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돈 좀 달라고 사정해야 하는 건축주의 하소연
패기있게 땅부터 파시는 황정민 사장님을 보고 이래도 되나, 싶었던 마음이 들었다. 오래 돼서 가물가물하지만, 내 기억에는 저번에 후계농 융자로 첫 번째 공장을 지을 때 자금집행이 오래 걸렸던 것 같아서.
나의 고민들을 털어놓아도 사장님은 시원시원하게 원래 그렇다, 이 기간까지 무슨 작업을 할 거고, 이 기간까지 서류를 신청해서, 이 기간까지는 자금이 나올 것이다고 하셨다. 워낙 관공서일을 많이 해보신 분이니까 나보다 잘 아시나보다, 하면서 나도 마음이 놓였다.
부모님이 백두산 여행을 떠나셨을 때는 비도 엄청 쏟아졌다. 사장님은 기를 쓰고 공중에 매달려 기어이 지붕도 얹으셨다. 말씀대로 '공중전, 수중전'을 겪으면서 본인의 일정을 지키려고 노력하셨다. 이렇게 타들어갈 것처럼 뜨거운 날씨에도 사장님과 팀원들은 일을 멈추지 않는다.
그런데, 사장님께서 기대하셨던 그 날짜가 훌쩍 지나도록 돈은 그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한 두 푼 들어가는 공사가 아니다보니, 중간에 지어진 만큼 돈을 먼저 받을 수 있는 '기성고집행'을 신청했는데 서류에 서류에 서류가 겹쳐 깜깜무소식이다.
청년농업인을 육성하는 '농업기술센터'에서 첫 번째 서류가 이뤄진다. 실사를 나와서 정말 건물이 절반 이상 잘 지어지고 있는지도 확인하고, 설계도면이나 견적서 등을 꼼꼼하게 확인한다. 그리고 결재, 결재, 결재.
센터 순서를 지나면 농협 대부계로 넘어간다. 여기서는 센터에서 보내준 서류에 더해 추가적으로 대출서류를 작성한다. 심지어 공장과는 상관없어 보이는,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집과 관련한 서류도 필요하다. 여기저기서 서류들을 때고, 책 한 권정도 되는 서류들에 인적사항을 적고, 선생님은 그 서류들을 한장한장 복사하고 나서야 비로소 최종단계인 농신보에 그것들을 보낸다.
농신보에서는 청년농업인들을 위해 '신용보증'을 서주는 기관이다. 농신보에서 최종 검토를 해줘야, 그러니까 이 건물은 이 친구가 신청한 대로 그 만큼의 담보가치가 되는지, 이 친구는 대출을 해줘도 되는 사람인지를 확인하고나서야 비로소 농협에서 돈을 쏴준다.
글로는 몇 줄 안되지만 그 사이 서류들도 무지 많고, 사람에 사람을 거치는 과정이 무수하다. 하필 또 하반기 대거 인사이동으로 센터도, 농신보도 담당자가 바뀌다보니 서류와 결재가 더뎌진다.
그럴 수 있지, 하면서도 빡치는 이유는 서류를 관리하는 사람들의 태도이다.
내일모레 준공해도 될 정도로 거의 다 지어졌는데, 아직도 돈이 집행이 안 되고 있다는 나의 하소연에 그러게, 한 꺼번에 신청하지 왜 중간에 신청하냐는 핀잔이 돌아온다.
황정민 사장님은 순전히 나와 진도농부를 믿고 투자하신 것임을 안다. 우리가 훌륭한 포트폴리오가 될 것임을 기대하고 큰 돈과 사람을 먼저 투입해주신 것인데, 여기저기서 나몰라라하고, 사이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 건축주(나)도 기다리래요~ 라고 하니 얼마나 답답하시겠는가.
답답한 마음에 지난 주에는 농협 대부계에 찾아가 그 농신보 담당자 연락처를 내놓으라 했다. 내가 직접 전화를 해보겠다, 사정이 이러니 최대한 빨리 서류좀 봐달라 말하겠다고.
직접 가서 말해도 안 움직이는 사람들인데, 전화를 한다고 되겠어요? 자리도 다 바뀌었으니까 우선 바로 연락하지 마시고요. 제가 먼저 전화해볼테니까 그 다음에 연락해보자고요.
내가 무지 좋아하는 귀엽고 다정하고 일처리 똑 부러지는 대부계선생님이 나를 달랜다. 그런데 선생님 역시 아직도 농신보에 연락을 안 해보신 것인지 내게 "이제 전화해도 됩니다!"라는 사인을 주지 않으셨다.
황정민 사장님은 얼마나 속이 상하셨는지, 간밤에 문자를 보내오셨다. 설레고 부푼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돈이 없으니 여기저기서 여유가 없어진다.
돈이 없는 나는 이렇게 죄인이 된다.
죄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하루빨리 그 망할놈의 서류가 끝나서 황정민 사장님 역시 밀린 외상값들을 다 해치워야 사라질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