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02. 황정민을 빼닮은 시공사 사장님 덕분에

공장을 지으며 다시 한 번 사업을 배운다

by 곽그루

7년 전, 첫 공장을 지었을 때는 엉망진창이었다.

뚜렷한 계획과 목적 없이 무턱대고 시작한 것도 있었고, 한창 절임배추로 바빠서 공사 현장을 자주 들여다보지 못한 것도 있었다. 무엇보다 시공 견적은 여러 업체에서 받아보고 싶었는데, 아는 곳이 없어서 아부지의 지인에게 툭 맡긴 것이 정점을 찍었다.


둘째 큰아빠가 건축을 하셔서 어렸을 때 H빔이나 C형강을 밟고 놀기도 했고, 20년 전에 우리 집도 식구들끼리 뚝딱(?) 짓기도 했으면서. 왜 큰 돈 들여 짓는 공장에는 그토록 무심했는지.


사무실 바닥은 처음부터 수평이 안 맞아서 아직도 모든 가구들이 삐걱거린다(항의했더니 계절이 바뀌면 괜찮아질거라고 하셨다). 1년이 지나더니 공장 벽 한 쪽에서는 비가 새기도 했다. 잔금을 치루고 나니 아예 연락두절이 된 시공사... 아빠와의 연도 그대로 싹뚝이었다.




이번에 두 번째 공장을 짓기로 하면서 시공사 선택에 대한 고민이 정말 컸다. 설계는 첫 공장 때 해주셨던 분이 그래도 꼼꼼하게 봐주셨던 기억이라 걱정이 없었다.


설계를 진행하면서 주변에 괜찮은 시공사가 있는지 알아보았다. 최근에 공장이나 창고를 지은 지인들에게도 연락을 돌렸다. 다들 하나같이 입에 거품을 물었다. 그들도 역시 '레베루'가 안 맞거나 천장에서 비가 샜다. 심지어 추가비용도 계속 요구해서 빚잔치였다고 하소연을 했다.


한참 걱정을 하는데 설계사님께서 혹시 아직 시공사를 선정하지 않으셨다면, 아는 대표님을 소개해드려도 괜찮으신지 물어봐주셨다. 워낙 꼼꼼하시고 무엇보다 공사가 끝나더라도 애프터가 확실하다고 했다.




믿을만 한 분께서 소개해주신다니 흔쾌히 연락처를 받기로 했다. 그런데 그 분이 최근에 공사한 건물들이예요, 하고 보여주신 사진들을 보니 또 걱정이 되었다.


진도군 여기저기의 으리으리한 관공서 건물들이었다. 관공서 건물들을 주로 작업하셨으면 괜히 비싸지는 않을까? 쓸데 없이 오버스펙이 되지는 않을까? 오히려 우리 공사가 너무 작은 규모라서 신경을 덜 써주시지는 않을까?


그렇게 소개받은 시공사 사장님과 우리 농장에서 첫 미팅을 가졌다.

시꺼먼 피부에 서글서글한 웃음이 서린 표정, 유쾌하면서도 확신에 찬 목소리, 청바지 패션과 하얀색 디펜더 자동차. 처음 뵙는데도 왠지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생각보다 어린(?) 건축주, 게다가 어리버리해보이는 여자아이인 나를 무시하는 느낌 없이 처음부터 꼼꼼하게 설명해주셨다. 마치 어린 환자의 눈높이에서 설명해주시는 유쾌한 소아과 할아버지 의사선생님 같았다(사장님은 할아버지보다는 훠얼씬 젊으셨다).


그 뒤로도 사장님을 만날 때마다 나 혼자 내적친밀도와 신뢰가 쌓였다. 처음에는 '사기꾼 아닐까?' 싶을 정도로 능수능란하다 싶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장님에게서 풍기는 이 확신의 포스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우리 엄마가 사장님은 참 여유가 있어보인다고 했다. 이전 시공사도 그랬고, 내 지인들의 시공사도 그랬고 다들 돈을 못 받을까봐 전전긍긍, 뭐가 안 될까봐 전전긍긍이었는데. 그런데 우리 사장님은 오히려 나보다도 걱정이 없었다.


대출이 다 안 나올수도 있대요. 확실한 건 건물을 다 지어놓고 나서 알 수 있대요. 라는 걱정어린 내 말에도 원래 다 그래요, 하며 특유의 서글서글 웃음을 보여주셨다. 덕분에 내 마음 속 걱정도 스르륵 녹는 기분이었다.




사장님은 진도분이 아니셨는데, 전남 여기저기를 누비며 여러 공사를 동시에 진행하시는 모양이었다. 나와 함께 계실때도 몇 번이고 전화를 받으셨는데, 전화로 깔끔하게 상황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에 감탄했다.


그렇다. 나는 사장님에게 반한 것이다!


남자로서 반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는 없는 여유로운 리더의 모습을 보게 되어서 반한 것이다. 나의 롤모델칸에 노홍철 다음으로 적을 수 있을 것 같다.




며칠 만에 다시 만난 사장님은 유난히 피부가 더 타셔서 붉어지셨고, 머리숱도 훨씬 더 빽빽하게 많아지신 것 같았다.


엄마, 사장님 황정민 닮지 않았어? 생각해보니까 말투도 비슷한 것 같아. 그렇게 입 밖으로 뱉고 나니 사장님과 통화하거나 미팅을 할 때마다 황정민 배우님이 생각나서 혼자 킥킥거린다.




혹시 대출이 안 나올까봐, 공사에 변수가 생길까봐, 다 지어놓고서도 장사를 잘 못 할까봐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오만 걱정이 올라오려 할 때. 외모도, 말투도 황정민을 꼭 빼닮은 사장님 덕분에 힘이 난다.


굉장히 불리한 전장 한가운데서 기적적으로 천군만마의 지원군이 달려와준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든든한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2화01. 대출이 안 나올 수도 있다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