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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델리 Mar 24. 2017

당신과 절교합니다

우리가 서로 다름을 깨달을 때


2월 _ 지치는 겨울



오늘 20년 가까이 알고 지내온 친구로부터 절교 선언을 받았다.


벌써 두 번째다. 작년엔 몇 년간 친하게 지내온 친구와 절교를 했다. 서로 세게 부딪혔고, 며칠을 앓다가 만나 서로의 다른 점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우리 사이에 단단하게 놓인 벽과 서로 굽히지 않으려는 고집을 다시금 느꼈다. 몇 시간에 걸친 대화, 혹은 의미 없는 씨름 끝에 사람들로 붐비는 어느 지하철 역 앞에서 마지막 포옹을 하고 헤어졌다.


그렇게 좋았던 추억을 뒤로하고

서로를 기억 저편으로 밀어내며

우리는, 서로 다시는 보지 않기로 했다.


어릴 땐 친구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다. 인생의 전부 같았던 초등학교 6년을 함께 보낸 베프와 다른 중학교를 배정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집에 가서는 눈물에 젖은 편지를 써서 주고받았다. 우리 우정 변치 말자고. 학교는 달라도 집은 가까우니 우린 괜찮을 거라고.


그런 눈물 섞인 다짐에도 불구하고 중학교 입학 후 우리는 자연히 멀어졌다. 오래 지나지 않아 그 친구도 나도 새로운 베프가 생겼다. 3년 후 같은 고등학교를 배정받아 다시 초등학교 때처럼 매일 함께 등하교를 했지만, 이미 우리 사이에는 떨어져 있던 3년만큼의 ─ 아니, 그 이상의 거리감이 생겼다. 똑같은 양의 시간을 함께 한다고 해도 결코 채울 수 없는.


대학에 들어가 여행을 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고 몇몇과 가까워졌고, 또 멀어졌다. 둘도 없는 친구라고 생각한 사람과도 시간이 흐르면 상황에 따라 자연히 멀어질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서로를 지켜주자고 다짐했던, 목숨과도 같다고 믿었던 친구가 세상 그 누구보다 큰 상처를 안겨 줄 수 있다는 것도.


사람들 사이에서 나에게 맞는 자리를 찾으려 애쓰면서, 좋은 관계란 서로 선선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 크게 부딪힐 일이 없어 얼굴 붉힐 일도 없으리라. 떠나가는 누군가의 뒷모습에 마음 다칠 일도,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멀어짐에 시간을 원망할 일도 없을 거라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절제력이 강한 인간이 아니었고, 정신 차렸을 땐 이미 몇몇 사람들과 예상보다 더 가까워진 후였다. 그리고 그중 하나와 세게 부딪혀 얼굴을 붉히고 끝내 헤어졌다. 순진하게도 어른이 되면 친구와 헤어질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잘못된 생각이었던 것 같다.


일 년 전에도,

또 오늘도 달라지지 않은 건

서로의 차이.

그리고 굽히고 싶어 하지 않는 고집이다.


어떤 사람과 친해지면 처음엔 몰랐던 다양한 면을 보게 된다. 훌륭하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아주 사소한 것들이 맞지 않는다고 느낀다. 비극은 바로 그 사소한 차이에서 시작한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1년 전 절교한 A는 조곤조곤 대화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원래 목소리가 크고 우렁찬데, 흥분을 하면 목소리가 더 높고 앙칼지다. 어느 정도는 유전의 탓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고치기를 포기한 부분이다.


대화 중에 가끔 내가 흥분해서 목소리가 커지는 걸, A는 자기한테 소리를 지르는 것 같다고 느꼈다. 물론 이성적인 판단으로 내가 정말 "소리를 지른" 것은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불쾌한 감정은 그대로였던 모양이다. 그 불쾌한 감정은 조용히 쌓여, 어느 날부턴가 A는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결국 A 안에서 처음엔 거슬리기만 하던 내 목소리가 커지고 커져서 좋은 점을 다 밀어내고 끝내는 나와 함께 있는 걸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그는 작고 낮은 목소리로 말해주면 좋겠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내겐 타고난 목소리를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내가 가진 어떤 자질, 성품, 행태, 성격 등이 타인을 불편하게 함을 알았을 때, 그를 위해 나를 얼마나 억누르고 바꾸고 고칠 것인가. 어릴 때는 사회화의 과정이라고 울며 겨자먹기로 싫어도 맞추고 고치던 것이, 이제는 쉽게 되지 않는다. 나이를 먹었기 때문일까. 이대로 나도 꼬장꼬장한 어른이 되고 마는 걸까.


처음엔 사소했던 거슬림이

관계의 좋았던 모든 것들을 삼켜버릴 때

나를 지키기 위해 담담히 돌아서는 것 외에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20년을 알고 지낸 친구 B의 경우도 비슷하다. 아주 오랜 시간 알아왔기 때문에 그동안 다양한 이유로 섭섭한 게 쌓였겠지만,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아플 정도로 명쾌했다.


나는 오전에 만나는 걸 좋아하고, 너는 오후에 만나는 걸 좋아하지. 오랜 시간 참아왔지만, 나도 네게 맞추기가 힘들고 너도 딱히 나한테 맞춰줄 생각이 없는 것 같으니 우리 이제 그만 만나는 게 좋겠다.


우리가 함께한 긴 시간 동안, 그녀가 나를 배려한 만큼 나도 그녀를 배려했다. 관계란 함께 만드는 거고, 한쪽만 희생하는 관계가 20년이나 이어질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관계가 어째서 이렇게 소원해졌는가 생각해보니, 우리가 애초부터 그렇게 죽이 잘 맞는 사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도 죽이 척척 맞아 편안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래 만나도 안 맞는 옷처럼 약간 불편한 사람이 있다. 하지만 죽이 잘 맞는 사람과도 짜증 나는 날이 있고, 안 맞는 사람과도 즐거운 날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관계를 계속 이어나간다.


서로가 편한 사이인가 아니면 불편한 사이인가를 나누는 기준이 뭘까. 내 기준은 그 사람 앞에서 얼마나 나 자신일 수 있는가의 여부인 것 같다. 공적인 관계에서 사람들이 선호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또는 거슬리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때때로 나는 100%의 자신이기를 포기하거나 사회가 원하는 가면을 쓴다.


그렇게 하루를 잘 넘긴다고 해도 그 피로감이란 현기증 나는 것이어서, 하루가 끝나면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이나 관계를 찾아간다. 물론 그 어느 누구도 나를 100% 받아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에 한 없이 가까운. 내가 몇 퍼센트의 나여도 상관없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안정감과 행복감을 준다.


그렇기에 사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나라는 인간의 퍼센트를 낮추려 하면 더 큰 피로감을 얻는 건 아닐까, 의문이 들었다. 사적인 공간에서 나는 사람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 달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잘 맞지 않는 사람과 어떻게든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다가, 어느 순간 그 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이 얻는 만족감보다 커질 때, 툭 ─ 서로의 손을 놓아버리는 것은 아닐까.


사람들이 하나 둘 나를 떠나가네.

나는 혹시 괴물이 아닐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는 천사도 아니고 괴물도 아니다. 우울한 얼굴로 앉은 나에게 한 친구는 안 맞는 사람과는 별수 없다며 쿨하게 넘기라고 조언했고, 다른 친구는 둘이 성향이 비슷하니까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쓴 거라며 혀를 찼다.


나이를 먹어도 인간관계는 어렵구나. 사람들 사이에 앉은 자리가 조금씩 편해진다고 느낄 때마다 이렇게 콕콕 ─ 앉은 의자에서 가시가 일어나 손끝을 찌른다.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하자고 멀어지고 나서도, 떠나간 그의 빈자리가 아직 눈에 밟힌다. 그러나 오늘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배려하고 잘해주는 것 외에, 나는 그 빈자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imageⓒ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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