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떠나 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32
Sydney, New South Wales
Australia
시드니 하버 브리지 앞에 있는 한 카페에서 우리만의 월드컵을 즐기는 중이다. 무슨 말이냐고? 함께 일하는 그 누구도 같은 나라에서 온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이 작은 카페에서 우리는 각자 그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불가리아 대표, 모니카
체코 대표, 하나
인도네시아 대표, 헤니
프랑스 대표, 아멜리아
이탈리아 대표, 알레 (가끔은 알렉스)
스페인 대표, 루벤
호주 대표, 샘
그리고 한국 대표, 바로 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리는 서로를 도우며 함께 일한다. 일한 지 가장 오래되어 우리의 매니저 격인 모니카는 아주 꼼꼼한 사람이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일을 해내고 우리 사이의 일을 조율해서 잘 굴러가도록 만든다. 약간 다가가기 어렵고 조금 딱딱해 보일 때도 있지만, 그래서 무슨 농담으로 그녀를 웃게 만들면 알레를 웃겼을 때보다 곱절은 보람차다. 늘 서로 농담을 주고받는 알레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미 웃고 있으니까.
체코에서 온 하나는 굉장히 점잖다. 아멜리아, 알레와 내가 한 팀이 되어 늘 여기저기 농담을 던지고 다니는데, 하나는 늘 차분해서 웃기기가 쉽지 않다. 항상 은은한 미소는 짓고 있는데 빵 터지게 웃기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하나와 헤니는 함께 일한 지 오래되었는데, 헤니는 하나와 성격이 정반대다. 하나가 은근한 휴화산 같은 느낌이라면 헤니는 지금 막 터지고 있는 활화산 같은 친구다. 그런데도 둘이 부딪히지 않고 손발이 착착 맞으니 신기한 일이다.
아멜리아와 알레는 보통 오후에 일을 하러 오는데 우리는 일하면서 끊임없이 서로룰 웃기려고 노력한다. 무슨 일이든 재밌게 하다 보면 시간이 휘리릭 지나가기 때문에 웃기는 일에 진심이다. 바리스타인 샘은 기술을 뽐내면서 커피는 잘 만드는데 나이가 어려서인지 아직 어리바리하다. 그래서 우리 삼총사의 놀림을 가장 많이 받는다. 가장 마지막에 카페에 들어온 루벤은 예쁜 여자를 보면 “캐러멜 라떼”라고 불러서 커피 주문에 혼선을 준다.
그중에서도 아멜리아와 알레는 나와 가장 죽이 잘 맞는 친구들이다. 언젠가 셋이 일이 끝나고 쓰리 몽키스 바 3 Monkeys Bar 에 가서 맥주를 걸쳤는데, 알레가 아시아인과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노는 게 처음이라고 슬쩍 고백했다. 사실 나도 그래. 나도 이탈리아 친구는 처음이야! 화제는 이리저리 튀고 온갖 유럽어와 한국어가 난무하지만, 그게 참 재미있다.
생각해 보면 같은 나라 사람 하나 없이 이렇게 마음 편하게 지내는 건 처음인 것 같다. 그냥 별생각 없이, 진짜 친한 친구처럼. 헤어질 때 비쥬 Bisou 를 가르쳐준 아멜리아 덕분에, 헤어질 때마다 서로의 볼을 맞대고 뽀뽀를 하고 포옹을 하고 내일 보자고 인사한다. 그러면 한 걸음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얼마 전 알레 네 집에 초대받았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시드니 뒷골목에서 아멜리아와 춤을 추며 걸었다. 아멜리아네 집으로 가는 다리 앞에서 헤어지며 양볼을 맞대고 쪽쪽 뽀뽀를 하고 꼭 껴안았다. 잔뜩 흥이난 아멜리아가 “You’re my best friend!”라고 외치며 다리 저편으로 넘어갔다. 아이고 귀여워라.
함께하며 즐거운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어디서 왔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