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는 과세인가, 면세인가
할머니 때부터 농사를 짓고, 엄마가 블로그로 열심히 농산물을 팔았을 때는 '세금'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농부는 세금 안 내도 된다던데? 하는 정도였지, 언젠가 청년농업인들을 위한 세무교육을 들었을 때, 아무 생각 없이 농산물 도소매업으로 발급한 내 사업자등록증이 농부가 아니라 '식품점' 사업자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교육 덕분에 재빨리 '작물재배업'도 추가로 등록했지만, 그 정도로 세금에 대한 개념이 1도 없었다.
첫 공장에서 참기름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는데, 가격을 어떻게 잡아야 할 지 몰랐다. 그래서 전에 할머니가 이웃동네 방앗간에서 참기름을 짜오던 것을 생각해서, 참깨값+수고비 정도로 가격을 매겼다.
당시 수공예품 플랫폼으로 핫했던 곳에서 진도까지 직접 내려와 입점을 부탁하기에 수수료도 생각하지 않고 그리 하겠노라 해버렸다. 참깨값에 더한 수고비에 얼추 들어있겠지, 하는 애매한 생각으로.
우리의 기름방앗간은 쉴 새 없이 돌아갔다. 정말 장사가 잘 되었다. 참기름도 잘 팔리고, 들기름도 잘 팔렸는데, 나중에는 고객님들이 먼저 요청해서 '생들기름'도 짜고, 기존의 300미리보다 더 작은 150미리 상품도 만들게 되었다.
우리가 농사지은 참깨도 부족해 진도 이웃들의 참깨도 다 수매했고, 그것도 부족해 충청도와 경상도의 참깨도 써야 했다. 나 혼자 할 수 없어서 부모님도 밤낮으로 도와주셨다.
이렇게 부자가 되는 건가?라는 감회를 느낄 새도 없이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찾아왔다.
공장을 지으면서 사업자가 '일반과세자'로 전환되었는데, 난생 처음 부가가치세라는 것을 내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 금액이 생각하지도 못 한 큰 액수였다.
분명 쉴 새 없이 새벽까지 일을 하는데 왜 세금도 못 낼 정도로 돈이 없는 걸까? 우리 가족은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우선 첫 번째는 플랫폼의 수수료였다.
만약 수수료가 20%라면, 아마도 22%의 수수료라고 생각해야 마음이 편하다. 그들이 제시한 수수료에는 부가세가 별도로 붙으니까.
우리가 처음 가격을 정할 때 순전히 참깨값과 방앗간 수공비만 더했을 뿐, 그 외에 부가세나 수수료, 하다 못 해 병값, 박스비, 스티커, 택배비, 전기세(착유기와 로스터 등 열을 내는 기계들은 전기를 어마어마하게 먹는다) 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 것들을 다 고려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인건비는 빠진 것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국산 참깨는 날이 갈수록 귀해져서 첫 해에 키로당 17,000원에 사던 것을 지금은 30,000원 다 되게 매입하고 있다.
심지어 우리 참기름, 들기름은 깨를 높은 온도에서 빠르게 겉만 태우는 것이 아니라,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속까지 골고루 익혀서 짜기 때문에 시간도 오래 걸리고 착유량도 많지 않다. 이래저래 원가가 높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가격을 수정했다. 처음에는 참기름 300미리 한 병에 20,000원. 그 다음에는 25,000원. 그 다음에는 36,000원. 지금은 42,000원이다.
가격이 올라가니 신나게 돌아가던 기름 방앗간이 뚝 멈췄다. 내 인건비는 다 뺀다 생각하고 할인을 해서 보내드리기도 하는데, 이러나 저러나 우리가 내린 결론은 기름으로는 돈을 벌지 못 한다는 것이다. (국산 참기름, 들기름만 팔아 영위하시는 모든 자영업자님들을 존경합니다)
기름 이후로 나는 세금의 무서움을 알게 되었다. 플랫폼의 수수료가 얼마나 치명적인지 알게 되었다. 작년에는 수수료가 높은 그 플랫폼부터 바로 탈퇴했다. 위탁판매를 부탁하는 업체들에게도 계속 거절을 하고 있다.
박리다매로 조금 남아도 많은 곳에서 팔아주면 좋은 거 아닐까?도 생각해봤지만, 판매채널이 많아지면 관리하는 것만 어렵고, 우리 일만 늘어나고. 차라리 그 시간과 비용을 아껴 우리 식구님들께 혜택으로 돌려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제철김치를 시작할 때, 소량생산을 하더라도 최상의 품질과 직거래를 고집했다. 조금이라도 우리 식구님들께 좋은 가격으로 보내드리고 싶어서.
우리 김치는 메인재료부터 양념재료까지 전부 국산만 들어가는데, 무조건 싼 것만 찾는게 아니라 여러 개를 써보고 품질이 좋은 것을 선택한다. 원가가 진짜... ㅎㅎ...
거기에 세금까지 고려해 금액을 정했다. 얼갈이 열무김치 2키로 한 팩에 25,000원. 이는 세금까지 고려한 금액이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 일을 봐주시는 세무사님께서 전에 없이 전화를 해주셨다. 상의할 것이 있다고 했다.
대표님. 올해 한 해 동안은 김치를 과세가 아닌 '면세'상품으로 보기로 했답니다. 저도 이제 알게 되었네요.
당연히 자영업자를 위한 훌륭한 제도이지만, 수억을 들여 공장을 짓고 있는 나에게는 꽤나 찝찝한 타이밍이었다. 솔직한 말로, 이번에 부가가치세 환급좀 꽤 받겠는걸? 싶었단 말이지.
김치는 면세상품이고, 김치공장을 짓고 있으니 이번에 부가가치세 환급을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물론 비용처리가 되어 종합소득세가 더 낮아지겠지만).
괜히 억울한 마음에 왜 하필...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간이과세자로 둘 걸 그랬다고 하소연하니, 일반과세자의 장점도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게다가 우선 김치 면세 제도는 올해까지고 내년에는 어떻게 될 지 모른다니까(아니... 그럼 내년에 다시 과세로 바뀌면 기존에 내가 냈던 세금은? 해당사항 아니라며 ㅜㅜ 뭐람)
일단...
이미 벌어진 일이니까, 어차피 내 돈이 아니었다 생각하고 천 몇백만원 정도를 환급으로 기대했던 내 마음을 보내주기로 했다.
아무쪼록, 세금은 이토록 어렵다. 직접 농사지은 농산물도 팔고, 남의 농산물도 팔고, 가공도 해서 파는 '세무적으로 복잡한' 우리 사업자 화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