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는 돌

심리상담 13회

by 아델리


나에 대해서 알아가는 이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 알지만, 동시에 어떻게든 피하고 싶다는 마음도 든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구부리고 꼬고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내가 어떤 모양인지 영 알 수 없게 되었다. 쓸데없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꼭 없었던 것처럼 잘라내려고 애를 쓰며 살아왔던 모든 시간들. 언젠가는 갈리고 갈려서 작게 모래알처럼 부서질 돌인 걸 알면서, 나는 왜 스스로를 잘라내고 깎아내며 살아왔을까.




오늘은 말할 거리를 따로 생각해 오지 않았어요. 앉자마자 오늘은 또 무슨 얘기를 해야 하나 싶어 무심결에 말을 내놓고 보았다. 최근에 본 프로그램에서 취미에 푹 빠진 남편을 둔 아내의 사연을 보았다는 얘기를 했다. 나는 일도 그렇고 취미도 그렇고,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다. 일은 나랑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괴롭고, 취미는 그냥 취미라는 생각이 드니까 열심히 하게 되질 않는다. 마음을 쏟아서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건 인생을 참 건조하게 만든다. 사막처럼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 어릴 때는 온 마음을 쏟아서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고 애를 썼던 것 같은데, 어느 시점부터는 찾는 걸 포기한 듯하다. 그런 건 찾는다고 찾아지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기라도 한 걸까.


한 때는 여행이 마음을 쏟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외국에서 한 번 살아보자고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이십 대의 절반 가량을 외국에서 보냈다. 처음에 캐나다에 1년 정도 살러 떠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좋은 경험 하러 간다고도 하고 용기 있는 선택이라고도 하면서 많은 격려를 해주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뉴질랜드로 떠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격려 대신 우려와 걱정의 말을 건넸다. 뉴질랜드에서 1년의 체류 기간이 끝나고 나서는 내 선택에 대한 어떤 부정적 의견도 듣고 싶지 않아 냉큼 비행기를 타고 옆나라 호주로 옮겨갔다. 그렇게 다시 호주에서 2년을 보냈다.


1년이 2년이 되고 다시 3년이 되자, 한국의 가족과 친구들은 내가 한국에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더러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내가 돌아갈 곳이 한국이 아니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학생비자로 바꾸거나 스폰서를 이용해서 어떻게든 체류 기간을 늘려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이민은 생각도 해본 적 없었다. 그때가 이 나라를 영원히 뜰 절호의 기회였는데,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늘 변함없이 마음 한 구석에 단단히 똬리를 틀고 있었다.


외국에 있으면서 좋은 날도 있었고 또 나쁜 날도 있었지만, 이 모든 게 언젠가는 — 명확한 종료 날짜가 지정된 언젠가 — 끝날 일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좋았고, 아무래도 소중했다. 그래서 여행을 좋아하는 것 같다. 끝날 날이 정해져 있다는 걸 아니까, 그 안에서는 좋은 일도 좋고 싫은 일도 좋다. 어떤 것을 해도 경험으로 남는다. 모든 순간순간이 그냥 다 소중하다.


내가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이 어두운 두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오직 현재만이 중요하고 의미를 가지게 된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여행
『여행의 이유』 중에서




나는 보통 여행을 길게 준비하는 편인데, 대략 6개월에서 1년 전에 항공권을 끊으면 그것을 여행의 시작으로 본다. 일상을 이어가는 중간중간 정보를 찾아보기도 하고, 관련 영상을 보기도 하면서 나름대로 여행을 즐긴다. 그러다 정말로 여행하는 날이 되어 비행기에 오르면, 얼마가 되든 지루한 비행시간을 버텨 도착지에 닿으면, 그때부터 좀 슬퍼진다. 진짜 여행이 시작되면 곧 끝이 나리라는 걸 아니까. 슬픔을 타고 가벼운 우울증에 빠진다. 제대로 즐겨야 할 시간임에도, 제멋대로인 마음은 늘 이렇게 훼방을 놓는다.


김영하 작가님이 자신은 호텔을 좋아한다고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한동안 나는 뭐가 좋아서 여행을 계속할까 생각해 봤다. 나는 아무래도 여행에서 돌아오는 순간이 좋아서 계속 떠나는 것 같다. 모르는 곳을 헤매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태로 다니다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놓은 안온한 나의 공간, 나의 집에 도착했을 때에 느끼는 안도감 — 그걸 느끼기 위해서 여행한다.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알기 위해서 바보 같지만 때로 그 사람과 멀리 떨어져 봐야 하는 것처럼, 내가 있는 자리의 소중함을 스스로에게 일깨우기 위해서 여행을 떠난다.


여행의 이유는 뭐라고 해도 상관없지만, 여하튼 여행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건 확실하다. 그것도 국내여행으로는 안되고 무조건 이 나라를 떠야 한다. 나라를 떠야 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뜨면 안 된다. 다시 돌아와야 한다 —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게 중요하다. 선생님은 나에게 돌아올 곳이 중요하다는 것과 마음 둘 데가 없다는 것을 짚었다. 일이든 취미든 어딘가에 정착하고 싶고, 무언가에 마음을 쏟는 걸 원하네요.


모든 인간에게는 살아가면서 가끔씩은 맛보지 않으면 안 되는 반복적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가까운 사람들을 만나 안부를 묻고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갖는다거나, 철저히 혼자가 된다거나, 죽음을 각오한 모험을 떠나야 한다거나, 진탕 술을 마셔야 된다거나 하는 것들. ‘약발’이 떨어지기 전에 이런 경험을 ‘복용’해야, 그래야 다시 그럭저럭 살아갈 수가 있다. 오래 내면화된 것들이라 하지 않고 살고 있으면 때로 못 견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이런저런 합리화를 해가며 결국은 그것을 하고야 만다.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여행의 이유』 중에서



뉴질랜드로 떠나기 전에, 쏟아지는 온갖 죽음에 대한 뉴스의 해일 속에서 익사할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그래서 떠났다. 내가 아는 세상으로부터 최대한 멀어지고 싶었다. 내가 가진 모든 걸 내버리고, 세상 끝으로 달아나고 싶었다. 선생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뉴스를 보고 살지만 세상의 끝으로 도망가진 않는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나는 그런 뉴스에 유난히 취약한 것 같다고 답했다. 선생님은 그 취약성이 어디서 왔을까, 물음표를 띄웠다.


최근에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예전 얘기를 하다가, 내가 차곡차곡 모아놓은 온갖 재난과 사건 사고의 역사를 읊어주었다. 친구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왜 그런 끔찍한 기억들을 차곡차곡 모아놓고 있었을까. 꼭 기억해야 하는 것들을 잘 담아두고 있는 것도 아니고, 모호한 이미지만 계속 가지고 있다. 세상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나도 언제 죽을지 몰라. 선생님은 고작 뉴스 때문에 나라를 뜨고 도망을 가야 하는 거냐고 재차 물었다. 사실은 다시 돌아오고 싶고 정착하고 싶으면서, 그러니까 정착을 하지 못하는 거 아니에요?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속담도 있잖아요. 나는 그게 좋은 말인 줄 알았다고 했더니, 선생님은 원래 의미로는 이끼가 끼어야 하는 거라고, 그게 세월이 쌓이고 경험이 쌓인다는 뜻이라고 했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으니 쌓이는 게 없는 거라고.


그렇게 오늘 나는 구르는 돌이 되었다. 결국은 돌아와야 될 자리로 어김없이 돌아오면서, 돌아왔다가 또 못 견디고 뛰쳐나가고, 또 돌아가고 또 뛰쳐나가고 — 그걸 계속 반복한다. 왜 나는 여기에서 머무르지 못할까? 단순히 뉴스 때문일까? 물론 뉴스가 나의 불안을 건드리긴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한국에 있으면 너무 많은 것들이 나를 부숴버릴 듯이 다가온다. 뉴스는 일부일 뿐이다. 사람들도, 뉴스도, 변화도, 부모님도 — 모든 것이 다 침습적이다. 하지만 나라는 돌을 깎아먹는 것은 그런 침습적인 환경 탓일까, 아니면 계속 구르는 나의 관성 탓일까.


이제 내가 어디에 취약한지 알게 되었고, 그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을 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선생님은 취약한 부분을 알았으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원인을 찾아서 치료를 하고 취약한 부분을 단련해서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체 이런 건 강화를 어떻게 시키는 거예요? 나는 멍청하게 물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빠지지 않고 보는 데도, 아무리 봐도 다 나한테 일어날 수 있는 일 같더라고 덧붙이면서. 선생님은 아이에게 그걸 계속 보라고 하는 건 잔인한 일이라고, 아이는 보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여전히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