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3회
지금에서야 되돌이켜 보니, 나는 이미 삶에서 필요한 것들을 대부분 갖추게 되었다. 관계적으로 보면 가족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받아들이게 되었고, 서로의 삶을 보듬을 수 있는 친구들도 생겼고, 사랑하는 사람도 항상 곁에 있게 되었다. 대출이 껴있고 작긴 하지만 안락하게 꾸민 보금자리도 있고, 경제적으로도 이전 그 어느 시기보다도 풍족해졌다. 오직 한 가지, 인생에서 가장 큰 혼란과 고통을 주는 것이 남아 있다. 바로 일이다. 해도 슬프고 안 해도 슬픈 — 일.
우리의 과학기술이 아무리 강력하고 우리 회사들이 아무리 복잡하다 해도, 현대의 일하는 세계의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결국 내적인 것으로서 우리 정신의 한 측면을 구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바로 일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널리 퍼진 믿음이다. (중략) 직업 선택이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새로 사귀게 된 사람에게도 어디 출신이냐, 부모가 누구냐 묻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느냐고 묻는다.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길로 나아가려면 보수를 받는 일자리라는 관문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는 가정이 깔려 있는 것이다.
Four: 직업 상담
『일의 기쁨과 슬픔』 중에서
지난 금요일에 일 때문에 또 깊은 우울에 빠졌다. 20대에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남용하며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돌아다니다가 비교적 늦은 나이에 한국에 돌아와 취업을 했다. 중소기업에 다니면서 고달프고 힘든 날이 많았고, 때로는 거지 같은 일도 당했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 꿋꿋하게 그 자리에 서 있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2년을 버텨서 조금 더 큰 회사로 이직을 했다. 처음에는 나쁘지 않았는데 5년 정도 일하다 보니 여러 가지 일들로 스트레스가 점차 심해졌고, 지금 생각해 보면 약간의 공황장애까지 왔던 것 같다. 회사가 진절머리 나서 떠나고 싶은데 도저히 사직서를 낼 수가 없어서, 지금 상담 선생님과 처음 상담을 시작했었다. 내가 잡고 있는 게 나를 해치는 칼날인 걸 알고 있으면서도, 도저히 그걸 놓아버릴 용기가 없었다. 그때는.
상담을 몇 달 정도 받으면서 서서히 그만둘 용기가 생겼지만, 그만두면 무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친구가 전직의 길을 터주었고, 함께 자격증을 따기로 하면서 그걸 준비하느라 몇 개월 정도가 더 흘렀다. 끝없는 계획과 계획, 더 많은 계획을 거듭한 끝에 사직서를 내고 회사를 떠났다. 그렇게 자유의 몸이 되자마자, 부자유의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코로나가 터졌고, 아무도 어디로도 떠날 수 없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친구랑 같이 외국으로 자격증을 따러 나가기로 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무산되었고, 기다림을 이어가던 나는 아무런 계획도 없이 침잠했다.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노를 젓는 것도 포기했던 것 같다. 그냥 가라앉았다. 우울의 바다에 몸을 맡기고. 깊은 심해까지.
일 년쯤 그렇게 예고에도 없던 백수생활을 했다. 그 기간 동안 푹 쉬고 잘 지냈냐 하면, 속상하게도 그렇지 못했다. 상반기에는 언제 떠날지 모르는 버스가 오가는 터미널에 앉아서 끝도 없이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가끔 버스가 들어오면, 이 버스가 내 버스는 아닐까 목을 길게 빼고 바라보다가 번번이 허탕을 치고마는.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는데, 하반기에는 그마저도 할 수 없었다. 아예 터미널 바닥에 철퍼덕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버스는 영영 오지 않을 거야. 겉으로는 조용히 일상을 이어나갔지만, 속으로는 너무나도 불안해서 눈앞이 캄캄했다. 가족과 친구들은 그동안 열심히 살았으니 1년 정도는 쉴 수도 있지, 그런 의미도 없는 위로를 해주곤 했다.
결국 전직을 권한 친구가 나를 건져서 이렇게 저렇게 가르쳤고, 지금 어찌어찌 일을 하고는 있다. 그런데 지금 이 일이 나를 무척 괴롭게 한다. 아니다, 이 일이 문제가 아니다. 일과 나의 관계가 문제다.
일이 의미 있게 느껴지는 건 언제일까? 우리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의 기쁨을 자아내거나 고통을 줄여줄 때가 아닐까? 우리는 스스로 이기적으로 타고났다고 생각하도록 종종 배워왔지만, 일에서 의미를 찾는 방향으로 행동하려는 갈망은 지위나 돈에 대한 욕심만큼이나 완강하게 우리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중략) 우리가 그저 물질만 생각하는 동물이 아니라 의미에 초점을 맞추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Three: 비스킷 공장
『일의 기쁨과 슬픔』 중에서
나는 어릴 때부터 이상한 소명의식이 있었다. 대단한 사람이 되어 어마어마한 일을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나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세상에게 — 의미 있는 일.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나는 어딘가 의미 있는 일에 잘 ”쓰이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대학에 다닐 때는 NGO 단체에서 일하는 걸 꿈꾸기도 했고, 졸업 전쯤인가에는 종교에 귀의하는 건 어떨까 나름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내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자아내거나 고통을 줄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그때는 했던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그 꿈은 점차 쪼그라들었다. 그저 나에게만큼은 의미가 있는 일이기를 바랐다. 안 그러면 버텨내지 못할 테니까.
세상에는 자기 직업에 자부심이 있는 사람, 경제적으로 충분한 보상을 받는 사람, 혹은 재미를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세 가지를 다 가졌다면 엄청난 일이겠고, 셋 중 하나에라도 해당된다고 해도 아주 운이 좋은 케이스 일거라 생각한다. 어릴 때 나는 직업에 자부심이 있었으면, 내가 하는 일에 의미가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러다 회사에 취직하고 나서는 일에 의미도 자부심을 느낄 수 없어서 괴로워했다. 그나마 적당한 경제적 보상이라도 받으니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회사마저 그만둔 지금에 와서는 경제적 보상이 먹고살 만큼만 되면, 자부심이든 보람이든 재미든 — 뭔가 더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 같다. 뭐가 되었든 경제적 보상만으로는 이 괴로움을 상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들을 괴롭히는 가장 흔하고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착각이 하나 있다고 말했다. 그저 남들 하는 대로 평범하게 살기만 하면 그 과정에서 어떻게 해야 인생을 제대로 사는 것이냐 하는 문제에 관한 직관을 얻을 수 있다고 당연시하는 착각이었다. (중략) 그런데 자신은 어떤 잘못이나 어리석음 때문에 그런 직관을 얻지 못했고, 그 결과 진정한 ‘소명’을 이행하지 못하고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마음에 남아 괴로워한다.
Four: 직업상담
『일의 기쁨과 슬픔』 중에서
처음에는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의미가 없고 보람을 찾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내가 문제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뭘 해도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구나. 일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구나. 나는 일에서 적정한 보수와 보람과 재미를 다 얻을 수 없는 사람인가 봐. 그렇게 생각이 들면 깨끗하게 포기하고 일에서는 보수만 받고, 보람과 재미는 다른 곳에서 찾으면 되는데, 그게 안 돼요. 포기가 안돼. 일에서 보수 이상의 무언가를 계속 갈구해요.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너무 답답하고, 왜 이게 포기가 안될까요? 왜 그럴까요?
넋두리처럼 두서없이 두다다다 내뱉은 말을 듣고 선생님이 묻는다. 일에서 왜 그걸 다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죠? 정도의 문제는 아닐까요? 그 질문은 내 안에 또 다른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왜 이렇게 사람이 극단적일까. 보람이 5% 있어도 있기는 있는 건데, 100%가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군다. 견고한 기준을 가진 것 치고는 그 100%가 어떤 상태인지조차 가늠이 안된다. 그 게이지가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으니까. 늘 즐거운 일만 하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일을 하면서 때로 괴롭고 힘들더라도 그만두지 않는 이유, 그걸 갖고 싶다. 물론 대부분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렇겠지만, 그래도 보수 이상의 이유를 갖고 싶다. 그냥 먹고살아야 되니까 하는 건, 태어났으니까 사는 거랑 비슷한데 그런 식으로 살아가고 싶지 않다.
모두가 일과 사랑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는 너그러운 부르주아적 자신감 안에 은밀하게 똬리를 틀고 있는 배려 없는 잔혹성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 두 가지에서 절대 충족감을 얻지 못한 이야기가 아니다. 충족감을 얻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뜻일 뿐이다. 예외가 규칙으로 잘못 표현될 때, 우리의 개인적 불행은 삶에 불가피한 측면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저주처럼 우리를 짓누르게 된다.
Four: 직업상담
『일의 기쁨과 슬픔』 중에서
저는 원래 돈에 큰 욕심이 있는 사람은 아닌 거 같아요. 많으면 편하긴 하겠지만 좀 없어도 괜찮다 싶고. 주변에 욕구가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가 상대적으로 더 그렇게 느끼는 거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도 내가 돈을 벌지 않으면 학비를 낼 수 없으니까 학교 다니면서도 아르바이트를 계속하고, 내가 돈을 벌지 않으면 가족이 힘드니까 대학원 가고 싶었던 것도 접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잖아요. 그렇죠? 선생님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알아볼 시간이 없었던 거예요. 이 문제는 아주 중요한 부분인 거 같아요. 한 번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해요.
나는 일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일까? 그랬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무슨 일을 해야 할까? 전혀 모르겠다. 내가 뭘 할 때 즐겁고 행복한지 잘 모르겠다. 나이는 이렇게 먹어놓고 나에 대해서 아는 게 전혀 없는 것 같은 생경한 느낌이 들었다. 대부분의 문제가 돈 때문이라면, 돈 생각만 안 하면 뭘 해도 즐거울까? 로또만 맞으면 해결되는 문제일까? 돈을 산처럼 쌓아두고 나면 나는 대체 뭘 하면서 살까? 아마도 저금해 두고 월급처럼 돈을 쪼개서 쓰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것 같다. 그런데 그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게 대체 뭘까? 저는 모르겠어요. 정말 모르겠어요, 선생님.
지금 쭉 이야기 한 걸 들어보면, 한 시간 동안 거의 말을 멈추지 않고 쭉 하거든요. 말하는 식으로 살아온 거 같아요. 멈추면 죽을 거 같으니까 계속해서 막 달려온 거 같아요. 선생님의 조곤조곤한 말에 나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오늘은 시간이 다 되었네요. 나는 서둘러 짐을 챙겨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