확히는 읽다가 20% 정도를 남겨두고 방대한 양에 포기했지만). '아이폰'으로 세상을 뒤집어놓은 스티브 잡스를 막연하게 동경하다가 책 속의 극적으로 이분법적인 그의 모습을 보고 현타 비슷한 것이 온 적이 있다.


전기 전문작가인 월터 아이작슨이 새로운 인물을 파내었다. 역시나 방대한 양의 <일론 머스크>였지만 읽는 내내 지루함보다는 그 어떤 흥미진진한 스토리의 영화보다도 더 깊게 빠져들었다. 읽는 내내 머스크와 잡스의 겹치는 면이 나를 소름돋게 하였다. 역사를 바꿀 정도로 인류에 공헌한 천재들은 이다지도 또라이같단 말인가. 잡스의 전기를 읽으면서 동시대를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도 내 주변의 누군가였다면, 그를 직장상사나 친구, 동료 등으로 만났다면 너무나 끔찍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머스크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내 상사가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이란 말인가.


그리고 월터 아이작슨이라는 인물의 집착에 가까운 열정에 감탄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서도 한 인물에 대해 이렇게 깊게 파고들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는데, 월터 아이작슨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사람이 내 전기를 써준다면("<곽그루>, 월터 아이작슨") 그 책이 아마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다도 더 나같다고 느꼈을 것이다.




책을 읽기 전 머스크는 내게 '테슬라'를 통해 세상에 전기자동차의 붐을 일구고, '스페이스X'를 통해 화성어쩌구 우주어쩌구 하는 사람이었다. 트위터에 올라오는 그의 한 마디가 세계의 주식가격을 오르락내리락거리게 만들 정도로 영향력있는 사람, 그래서 미움도 많이 받는 사람. 나에게는 딱 그 정도의 인물이었다.


어쩌다가 밀리의 서재에서 일론 머스크의 전기를 고르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일론 머스크라는 인물보다는 대학생 때 감명깊게 읽었던 잡스의 전기를 쓴 '윌터 아이작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방대한 내용의 책이라 다 읽는데 두 달이 넘게 걸렸지만(물론 중간에 다른 책들을 함께 보느라 더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솔직히 이렇게 끝까지 읽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몇 달 전부터 읽은 책들이라 까먹은 내용도 많고 워낙 많은 인물이 나와서 머릿속에서 뒤죽박죽인 내용도 있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머스크를 사랑하게 되었다.


얼마 전, 지인이 사석에서 말했다. 머스크는 또라이같아. 한창 머스크의 전기를 읽던 와중인 나는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는 분명 또라이가 맞다. 남아공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실제로) 피가 난무하는 그 거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본능적으로 쌈닭이 되었다. 내사랑 아이언맨의 실제 모델이라는 말은 맞지 않는 것 같다. 그의 어린 시절은 부유한 것도 아니었고, 아버지가 자상하고 똑똑한 것도 아니었다(오히려 그 반대로 보인다).


수 천페이지의 전기에서 그는 정말 많은 위기를 겪고 또 선택을 해야 했다. 그때마다 '내가 일론이었다면 저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싶었다.


내가 일론이었다면 집을 떠나 먼 곳으로 향할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내가 일론이었다면 지금 인정받고 있는 회사에서 좋아하는 비디오 게임제작일을 버리고 과감하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내가 일론이었다면 지금 당장 먹고 살 걱정이 아니라 인류의 의식을 오랫동안 보존하기 위해 인류를 다행성 종족으로 만든다거나, AI의 반란을 걱정하며 회사를 만들 수 있었을까?

내가 일론이었다면 민주주의 대화의 장을 만들기 위해 트위터를 인수할 수 있었을까?

내가 일론이었다면? 내가 일론이었다면?


내가 일론이었다면 이 세상에는 테슬라도, 스페이스X도, 스타링크도, 보링컴퍼니도, 뉴럴링크도, 엑스닷에이아이도 없었을 것이다. 이 여섯개의 회사는 제각기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결국에는 궁극적으로 인류 의식의 영속성을 위한 것이라니, 머스크는 정말 큰 그림이 있구나.




'진도농부'를 운영하면서(사실 운영한다고 말을 하는 것도 민망할 때가 있었다) 2년 정도 무척이나 암울했던 시절이 있었다.


아무것도 모를 때 얼떨결에 창업을 하고나서는 상도 받고 인터뷰도 하고 TV에도 많이 나오니 내가 뭐라도 된 듯 우쭐했었다. 알맹이는 없었으면서 요란하게 나대고 다녔던 시기다.


내 앞으로 처음으로 대출을 받아 가공장을 마련하고 엄마의 사업자를 폐업하고 내 사업자와 합쳐서 진짜로 '진도농부'를 운영해야 했을 때는 책임감보다는 부담감만 가득해서 너무나 괴로웠다. 내가 원해서 시작한 일이 아니었다고, 가족들이 내 발목을 잡는다고 생각하며 괴로워만 했다.


누구의 탓도 아니고, 결국 선택은 내 몫이며 그렇기 때문에 집중해서 잘 해보자 마음먹은 것은 불과 3년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다. 그 3년도 참 많이 부딪혔지만 좌절하지는 않았다. 가족들이 곁에 있었기 때문에.


그 시간동안 우쭐대며 돌아다니던 외부활동들도 많이 줄이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면서 진도농부에서 집중해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정리했다. 매번 답은 바뀌지만 바뀌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론 머스크는 돈을 벌기 위해서, 더 부자가 되기 위해서 기를 쓰고 잠을 줄여가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건 분명하다. 머스크처럼 어마어마한 대의는 아니지만 '진도농부'로 일을 하는 나는 적어보자면 이렇다.


나는 나와 내 가족들이 더 안락한 삶을 누렸으면 좋겠다.

나와 진도농부를 믿어주는 고객님들이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진도농부를 믿고 많은 생산자들이 제 값을 받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스페이스X의 "화성을 점령하라!"처럼, 진도농부의 티셔츠에는 "We Are Groove!"가 쓰여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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