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4회
유튜브의 바다를 유영하다가 우연히 HSP에 대한 콘텐츠를 접하게 되었다. 영상을 보면 볼수록 내 얘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왔다.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을 깊이 찔렀다. HSP가 MBTI를 이어 약간 뜨는 트렌드인지 책도 몇 권 나와있었다. 내가 HSP일까? 그걸 알고 나면 내가 조금 편해질까? 기대 반, 의심 반으로 HSP에 대한 책을 몇 권 사서 읽기 시작했다.
HSP(Highly Sensitive Person)는 매우 예민한 기질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용어로, 인구 통계학적으로 16퍼센트가량이 이에 해당하며, HSP 중 내향 대 외향의 비율은 7대 3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략)
‘매우 예민한 사람’이라고 하면 왠지 어감상 성격에 무언가 문제가 있는 듯 느껴지지만, 그저 일반적인 성격 유형 중 하나일 뿐입니다. 다만 이러한 기질의 특성을 잘 이해하지 못한 채 예민한 기질로 인한 과도한 심적 고통이 지속되면, 만성적인 우울이나 불안 장애로 이어질 수 있기에 예민한 기질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HSP로서의 삶이란
『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 중에서
앉아서 또 으레 하듯 무슨 이야기를 할까 잠시 망설이다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을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HSP라는 게 있는데, 내가 그에 부합하는 사람인 것 같다. 나는 감각적으로 예민하고 감정적으로도 타인에게 영향을 쉽게 받으며,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그들이 하는 작은 행동과 표정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머릿속으로는 그에 대한 생각이 계속 흘러가며 쌓인다.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와서는 집에서 한동안 쉬면서 그런 자극들을 잠시 흘려보낼 시간이 필요하다. 거기에는 내가 했던 행동들 중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에 대해 이불킥을 하는 시간도 포함된다.
어떤 사람과 갈등 상황에 있을 때, 내가 어떤 말을 하면 이 사람이 보일 반응을 고려해서 머릿속으로 엄청나게 시뮬레이션을 많이 돌려본 후, 가장 문제가 없을만한 의견을 내놓는다. 그에 대해서 상대방이 별일 아니라는 듯 흔쾌히 넘어가버려서 일갈에 갈등 상황이 해결되었을 때 맥이 탁 풀리면서 느껴지는 허무감에 대해서도 말했다. 동시에 이 사람은 이 상황에 대해서 나만큼 고민하지 않았구나 하는 게 느껴져서 혼자 고민고민한 내가 좀 한심하게 느껴진다는 것도.
다른 사람들을 많이 신경 쓰는 것 같아요. 선생님의 말에 나는 냉큼 동의했다. 맞아요. 눈치를 많이 봐요. 선생님은 내가 다시 상담을 하러 왔던 그 첫날에 내가 처음 했던 말도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선생님의 인상이 좀 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고. 그리고 물었다. 왜 그렇게 다른 사람을 많이 살필까요?
그러게. 왜 이렇게 다른 사람을 많이 살필까? 외부에 있을 때, 나의 감각과 감정은 타인에게 많이 할당된다. 가끔은 이런 경우도 있다. 알고 지낸 지 오래된 아주 가까운 친구가 다른 사람들이랑 있으면 내가 알던 사람이랑은 달라지는 경향이 있다. 주목을 받으려고 하는 건지, 아니면 본인도 이 자리가 불편해서 분위기를 풀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너무 과시하듯이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어서 같이 있기가 힘들 때가 있다. 나는 전체적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적당히 밸런스를 맞추면서 있는 걸 좋아하는데, 친구가 모든 주목을 다 끌어가서 한참 동안 이야기가 이어지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그걸 듣고만 있다 보면 점점 마음이 불편해진다. 이건 나만의 생각이고 사실 다른 사람들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자기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 친구가 좋을 수도 있다. 혹은 이 친구도 불편한 자리라 말이 많아지는 게 느껴져서 나도 덩달아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나는 그 상황이 불편하다.
선생님은 그 “불편한 감정“이 무엇인지 조금 더 면밀히 보고 그 감정에 이름을 붙여보라고 했다. 전체적인 밸런스를 해치면서 모든 주의를 자기 자신한테로 끌어당기며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는 친구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을 한 마디로 표현하라니. 갑자기 독일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 나는 한참을 고민한 끝에 ”미약한 꼴 보기 싫음“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굳이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아주 미약한 꼴 보기 싫음”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선생님은 그냥 꼴 보기 싫음도 아니고 “미약한” 꼴 보기 싫음이라는 내 말에 잠시 웃었다. 감정표현이 아주 섬세해요. 감정적인 선이 매우 섬세한 사람인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모든 감정들이 한데 똘똘 뭉쳐서 엉켜 있어요. 다 뒤죽박죽으로요.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들에 맞는 이름을 붙여줄 여유가 없는 삶을 살아온 것 같아요. 먹고살기도 바쁜데 이런 거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뭉개며 살아온 거죠. 그런데 그렇게 살다 보니까 이제는 그게 다 뭉쳐져서 스스로를 아래로 끌어당기게 된 거예요. 이제 이걸 해결해야 할 때가 온 거라고 봐요.
그렇구나. 나는 감정이 매우 섬세한 사람인데 그런 것에 일일이 이름을 붙이고 무엇인지 가늠할 시간을 충분히 갖지 않았구나. 먹고살기가 바빠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그런 걸 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어릴 때 엄마부터 시작해서 살면서 만난 주변 사람들도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며 나를 타박했고, 다른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살지 않는다고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했다. 나는 이상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그들의 조언처럼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고, 감정과 감각에 무뎌지려고, 흐르는 대로 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삶이 내 마음처럼 되지 않는 날에는 대체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며 사는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왜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하는 일들이 나한테는 이다지도 힘든 과업처럼 느껴질까. 대체 “보통의 정상적인“ 사람들은 어떤 생각과 기분으로 살까. 그렇게 산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나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당신은 아마도 “지나치게 걱정하지 마”, “더 강해져야 해”, “남들처럼 즐기는 방법을 배워”라는 말을 수없이 들으며 살아왔을 것이다. 달라져야 한다고 끊임없이 부추기는 세상에서 당신은 남들보다 민감한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타인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자기 자신을 바꾸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을 양으로 측정하지 않고 질로 측정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당신은 남들처럼 생산적이거나 효율적이지는 못하지만, 질적으로 우수한 일을 해낼 수 있고, 좁은 폭을 깊이로 상쇄할 수 있다.
들어가기 전에
『센서티브 (Highly Sensitive People)』 중에서
오늘 상담이 거의 끝날 무렵에 선생님이 말했다. 책을 읽고 나를 어떤 타입으로 상정해 볼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 오는 것은 그보다 조금 더 나를 면밀하게 보고 나에게 맞는 해결책을 찾기 위해 오는 거잖아요. 돈을 내고 시간을 들여서 여기까지 오는 것은, 그렇죠? 그런 게 아니라면 그냥 집에서 혼자 책 읽어보고 하면 되지, 여기까지 올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서는 좀 더 자기 자신에 집중해 보는 게 어떨까요.
그 말이 맞다. 책으로 아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책은 나의 과거를 알지 못한다. 내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나의 현재 상태가 어떤가를 가늠하게 해 줄 뿐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 해결책도 일부는 들어맞는 것도 있고, 일부는 맞지 않는 것도 있을 것이다. 나는 혼자서 고군분투하며 내가 가고 있는 곳이 앞인지 뒤인지 따질 시간도 없이 지내왔다. 지금에 와서는 내 안에 모든 것이 단단하게 얽히고설켜서 그 무엇도 명확하고 깨끗하게 보이지 않는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무얼 좋아하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 커다란 실타래처럼 엉겨서 마음속에 들어앉아 있고 그 거대한 실타래 중간중간 삐져나온 실 끝을 잡고 책을 읽으면서 또 혼자 가늠해보려 한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닌데도.
같이 실 끝을 잡고 이 끝이 어디인지 그 끝까지 같이 더듬어 따라갈 사람을 찾아서 왔으니까, 이제 하나씩 하나씩 풀어나가면 된다. 혼자가 아니라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