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06. 창문 하나 내맘대로 못 달아요?

드디어 판넬을 골랐다

by 곽그루

이제와서 말하자면, 나는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

그저 막연하게 고추가, 감자가 심어진 자리에서 '언젠가' 공장을 짓고, 체험장을 짓겠지 할 뿐이었다.


돈이 한 두 푼 드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공장을 또 지어. 지금 있는 공장도 잘 못 돌리는데 미쳤네, 미쳤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나도 모르게 틈날 때 마다 밭 한 귀퉁이를 거닐며 '여기는 판매장, 여기는 주방'하며 혼잣말을 했더랬다.


그런데 딱 그 자리에 내가 그리던, 아니, 그 보다 더 근사한 공간이 앉혀지는 중이다. 의욕넘치는 황정민 사장님 덕분에 휘몰아치듯 진행되어서 벙벙 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나, 꿈을 이루네.




막연하게 '그 언젠가' 지어질 공장과 판매장이 어떤 테마로 꾸며질지는 왜 그렇게 오래 전부터 생각했을까. 핀터레스트가 닳도록 드나들며, '제철김치제작소' 폴더가 수 많은 참고사진들로 채워졌다.


황정민 사장님께서 이제 판넬 색상을 골라야 해요, 라고 하셨을 때 어찌나 뿌듯했던지. 지난 날, 밤을 새며 핀터레스트와 인스타그램 피드를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것이 이렇게 빛을 발하는구나!


사장님, 그럼 이건 어때요? 이런 색은 어때요? 이런 재질은 어때요? 하며 '이것 보세요'를 마구 시전하는데, 사장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이건 제조업소에서는 쓸 수 없는 창문이예요."

"이건 단열이 안 돼서 허가가 안 날거예요."

"이건 옛날 건물 리모델링해서 되는 거예요. 신축은 안 돼요."


???

아니, 내 건물에 내 취향대로 창문좀 넣겠다는데 왜 이렇게 안 되는게 많다는 말이냐...

뭐든지 척척박사처럼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황정민 사장님이 야속했다(사실 법을 몰랐던 내 잘못이지). 생각해보니 조립식 판넬로 만든 예쁜 공장이 하나도 없었다. 죄다 은갈치색에 최근에는 어두컴컴한 검정색으로 바뀌었을 뿐.




첫 번째 공장을 지을 때, 당시 시공사에서 추천해준 판넬 색상은 은갈치색과 주황색을 교대로 쌓는 조합이었다. 한 번도 목소리를 내지 않던 내가 결사반대를 외쳤다. 무조건 어두운 색으로 해주세요.


지금에야 어두운 판넬이 심심치 않게 보이지만, 그 때만 해도 은갈치색 아니면 주황색 판넬이 국룰이었다. 시공사 사장님은 난리난리였다. 너무 칙칙해서 안 된단다. 아니, 칙칙해도 내가 쓸건데 무슨 상관이세요, 사장님 ㅠㅠ...


그때도 그럼 지붕은 국방색(?)으로 가야하네마네 하시다가 결국 내 손을 들어주셨다(당연한 거 아니야?). 지금의 황정민 사장님도 결국 또 어두컴컴한 색을 고른 나에게 세 번이나 다시 물어보셨다. 너무 씨커멓지 않아요? 자, 햇빛 아래서 봐봐요. 그래도 이걸로 할거예요? 확실하죠? 이제 주문 넣어요?!




연일 비가 내린다는 소식에 유독 더 부지런을 떨어주신 황정민 사장님과 그의 식구들.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쏟아졌고, 황정민 사장님은 진도 현장으로 출근하지 않으셨다. 간만에 비가 와서 좀 쉬셨으려나, 하며 엄마와 함께 핀터레스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검은색 판넬 건물에 무슨 색상의 캐노피가 어울릴까. 주현관 출입문이 제일 중요한 포인트인데, 어떤 느낌으로 가야 할까. 창틀 안쪽도 검정색으로 바꿀수는 없을까.


결국 또 8시가 다 되어가는 저녁판에 황정민 사장님께 문자를 날렸다. 사장님, 저희 캐노피랑 문짝 주문도 들어갔나요?


곧이어 피곤에 절은 목소리의 황정민 사장님이 전화를 거셨다. 아마 '이놈 또 시작이군'하셨을지도 모른다, 키키. 결국에는 견적서에 있는 기본 자재보다 1.8배 더 비싼 자재를 써주시기로 약속을 받고서야 마음이 편해졌다.




"있잖아요, 제가 좀 찾아봤는데요"하며 하도 이것저것 사진들을 보여드리니, 황정민 사장님이 웃으며 손사레를 친다. 이제 그만 좀 찾아봐요!


말은 그렇게 하시면서도 또 궁금한 게 뭐냐고 츤데레처럼 물어봐주신다. 그러면서 은근히 당신의 지난 포트폴리오들을 자랑해주셨다(세상에, 관공서일도 많이 봐주신 건 알았는데 진도대교 케이블카까지 만드신 분이었어? 도대체 왜 우리 집에서 포크레인 타고 직접 땅파시는 거여, 황송하게).




다음 주에는 판넬도, 문짝들도 다 들어온단다. 그리고 판넬들을 철골위에 얹을 거란다. 울 아빠가 말했던 '상량식' 얘기도 하셨다.


옛날에는 집을 지을 때, 대들보(?)를 올리며 작은 제를 지냈다고 한다. 우리는 할머니, 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도 제사 대신 예배를 드렸던 집이라 돼지를 잡아 올리지는 않겠지만, 수고해주신 '황정민 패밀리'를 위해 작은 기념식사는 준비하고 싶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6화05. 호구가 되지 않는 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