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의 반대는 불통
상대방은 별 의미없이 짓는 무표정이나 툭 던진 한 마디에 하루종일(혹은 그 이상) '혹시 나 때문인가? 내가 뭘 서운하게 했을까?' 하며 혼자 속상해한다.
그래서일까. 어렸을 때부터 나는 어딜가나 '착한 아이' 소리를 들었고,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도 웬만한 모임에서는 '천사 그루'라며 과분한 칭찬과 기대를 받는다.
밖에서는 싫은 소리, 서운한 소리 한 번 못하면서 집에서는 식구들에게 왜 그렇게 빼액대는지. 특히 우리 남편은 어느 순간부터 말을 하기 전에 내 눈치까지 보더라니까.
한 두푼도 아니고 수 억원을 들여 짓는 공장이니, 바보 멍청이 소리 들을 각오하고라도, 일하는 데 방해하는 민폐쟁이가 될까 염려하지 말고 귀찮을 정도로 물어봐야하는 거 아냐.
명색이 네가 사장이니 건물 짓는 일은 책임지고 맡도록 해라. 엄명하신 부모님 덕분에 설계사, 시공사, 관공서, 대부계 모든 소통을 내가 하게 되었다(그게 당연한거고). 그런데 그 누구에게도 나는 똑 부러지게 필요한 말을 못 하고 눈치를 보고 있더라.
특히 황정민 사장님 앞에서는 왜 그렇게 작아지는지.
그나마 제법 건축밥좀 먹어본 우리 아빠가 종종 공사현장을 보면서 '이상하다, 이게 왜 이렇게 돼있지' 갸웃하실 때에도 나는 "알아서 잘 해주시겠지"를 시전했다.
우리와 상의없이 수도관을 묻기 위해 멀쩡한(?) 벽을 뚫었을 때도, 아빠는 분노했고 나는 사장님 눈치를 봤다. 엄마가 요청한 외부수도 위치가 엉뚱한 곳에 나있어도 그럴 만 한 사정이 있었겠지, 하는 나다.
엄마가 그랬다. 우리 일 맡아서 해주시는 분들께 이래라, 저래라 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사전에 얘기해주어야 할 부분이 있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런 얘기는 엄마아빠가 아니라 사장인 네가 해야 하는 것이라고.
차라리 황정민 사장님께 이렇게나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더라면, 조금 더 도도한 건축주의 입장을 취했을 것 같기도 하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사장님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셔야지 내 다음 건물, 그 다음 건물까지 지어주시지 하며 혼자 설레발을 쳤는데, 또 며칠 만에 혼자 서운해하고 속상해하는 내 자신이 너무 머저리같아서 말이지...
이런 내 마음을 알아차리셨는지 오늘 열심히 열무김치를 담그는데 사장님이 전화하셨다. 내일은 아침부터 무슨 무슨 작업을 할거구요. 지난 번에 드린 책자보시고 판넬색상 골라주셔야 해요.
장마가 오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일을 끝내야하는건 사장님도 마찬가지라서, 일을 서두르는게 당연한건데 바보같은 나는 또 '거봐, 사장님이 또 이렇게 신경써주시잖아' 하고 있다.
에휴.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말이지.
신뢰라는 건 정말 별거 없다. 소통을 얼마나 잘 하느냐의 문제같다.
소통을 잘 하면 믿을만 한 사람, 그렇지 못 하면 안 그런 사람.
정치인이던, 사업가던, 친구사이던 나에게는 그렇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이면 신뢰를 주는 사람이기로 마음먹었다.
물어보지 않았어도 우리 엄마에게 하루종일 "그래서 요즘 내 고민은 자사몰을 아임웹으로 만드느냐, 카페24로 만드느냐야"를 떠들어댔던 이유가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