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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대출이 안 나올 수도 있다니요?

서른이 되기 전에 2억이 넘는 빚이 생겼다

by 곽그루

학교다닐 때 급식비를 내지 못해 교실 칠판에 이름이 적힌 적이 있었다(꽤 여러번).

지금 생각하면 그게 뭐 어쨌다고 싶기도 하고, 선생님들이 너무했다 싶기도 하고, 선생님들이라고 그러고 싶었겠나 싶기도 하다. 어쨌든, 한창 사춘기 시절의 나는 그게 너무 창피해서 아침에 눈을 뜨기 싫은 적도 많았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을 봐야 하는데 그게 너무 무서웠다.


어렸을 때부터 돈이 무서운 줄 알았고, 돈 앞에서 눈치보고 작아지는 습관이 그대로 소심한 성격이 되었다. 진도에 내려와 처음 신용카드를 만들었을 때도 꼬박꼬박 매달 '선결제'를 했다. 내야 할 돈을 밀리는게 너무 싫었다(그럼에도 택배비나 기본적인 공과금 등은 몇 번 몰아서 내기도 했다).




그런 내가 2018년에 처음으로 대출을 받았다. 그것도 2억이 훌쩍 넘는 돈이었다.


대한민국에서는 청년농업인들에게 저리로 대출을 해준다. 심지어 상환기간도 길다. 나 때는 3년 거치 7년 상환인데, 요즘에는 5년 거치 15년인가 20년 상환이다. 심지어 최대 2억이었던 대출규모가 5억으로 늘었다. 물론, 아무나 빌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사업계획서도 잘 써야 하고, 신용도도 좋아야 한다.


당시 3년거치 7년상환으로 2억에 가까운 대출을 받았다. 땅도 사고, 공장도 짓고, 안에 기계도 들였다. 3천만원까지 마이너스 통장도 만들 수 있다고 해서 까짓것 만들었다. 통장에 2억에 가까운 숫자가 찍히니 3천만원은 우스웠나보다(그 멍청한 시절에 마통을 튼건 뼈저리게 후회한다).




우리 농장의 메인은 고춧가루와 절임배추였다. 직접 농사지은 고추를 손님들의 취향에 따라 맞춤으로 빻았다. 누구는 거칠게, 누구는 곱게, 누구는 씨를 꽉 채워서, 누구는 씨를 쪽 빼서 등등.


'커스터마이징' 고춧가루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리고 당당하게 인터넷에 올려서 팔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방앗간이 필요했다(그 전에는 엄마가 블로그에 올리고 할머니 단골 방앗간에서 빻아왔다).


P력 100%였던 스물여덟의 나. 돌이켜보면 정말 무턱대고 지은 것 같았다. 제대로 된 공장에 OEM을 맡기는 비용과 직접 지었을 때 시설투자비용을 비교해보지도 않았고, 일년에 이 설비를 얼마나 돌릴 수 있으며, 대출금과 이자를 갚기 위해서는 해마다 몇만근의 고추를 빻아야 또이또이가 되는지 등 정말 아무런 계획도 없이 허울뿐인 '사업계획서' 몇 장만 은행에 제출한 게 끝이었다.




가공을 시작하면 해마다 보릿고개에 허덕이는 농사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라는 희망은 헛소리로 밝혀졌다(당연하지, 아무런 계획도 없이 무모하게 저지르기만 했는데).


그나마 3년 동안의 거치기간은 버틸만 했는데, 상환이 시작되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1년에 그랜저 한대값이 숙숙 나가야했다. 공장은 매일 돌아가지 않았고, 농사를 지어 겨우 나오는 돈을 전부다 은행에 보내야 했다. 그 마저도 부족해서 매년 새로운 추가 대출을 받아야 했고.


도대체 이게 맞는걸까? 내가. 우리 가족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아니, 살 수 있을까?

하는 최악의 상황에서 손님들 덕분에 김치를 시작했다. 김치를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대출을 받으러 가지 않아도 되었다. 기존 대출금의 원리금도 웃으면서(?) 상환할 수 있었고, 매년 봄마다 허덕이는 보릿고개도 여유롭게 지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2년을 더 이상 빚을 늘리지 않아도 되는 시점에서 깨달았다. 이거구나.


여태 헛짓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헛짓의 시간 덕분에 사람과 스토리가 쌓여 김치가 되었구나. 우리를 구해줄 아이템을 만났구나.




첫 공장은 긴가민가하는 마음으로, 확신은 없지만 잘 되겠지하는 마음으로, 부모님이 하라고 하니까 이게 맞겠지하는 마음으로 지었다.


두 번째 공장은 무조건 잘 되게 만들어야한다는 마음으로, 이거 아니면 우리는 죽는다는 마음으로, 하루 빨리 부모님을 은퇴시켜드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감사하게도 더 좋은 조건으로 추가 융자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무려 0.5%의 초저리로 최대 2억까지 빌릴 수 있었다. 선정이 된 지 2년 안에 대출실행을 해야 하는데, 어렵게 선정이 되어놓고서 1년 동안 공장을 지을 지 말 지 고민했다.


또 이렇게 공장을 지어놓고 김치를 생각보다 많이 못 팔면 어쩌지? 대출금을 못 갚으면 어쩌지? 기존에 쓰던 공장에서 최대한 버텨봐야할까?


막상 대출을 받으려니, 수십 년 간 내 몸을 지배해온 소심이와 겁보DNA가 발현되었다. 1년의 기한이 남은 상태에서 결국 대출을 받기로 결정했다.




결혼준비와 동시에 시작한 두 번째 공장준비. 융자를 지원해주는 관공서와 상담도 했고, 대출기관과도 분명 얘기를 했는데 말이다. 막상 설계가 끝나고 시공사에서 관공서 담당자에게 연락을 하니 얘기가 또 달라진다.


대출기관에서 먼저 확실하게 대출이 나오는 지 확인해보세요.

응? 님이 서류먼저 해오라고 하셨잖아요. 그 다음에 농협 대부계에 가보라면서요(농협에서도 서류가 있어야 알 수 있다고 했다).


일단 농협 대부계에 전화를 했다. 거기서는 더 가관이다.

어차피 지금 당장 대출 심사를 받는 건 의미가 없어요. 대출 신청을 할 때(그러니까 공사가 끝나고 이제 돈주세요 신청할 때) 알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지금은 돈이 나올 지 안 나올 지, 2억이 다 나올지 덜 나올지 알 수 없다는 거잖아. 일단 공장부터 지어놔야 대출여부를 알 수 있다는 거 아냐. (무슨 법이 이래...?)


이미 말뚝은 박았고 첫삽은 떴는데 이제 와서 멈춰야 할까?

하지만 이번에는 확신에 찬 마음 속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무조건 대출이 나올거야. 그것도 풀(full)로.


어렵게 서류를 다 꾸려서 '우수후계농업인'으로 선정되었고, 만약 대출이 안 되거나 2억보다 덜 나온다고 하면, 되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하면 되잖아.


우리 남편도 내심 혹시 대출이 거절당하면 어쩌지 살짝(?) 걱정을 했지만, 되는 방법을 내놓으라고 하겠다는 내 말에 으쌰으쌰 힘을 냈다.




이제 이거 아니면 나 죽어. 우리 가족 다 죽어.

나는 반드시 김치로 성공할거야. 우리 부모님 고생 그만 시키고 호강시켜드릴거야. 나 믿고 따라주는 우리 남편에게 보답할거야.


우선 1단계는 공장을 무사히 지어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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