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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돈이 없다면 말 뿐인 사랑이 된다.

이럴거면 왜 대출을 해준다고 했어

by 곽그루

결혼하기 전에, 남편과 통화를 하다가 돈 때문에 펑펑 운 적이 있다.


우리 농장은 매년 배추농사를 몇 천 평 지어서 다 '절임배추'로 팔았다. 그런데 절임배추하는게 너무 힘들어서, 내가 책임지고 팔테니까 우리도 올해는 상인과 계약재배를 하자고 졸랐다.


늘 상인들과 계약재배를 하는 친한 진도언니를 통해 우리도 4천 평이나 월동배추를 심었다. 우리가 절임배추로 쓸 김장배추는 2천 평 밖에 안 심어두었고.


우리도 계약재배하면서 농사좀 편하게 짓자고, 택배 때문에 욕 먹어가면서 더 이상 절임배추로 고생하지 말자고 큰 소리를 쳤는데 말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처음 계약했던 그 상인은 도망갔고, 하필 그 해 배추가 똥값이 되어서 우리 배추들은 처량하게 밭에 남게 되었다.




화가 난 아빠는 수 천만원을 날린 댓가로 너가 정신을 차렸으면 된거라며, 트랙터로 다 갈아 엎어버린다고 했다. 식구들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 나 자신에 대한 원망과 한심함 등이 뒤섞여 내 마음은 엉망이 되었다.


그 때, 당시 남자친구였던 지금의 남편이 말했다. 그루야, 내가 있잖아. 뭐가 걱정이야. 같이 해쳐나가면 되지. 당장 돈이 필요한 거야? 얼마나 필요해? 내가 적금을 든게 이 정도 있는데, 필요하면 말해. 앞으로 혼자라고 생각하지 마. 뭐든 같이 해결해나가자.


그 말을 듣고 차안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장거리 커플이라서 주로 통화로 대화를 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한한 고마움과 미안함과 그 어떤 강한 다짐들로 인해서.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나 우리는 결혼을 했다. 여전히 장거리 커플이었고, 하동과 진도에 있는 각자의 농장에서 일을 하며 주말에만 종종 만날 뿐이었다.


우리는 신혼집 대신 공장에 투자했다. 후계농업인 대출로 2억을 신청했고, 몇 주의 기간동안 여러 기관에서 서류들이 오갔다.


보통 후계농업인 대출로 창고나 공장 등의 시설을 지을 때는 100% 완공 후, 그러니까 등기서류까지 나오고 나서 감정을 받고 대출이 실행된다. 그런데 우리는 중간에 한 번 대출을 실행하는 '기성고 대출'을 신청했다.




기성고 대출은 건축 과정 중 최대 70%까지 신청할 수 있었다. 총 2억원의 자금 중 70%인 1억 4천만원 정도를 먼저 달라고 신청한 것이다.


농업기술센터를 지나, 농협 대부계를 지나, 마지막 농신보까지 와서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그런데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었다.


보통 100% 완공 후에 감정평가를 받아 대출을 진행하는데, 이번 기성고 대출은 서류만 가지고 탁상감정을 해야 했다. 문제는 서류만 가지고 봤을 때는 우리 공장의 감정가가 너무 낮다는 것이다. 세 곳의 감정평가사에 문의를 했는데 두 곳에서는 1억 3천만원을, 다른 곳에서는 그나마 높게 1억 5천만원을 책정했다고 한다.


따라서 이런 저런 계산 끝에 최종 대출가능금액은 1억 6천만원이 나왔다. 심지어 주택담보대출처럼 방 한칸마다 '방공제'가 들어간 것이다. 내가 왜 임대를 하냐고요...? 이럴거면 왜 빌려주냐고요...? 임대를 안 하고 청년농업인이 직접 쓸 건물을 짓는 거니까 돈을 빌려주는거 아니예요...? 미리 말이라도 해주지 그랬어요...?




이런 상황을 황정민 사장님께 전했다. 황정민 사장님은 속상해서 그날 밤 소주를 드셨다고 한다. 나는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이틀내내 깨질듯한 두통과 구토에 시달렸다.


황정민 사장님이 그랬다. 우리 공장에 들어가는 자재들은 서류에 기재된 것들보다 훨씬 좋은 자재들을 쓴 것이라고. 나도 안다. 왜냐하면 뭐 하나 들어갈 때마다 사장님이 이게 얼마나 비싼 자재인지, 1.8배 비싼 것이고 이건 몇 백만원이 들었고 다 알려주셨으니까.


중간에 점검(?)하러 온 설계사무소 사장님도 너무 좋은 자재들을 썼는데, 사장님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니냐고 황정민 사장님께 넌지시 말한 것도 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더 좋은 자재를 쓰고 뭐 하고 이런 것들은 통하지 않는다.


감정평가는 지금 당장의 서류만 보고 결정하니까. 그것도 꽤 보수적으로 말이다.




황정민 사장님은 탁상감정이 아닌, 최종 감정에서 쓸 수 있도록 본인의 자비를 대어 수정 설계도와 견적서들을 보내주겠다 하셨다. 그런데 대부계 선생님은 팔짝뛰며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대안을 말해주셨다.


최종감정이 올라간다 해도 대출금액에 변동은 없다고 했다. 농신보에서 이미 결정을 했기 때문에. 만약 실제로 집행한 수정 서류를 가지고 간다면, 기존의 모든 서류들을 다 취소시키고, 기성고 대출이 아닌, 등기까지 완료된 시점에서 최종감정을 받아 더 높은 대출을 받는 것.(그런데 이 마저도 갑자기 서류가 바뀌면 '의심'을 받을 수 있다고 걱정하셨다)


두 번째는 그냥 이대로 진행하는 것. 그래서 최종 대출금액의 1억 6천만원의 70%인 1억 천 몇백만원을 먼저 받고 나머지는 등기나오면 받는 것. 2억원과의 차액은 내가 어떻게든 다른 대출을 받거나 다른 방법으로 매우는 것.


이 슬픈 이야기를 황정민 사장님께 전했더니, 대출은 1억 6천만원을 받더라도 우리를 위해서 감정가는 제대로 받아야 한다고 하셨다. 우리 공장이 실제보다 낮은 감정가를 가지고 있으면 나중에 2차 자금을 받을 때 불리하니까.




2억원의 공사비에서 아주아주 최소금액의 계약금인 2천만원을 남편이 보내주었는데, 대출이 다 집행되고 나서 계약금을 돌려받으면 그 돈으로 내부 설비도 채우고 취등록세 등을 내려고 했다.


그런데 남편의 2천만원도 지금 돌려받지 못 하게 된 상황이다. 이래저래 갑자기 돈에 빵꾸가 난 것이다. 그것도 몇 천만원이나.


결혼하기 전에 펑펑 울었던 것과 같은 상황이 찾아왔다. 그런데 남편은(물론 처음에는 본인도 무척 당황했겠지만) 차분히 나를 달랜다.


그루야, 오히려 잘 됐어. 대출받는게 좋은 건 아니지. 7월 말에 끝나는 적금이 있는데, 혹시 얼마나 더 필요할까?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 잘 해낼 수 있어.




주말마다 교회에 가는 우리 남편이 이번 주 기도제목을 물었다. 아멘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아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하나님. 그리고 할머니. 제게 이런 사랑가득한 남편을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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