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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진짜 할머니 이름이 양념이야?

건물에도 이름이 필요한 이유

by 곽그루

3년 전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 성함은 '허양념'이다.

아들만 내리 낳다가 느즈막히 얻은 양념같은 딸이라고 해서 그렇게 지었다고 했다. 양념씨는 또 8남매를 낳고 길렀는데(어렸을 때 돌아가신 고모까지 합치면 총 9남매) 우리 아빠는 그녀가 마흔살에 얻은 늦둥이이자 막둥이 아들이다.


지금이야 결혼을 늦게 하니 출산도 늦어지는게 자연스럽다지만, 당시에 할머니는 늦은 나이에 임신을 한 것이 너무 부끄러웠다고 했다. 그래서 뱃속의 아이가 떨어지라고 혼자 산속에 올라가 그렇게 굴렀다고 했다. 뱃속에서부터 고집스럽게 살아남은 아이는 커서 할머니가 가장 사랑한 자식이 되었다.




할머니의 막둥이는 모든 자식들 중에서도 유별났다. 진도에 다리가 없었을 때부터 세상을 누비겠다는 꿈을 꾸었고, 결국 국민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누나들이 사는 경기도 용인으로 도망을 쳤다. 진도를 떠난 후 꿈에 그리던 해외취업(제대하고 스페인에서 1년 넘게 무선사로 근무했다고)에 성공하고, 돌아와서는 광고사업을 크게 해서 직원도 여럿 두는 당찬 사장님이 되기도 했다.


도시에 아파트도 마련하고, 당시 티비 광고에서 제일 좋은 차라고 선전하는 자동차도 샀다. 악착같이 일을 했으며 가족을 끔찍히 여겨서, 막둥이임에도 부모님의 예순잔치, 칠순잔치, 팔순잔치를 다 챙겼다.


그렇게 끝까지 성공만 했으면 좋았으련만, 한창 IMF 때 아빠는 가장 가까웠던 친구들에게 배신을 당해 수 억원의 빚더미에 쫓기듯 진도로 내려와야 했다. 시골의 정이라고들 하지만, 망해서 내려온 가족을 환대하는 시골사람들은 없었다. 그래도 아빠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우리 남매를 먹여살리기 위해 엄마와 뼈가 빠져라 일을 했다. 다시 악착같이 일만 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빠는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부잣집에서 태어나 가난한 집으로 시집을 와서 평생을 고생만 하던 할머니를 호강시켜주고 싶고, 그래서 나 낳기를 잘 했지?하는 일종의 생색말이다(감히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는 이유는 나 역시 아빠에게 같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구십 넘은 할머니의 여기저기가 고장나면서 결국 요양병원으로 들어가셔야 했을 때, 아빠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우리의 첫 번째 공장을 완성하고 개업식을 열기로 했다. 먼저 공장에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다. 작은 가족회의가 열렸다. 고춧가루를 빻고 참기름을 짜는 곳이니, 나는 '송산리 고추방앗간'이 어떻겠냐고 했다. 내 이름을 따서 '루루방앗간'도 좋다고 했다(나 빼고 다들 극혐했지만). 열 몇 가지의 이름들이 며칠 동안 후보군에 올랐다가 결국 최종낙찰된 것은 '제철양념제작소'였다.


고춧가루, 참기름, 들기름. 여름과 가을을 담은 양념들을 만드는 곳. 앞으로 더 많은 제철을 담은 양념들이 나오게 될 공간이면서 우리 할머니 '양념'씨를 기리는 곳이기도 했다.


당초에 조그맣게 계획했던 개업식이 웬만한 결혼식 수준으로 커졌다. 저 멀리 광주에서 뷔페도 250인분이나 불렀다(음식은 죄다 남아서 친척들이 싸갔다). 무대도 설치해서 가족들끼리 소감도 말하고 인스타그램으로 라이브 촬영도 했다. 백 명 넘은 사람들이 오고갔고, 다들 멋진 공장을 보며 축하한다고 했다.




이 모습이 그때는 너무 과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빠의 마지막 효도였던 것 같다.

당시 할머니는 부쩍 몸이 쇠약해져서 휠체어를 탈 기운도 없었는데, 아빠가 우기고 우겨서 나주 병원에서 진도까지 큰아빠의 차를 타고 오셨다. 큰 마음을 먹고 와주셨는데, 그 엄청난 광경을 보신 할머니가 무척 흐뭇해하셨다. 말은 안 했지만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아들, 내 막둥이. 너무 자랑스럽다.


그 공장을 빚으로 지었건(물론 융자 외에도 아버지가 4천만원 정도 더 대주신 덕분에 마무리 공사를 할 수 있었다), 수백인분의 뷔페 음식이 절반 가까이 남았던(그래서 축의금(?)으로 받은 돈이 완전 적자가 났다)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할머니에게 아빠는 성공한 자식이 되었다.




지금도 우리 참기름, 들기름병에 쓰여있는 '제철양념제작소'를 보고 무슨 뜻인지 물어보시는 분들이 계시다. 할머니 이름이 정말 양념이예요? 우와.


제철양념제작소가 할머니의 기운 덕분에 점점 많은 제철음식들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올해에는 바로 그 옆에다가 '제철김치제작소'까지 짓는 중이다. 너무 무리해서 시작하는 거 아닐까? 걱정하던 나였는데, 그 때 아빠가 멱살잡고 끌고 가지 않았다면 제철양념제작소도, 제철김치제작소도 없었을 것 같다.


우리 할머니가 살아계셨다면 나 결혼하는 것도, 제철김치제작소에서 진짜로 성공하는 모습도 보셨을텐데.

양념씨, 보고 있지? 양념씨 자손들은 오늘도 열심히 살고 있어. 우리 공장 끝까지 무사히 완성되기를 하늘에서 응원해줘!

공장사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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