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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델리 Nov 20. 2024

11월은 가장 우울한 달

심리상담 2회 차


오늘은 무슨 얘기를 해야 할까. 상담하러 올 때마다 늘 그게 고민이다. 선생님과 눈도 마주치지 못하면서 마주 앉아 상담을 시작하는 그 몇 분이 무척 더디게 흘러간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겸연쩍게 웃어 보여도, 선생님은 질문조차 던져주지 않는다. 혼자서 골똘히 시선을 피하면서 할 말을 생각한다. 아우, 오늘은 또 뭔 얘기를 하지.



지난주에 상담을 하고 나서, 그날 하루 종일 그 우울한 기분에 젖어서 보냈다고 했다. 기분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는데 어떻게 수면으로 끌어올릴지 모르겠고, 끌어올리고 싶은지도 모르겠어서 그냥 그 기분대로 침잠해 있었다고. 우울하다는 게 스스로에게는 큰 뉴스인 듯한데 (대체 왜?) 어쨌거나 그 사실을 알고 나니까, 이전에 있었던 모든 일들과 내가 했지만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던 행동들과 감정들이 모두 우울을 기준으로 재해석되는 과정을 겪고 있다.


그동안 꾹꾹 틀어막으려 애를 써온 뚜껑을 열고 나니까 온 군데로 우울의 향기가 퍼진다. 내가 들여다보지 않으려고 했던 커다란 단지 안에 내가 들어있고, 그동안 나는 그 안에서 내가 죽어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뭐가 됐든, 이 뚜껑을 열고 싶지 않았던 건 확실하다. 한 번 열어놓으니까 닫을 수는 없고, 주변이 온통 우울의 향기로 가득하다. 향기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이 구린내의 근원지에 작고 보잘것없는 내가 들어앉아 있다.


요즘은 내 주변 사람들이 나의 기분을 고려해 주는 이상한 버블 안에서 사는 기분도 든다. 우울증 진단을 받고 2주가 지났는데, 그동안 가까운 친구들 몇몇과 동생에게 나의 상태를 알렸다. 일단은 투약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까 조언도 얻었지만 배려도 많이 받는 것 같다. 남들도 배려를 해주고 나도 내 신경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으니까, 그럭저럭 괜찮은 기분을 유지하면서 한 주를 보냈다. 기분이 중요한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내려가면 올라오기는 확실히 힘드니까, 적정선을 유지하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려가면 올라오기도 힘들지만, 내려간 상태에서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하면 안 그래도 없는 에너지를 더 끌어다 써버려서 다 때려치우고 숨어버리고 싶어지기도 한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하는 기분을 누르기가 어렵기도 하고.


요즘 시간 날 때마다 읽고 있는 『명랑한 은둔자』 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다. 내 주변에 있는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믿고 살았다. 그런데 이 작가는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아니 이미 내 마음을 절절히 이해하고 있다는 이상한 확신이 든다. 아마도 이것은 나만의 일방적인 생각이고 사랑이겠지만, 이 작가는 분명 내가 가는 길을 먼저 간 사람이고 이 사람의 말을 나는 이해하고 있다. 말로는 못하더라도 마음 깊숙한 곳에서, 커다란 단지 안에서 오랜 시간 감금 당한 작고 보잘것없는 내가 고개를 강하게 끄덕인다. 그래, 이 사람은 나를 이해해!


중독에 취약한 사람들은 회복의 도구를 집어 들기를 체질적으로 어려워한다. 그런 도구는 보통 중독적 생활 방식과 정반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독적 생활 방식은 무릇 모든 감정적 혹은 정신적 문제에는 물리적 해결책이 있다는 믿음에서 기인할 때가 많다. 저 M&M’s 한 줌이면 내 기분이 나아질 거야, 혹은 저 술 한 잔이면, 저 코카인 한 줄이면, 저 사람과의 관계라면 나아질 거야 하는. 뭔가가 — 외부로부터의 어떤 힘이 — 내면의 불만을 달래주고, 인생을 바꿔주고, 자긍심을 채워줄 거야 하는.

마취제 없는 삶
『명랑한 은둔자』 중에서


나도 중독에 취약한 면이 분명 있다. 겁이 많아서 술에 빠지거나 마약을 하거나 미친 듯이 굶지 않았지만, 나에게도 분명 어떤 중독이 있다. 외부로부터의 어떤 힘이 나약한 내면을 바꿔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나는 자주 한국을 떠났다. 가족과 함께인 나, 일을 하는 나, 한국에 있는 나 — 어떤 종류의 나로부터든 도망치고 싶을 때, 나는 저항하지 않고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다.


나는 새로운 환경이라는 외부로부터의 힘이 나의 불안과 그로 인한 괴로움을 물리쳐줄 거라고 굳게 믿었다. 커다란 단지 안에서 구린내를 풍기며 앉아 있는 이상한 지니 같은 녀석은 한국에 묻어두고, 나는 새로운 나를 찾아서 새로운 나라로 떠날 거야! 그럼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거야! 하지만 당연히 괜찮아지지 않았고, 어디로 가든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구린내는 내가 있는 곳에서 다시 스멀스멀 피어났다.




11월 1일이 되면 공식적인 크리스마스 캐럴 시즌을 선포해요. 그리고 새해가 올 때까지 계속해서 캐럴만 들어요. 내 말에 선생님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11월이 되면 우울한 게 더 심해지니까, 즐겁고 행복한 노래로 가득 채워서 그걸 물리치려고 한 것 같아요. 선생님은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런데 작년 11월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고, 1년 중 가장 우울한 달인 11월의 의미가 한 겹 더 견고해졌다.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요인이 하나 더 늘어난 것이다. 얼마 전에 첫 기일이 있었고, 가족들과 같이 외삼촌 댁에 가서 제사를 지냈다. 엄마와 동생과 함께, 초보인 내가 직접 운전을 해서 이천까지 갔다. 나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했다. 첫 기일에 직접 운전을 해서 할머니를 뵈러 가겠다는. 나는 우울한 와중에도 해야 한다고 못 박은 일은 해야 하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그렇게 했다.


엄마와 동생과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자꾸만 화가 났다. 엄마를 똑바로 보기가 힘들었어요. 엄마가 싫은 건 아닌데, 미웠던 것 같아요. 엄마의 불안이 나에게로 고스란히 전이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게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미웠어요, 엄마가. 제사를 지내고 집으로 돌아와서 동생이랑 술을 한 잔 하면서 (우울증 진단을 받고 나서 한 달에 한 번만 술을 허락하기로 약속했다)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눴는데, 동생은 엄마의 불안은 아빠로 인한 거니까, 미워할 거면 아빠를 미워하라고 했어요. 그런데 나는 지금 엄마가 미워요.


왜 그럴까요, 선생님이 나직하게 물었다. 엄마는 선택을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내가 14살 때 집안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서 급격하게 힘들어졌는데, 엄마는 다른 어른들에게 기대지 않고 딸인 나에게 기댔어요. 당시에 엄마는 서른이 넘었었는데 본인의 친구나 가족에게 기대지 않고, 나이가 엄마의 반 밖에 안 되는 아직 어렸던 나한테 기댔어요. 엄마는 그런 선택을 한 거예요. 만약 나였다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내가 얼마나 힘들던지 간에, 나보다 더 작고 약한 사람에게 기대는 일은 하지 않았을 거예요.


엄마가 부정적인 감정을 다뤄낼 수 있는 용량이 아주 작은 사람인 거예요, 선생님이 말했다. 나도 그 말에 동의했다. 엄마는 지금도 우리가 힘들다고 말하거나 어려움을 토로하면, 중립 기어를 박고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우리보다 더 나쁜 상황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라고, 더 힘든 상황을 상상해 보라고 하면서,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별거 아닌 것처럼 대한다. 빨리 묻어버리려고 한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 남들이 정말 그렇게 사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힘들고 버거운데 왜 토닥여 주지 않는 거예요, 엄마.


왜냐하면 엄마는 부정적인 감정을 다뤄낼 수 있는 용량이 간장종지만 한 사람이라서 그렇다. 빨리 덜어내야 본인 마음이 편해지니까. 한 번도 우리의 감정을 따뜻한 손으로 쓰다듬어 주지 않았고, 우리에게 그런 감정을 잘 바라보고 그걸 통해서 배우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회피하고 도망쳤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나는 자꾸만 비행기에 올라타 한국을 떠났고, 동생은 술기운을 빌어서 사회적 관계에서 오는 긴장과 어려움을 이겨내려고 했다.


우리가 술을 마셔서 — 혹은 굶어서, 먹어서, 도박을 해서, 살을 찌워서 — 감정을 몰아낼 때, 우리는 그 감정을 이해할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는 셈이다. 자신의 두려움과 자기 의심과 분노를 이해해 볼 기회를, 마음속에 묻혀 있는 감정의 지뢰들과 제대로 한번 싸워볼 기회를. 중독은 우리를 보호해 줄지 몰라도 성장을 저지한다. 사람을 한층 더 성숙시키는 인생의 여러 두려운 경험들을 우리가 온전히 겪지 못하도록 막는다. 중독을 포기하면, 그래서 그런 힘든 순간들을 온전히 겪기 시작하면, 우리는 자신이 갖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근육들을 구부리게 된다. 자라게 된다.

마취제 없는 삶
 『명랑한 은둔자』 중에서


지금까지 나는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삶이 버거운 채로 살아왔다. 내가 태어난 나라를 떠나고, 내가 소속되어 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나라는 존재에서 최대한 멀리 도망치며 살아왔다. 이런 감정이 어디에서 왔는지, 나의 두려움과 자기 의심과 분노는 왜 일어나는 건지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 감정들과 싸우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멀리 가고 싶었을 뿐이다. 그 모든 것들로부터.


이제 나는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는 코너에 몰려 있다. 여기서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유일한 해결책이었던 나의 중독 — 떠남을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나의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걸 어떻게 하는 건지, 들여다보고 나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모른다. 그걸 배우기 위해서 상담을 하러 가는 거겠지. 내 인생의 절반을 도망 다니는데 썼다. 남은 절반은 다르게 살아야만 한다. 엄마를 보면 내가 보이고, 아빠를 보면 내가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두 분과는 매우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배워나가야 한다.


치유의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그 후에 얼마나 자랄 수 있을지, 보장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언젠가는 남들처럼 살 수 있을지, 적어도 나 자신과는 편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도 물음표인 상태다. 그럼에도 이걸 해야만 한다.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 미뤄왔던 성장을 이제 시작해야 한다. 나를 들여다보는 법을 배우고 안에 있는 온갖 감정들이 존재해도 괜찮다는 것을 배우고, 그 불안과 두려움을 이기고 구부릴 수 있다는 것을, 그렇게 마음 근육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제는 자라기 위해서. 성숙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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