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12회
왜 인생을 가치 있게 살아야 하는가. 그냥 살고 싶은 대로 막 살면 안 되나? 마음은 늘 내가 뭘 하든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는 일이라고 외치며 칼을 꽂았다. 세상에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인간이라고,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더 집요하게, 아직 아물지 않은 — 아물 수 없는 상처를 더 깊게 후벼 팠다.
거진 한 달 만에 상담실을 찾았다. 앉자마자 지난 시간에 이어서 풀어야 할 첫 번째 실밥을 들이밀었다. 아무래도 일 같아요. 일 때문에 오랫동안 괴로워했고, 오늘에 와서도 매일매일 자괴감 빠지게 만드는 게 바로 일이니까. 내 입장에서는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 만으로는 제 역할을 충분히 하지 않는 것 같다. 개인의 영달을 넘어서는 뭔가가 필요하다. 세상을 좀 더 좋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감각이랄까. 나는 이미 사회의 일원으로 법과 규칙을 준수하면서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다. 누가 길을 물어보면 검색을 해서라도 열심히 알려주고, 지나가는 사람이 뭘 흘리면 주워서 전달해 주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 서둘러 사과하고 작은 일에도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돈을 벌기 시작한 후로는 수입이 허락하는 한 소액이지만 기부도 꾸준히 하고 있다.
적고 보니까 그럭저럭 잘 살고 있는 거 같은데, 문제는 마음이 허하다. 전혀 잘 살고 있는 것 같지가 않다. 회사를 다닐 때, 나는 세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이야, 라며 고통에 차 있었다. 회사를 박차고 나온 지금도 괴롭긴 매한가지다. 그저 시간을 낭비하고 에너지를 낭비하며 살고 있다. 어떤 좋은 것도 만들어 내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기보다는 폐만큼은 끼치지 않으려고 사는 삶 — 최소한의 도리만 하는 삶.
선생님은 일신에 연연하지 않고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일에 뛰어들고 싶은 거 같다고, 원하는 게 명확해 보이는 데 왜 그걸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원하는 건 명확한 것 같은데 그걸 해낼 방법을 모른다. ‘지금의 나‘에서 ’내가 원하는 나‘로 가는 구체적인 방법과 밟아야 할 단계들이 통으로 빠져있다. 시작과 끝만 존재하고 과정은 실종되었다. 게다가 조심성도 많아서 마음이 앞선다고 일단 해보자고 달려 나갈 강단이 없다. 내가 일을 저지르고 나서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한 믿음도 부족하다. 나는 나도 못 믿어.
“다른 사람의 고통이 내 살과 영혼 속을 파고 들어온다.“ 시몬 베유는 썼다.
베유는 중국의 기근 소식을 듣고 눈물을 왈칵 터뜨렸다. 동료 철학자였던 시몬 드 보부아르는 이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보부아르는 이렇게 회상했다. ”전 세계에 맥박이 울리는 심장을 가진 그녀가 부러웠다.“
시몬 베유처럼 관심을 기울이는 법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중에서
1993년 10월 10일에 서해 훼리호 침몰 사고가 있었다. 그때 뭘 하고 있다가 그 뉴스를 보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봤던 뉴스의 내용을 기억한다. 탁한 물속에 남아 있던 수많은 얼굴들을 기억한다. 학교생활 같은 건 기억조차 남아있지 않을 만큼 어렸을 때 일인데도, 그 장면만큼은 아직도 또렷하게 남아있다. 저녁에 가족들이 다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뉴스를 보았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 같다. 누군가 — 아마도 아빠가 — 우리가 한 달 전에 저 배를 탔었다고 말했다. 그 영상에 많이 놀란 탓일까, 아니면 똑같은 배를 한 달 전에 탔었다는 사실 탓일까. 어쨌거나 그 일이 약간 트라우마가 된 것 같다. 선생님은 그 트라우마가 부모님이 아직 어렸던 나를 세심하게 보살피지 못했던 탓이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그게 중요한 포인트는 아니라고 말했다. 이제 와서 탓을 한다고 뭘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이후로도 사고는 줄지어 일어났다. 몇 년 지나지 않아 백화점이 무너졌고, 큰 폭발이 일어났고, 지하철에 불도 났다. 보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뉴스는 집요하게 신경을 긁어댔다. 그러다 2008년에 중국 쓰촨 성 대지진 때에 둑이 터지듯 울음이 터졌다. 거실에서 뉴스를 보다가 주방에서 저녁을 준비하던 엄마를 부둥켜안고 한참 동안 대성통곡을 했다. 가족이 죽은 것도 아니고 친한 친구가 죽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꼭 그런 것처럼 울었다. 엄마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나랑 똑같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던 수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사라졌다. 사람은 숫자가 아니고, 단 한 번도 남의 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다 나한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듬해에 뉴질랜드로 떠나기 전까지는 하루에도 수십 건씩 쏟아지는 자살 뉴스가 마음에 들어와 꽂혔다. 사고가 아니라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도 하는구나. 그것도 이렇게나 많이. 누구나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세상. 나는 왜 살아 있을까.
나는 살아서 무얼 해야 할까. 어떤 일을 해야 내가 살아있음이 가치가 있을까. 선생님은 그런 일들은 다 사고고 천재지변인데 왜 그걸 가치로 연결시키냐고 물었다. 사람이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나도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지 않을까요. 문제는 여기서부터 막연해진다는 점이다. 의미 있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른다. 행복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것처럼. 선생님은 의미 있는 삶을 살겠다는 결론 자체가 트라우마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막연한 거라고 했다. 어릴 때 우연히 본 뉴스가 지금까지도 내 삶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뭘 어쩌고 싶은지도 모르면서 지구 끝까지 도망가서도 괴로워하고, 스스로를 낭비하며 살고 있다며 자책을 거듭한다.
행복은 붙잡으려고 애쓸수록 우리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행복은 부산물이지, 절대 목표가 될 수 없다. 행복은 삶을 잘 살아낼 때 주어지는 뜻밖의 횡재 같은 것이다.
소크라테스처럼 궁금해 하는 법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중에서
선생님은 그 기억이 왜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가까운 사람이 죽는 것도 굉장한 트라우마겠지만, 모르는 사람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일거에 사라지는 일 또한 내게는 트라우마가 된다. 그런 일들이 너무나도 많이 일어난다. 아직도. 아무리 도망치려고 해도 뉴스는 끝끝내 귓가를 파고들어 뇌에 흔적을 남기고 가슴을 할퀸다. 21세기에도 온갖 사고와 재해로 인한 죽음은 온 세상에 만연해 있다. 가슴이 쉴 새 없이 할퀴어지다 보니까 이제는 오히려 삶에서 의미를 찾기가 어려워졌다. 죽음이 심장을 움켜쥐고 삶을 제대로 보라고 고개를 처박는다. 어떤 것이든, 그게 뭐가 됐든, 죽음을 갖다 대면 의미 있는 것이 없다. 남아나질 않는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굳게 믿으며 사는 삶은 언제 올지 모르는 죽음을 계속해서 기다리는 삶일까? 아니면 이미 찾아온 죽음을 조금씩 지연시키는 삶일까?
내 입장에서는 언제나 끝이 견딜 수 없을 만큼 가까운 거다. 늘 죽음을 생각하다 보니 그 끝이 너무나도 가까워져서, 언제 죽더라도 일단 오늘을 가치 있게 살아야지 — 이런 게 되질 않는다. 어쩌면 쭉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살아왔나 보다. 죽음이 가까이 올 때마다 삶을 의미 있게 살고 싶다고 하면서, 오히려 삶을 다 건너뛰어 버리고 마음은 언제나 끝에, 죽음에 닿아있다. 열심히 살아도 다 소용없어. 죽으면 다 끝인 걸 뭐. 선생님은 굉장히 불안이 높을 때 그렇게 된다고 했다. 불안은 모르겠지만, 가끔은 내 심리가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사람들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끝이 도래했다. 그러니 오늘을 버리고 끝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살자. 선생님은 그런 식으로 무책임하게 지금 여기서 해야 될 건 안 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머리는 오늘을 살자고, 지금 내가 하는 일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나는 잘 살고 있다고 말한다. 마음은 머리 따위는 아랑곳 않고 늘 앞서서 저 멀리 끝에 서 있다. 내가 하는 건 아무것도 의미가 없고, 어떤 것도 가치가 없다고 목청 높여 외치면서. 마음은 고집불통에 비논리로 가득 차 있다. 나는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논리 정연한 정리와 설명을 좋아하는데, 도저히 이 비논리적인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다. 선생님은 이제야 마음이 나와서 머리와 충돌하고 반항하고 있다고, 그러다 사춘기가 올 거라고 했다. 마음이 말을 듣게 하려면 그걸 겪어야 한단다. 나는 경악했다. 아, 안돼. 이 비논리적이고 유치한 녀석을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어.
상담을 끝내며 선생님이 말했다.
애 다루는 법을 모르네요.
그런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