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둘째 주 키위 이야기
카티카티는 고속버스 터미널도 없을 정도로 작은 마을이었다. 고속버스 정류장에 내려 버스에서 큰 캐리어를 낑낑거리며 꺼내고 있을 때, 브로커 소니아가 와서 말을 걸었다. 카티카티에서 내린 사람이 나밖에 없었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누가 봐도 이 작은 마을에 내릴 이방인은 자기가 부른 워홀러 밖에 없었던 거겠지.
소니아와 가볍게 안부를 물으며 인사를 나누고 메인 가 Main St. 끝에 있는 원더러스트 백패커스 Wonderlust Backpackers 로 따라갔다. 얼마가 될지 모르겠지만 당분간 나의 소중한 안식처가 될 곳이었다. 브로커가 나를 이 숙소에 넣어주면, 숙소 주인은 내가 일하게 될 키위 팩 하우스까지의 차편을 제공하기로 되어 있었다(팩 하우스는 숙소에서 차로 15분 거리).
일주일치 방세 130불을 선불로 내고 숙소 주인 스콧과 1층에 공동 샤워실과 주방, 거실을 같이 둘러봤다. 나는 2층에 있는 6인실 방에 배정되었는데, 방이 여유가 있는 편이라서 6인실에는 뉴질랜드 아줌마 한 명만 묵고 있었다. 나는 창문이 마주 보이는 이층 침대 아래쪽 베드에서 지내기로 했다. 스콧이 올려준 캐리어를 풀어놓고 짐을 정리했는데, 짐이 별로 없어서 생각보다 금방 끝났다. 바로 다음 날부터 출근하기로 해서 (그리고 아는 사람도 없고 갈 데도 없고 달리 할 일도 없어서) 새나라의 어린이처럼 9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할 준비를 마치고 다른 워홀러들과 함께 스콧의 차를 타고 키위 팩 하우스로 향했다. 전날엔 미처 몰랐는데 내 방 옆으로 12명 정도 묵을 수 있는 아주 큰 방이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방에서 지내고 있었다. 대부분 대만, 홍콩, 한국에서 온 워홀러들이었다. 앞으로 같이 일하게 될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수다를 조금 떨다 보니 금방 팩 하우스에 도착했다.
키위 팩 하우스의 업무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뉘어 있었다.
1. 픽커들이 따온 키위가 상한 데는 없는지, 또 판매에 적합하지 않은 건 없는지 걸러내는 그레이딩 Grading
2. 그렇게 걸러진 키위가 크기에 따라 자동 분류되면 그걸 알맞은 포장 용기에 담아 포장하는 패킹 Packing
3. 포장된 키위를 실제로 판매하기 전에 상한 건 없는지 확인하고 필요에 따라 재포장하는 리패킹 Repacking
간단한 수속을 마친 나는 리패킹 팀으로 보내졌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하루 8시간씩 일했는데, 테이블에 서서 포장된 키위 박스를 열고 양손에 키위를 하나씩 쥐고 소중하게 돌려가면서 상한 데가 없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확인이 끝나면 상하지 않은 키위를 새 포장 박스에 개수가 맞게 넣으면 된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지만, 열어보면 곰팡이가 핀 것도 많이서... 그래, 뭐. 필요하니까 하겠지.
그렇게 4일을 내리 일하고, 금요일부터 부활절 연휴가 시작되었다. 하늘이 파랗고 햇살이 쨍쨍하니 날씨가 너무 좋아서 침대에 누워만 있기에는 아까운 날이었다. 동네에 익숙해질 겸, 친구들과 숙소 뒤로 난 길을 따라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옷을 가볍게 입고 카메라만 덜렁 들고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걸었다.
구름이 낮은 건지 하늘이 높은 건지. 전깃줄 따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뉴질랜드의 나무는 크고 웅장했다. 햇살이 잎사귀에 부딪혀 빛나고 바람이 불면 물결처럼 유연하게 움직였다. 햇살은 흐르는 강 위에도 공평하게 부서져 내렸다. 반짝반짝 빛나는 강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파크 로 Park Road 끝에 있는 공원에 도착했다. 꽤 멀리까지 나와 버렸네.
이제 일이 있으니 돈 걱정은 할 필요 없고, 지낼 곳이 있으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날이 좋아서 산책에 나선 것만으로도 이렇게 만족스럽다니. 공원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햇살에 반짝이는 강물이 유유히 흘러가는 것을 보면서 오후를 보낼 수 있어 행복했다. 일주일밖에 안되었지만, 이 조용한 마을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카티카티. 혀에서 통통 튀는 이름도 귀엽고 정감 있다. 여기서 오래도록 머물 수 있다면 좋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