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10회
이미 일에 대해서 여러 번 말했지만, 아직 해소되지 않은 무언가가 남아있다. 이를테면 내가 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 같은 것. 일이 자아실현의 창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 뭔가 닭살 돋게 거창하다. 일하려고 사는 건 아니고 살려고 일하는 거긴 하지만, 생존을 위한 일이 아니라 삶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
대학생 때부터였던 것 같다. 바쁜 하루 일과 중에도 틈만 나면 도서관에 갔다.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며 벅차게 행복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의 책을 읽으면서 나도 물이 들었나 보다. 언젠가 나도 좋아하는 일이 생기면, 그래서 그 일을 신나게 열심히 하다 보면 돈은 따라올 거고 생활도 해결이 되겠지. 그런 희망을 품고 살았다. 비록 오늘은 두 발을 질척이는 진창에 디뎌놓고 있지만 고개를 들면 시야를 가리는 높은 나무 가지 사이로 손바닥 만한 하늘이 밝은 달빛으로 환하게 빛났다.
그때 접한 책 때문인지는 몰라도, 뭔가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거나 남을 돕는 일에 끌렸다. 졸업을 앞둔 어느 여름에 한 NGO 단체에서 인턴으로 일하면서, 현실은 또 조금 다르구나 느끼기도 했다. 그래도 어쨌거나 전체를 더 좋게 만든다는, 나만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지 않는다는 부분이 와닿았다. 어느 단체에 들어가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진 않았지만, 그런 방향의 일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왜 그런 일에 끌렸는지 물었다. 더 구체적으로 파보라는 소리다. 아마도 어릴 때부터 엄마를 위로하고 보호하는데서 내 존재 가치를 찾게 된 게 아닐까요. 나는 답했다. 타인에게 도움이 되고 기쁨을 주고 위로를 하는 것에서 나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고 필요한 보상을 받는다. 나를 필요로 한다는 게 나에게도 위로가 된달까.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새벽에 영어학원에 갔다가 1시간 동안 통근 지하철과 버스를 버텨 학교에 도착하면 피로감이 몰려왔다. 학점을 채우려고 빼곡하게 채운 수업을 듣고, 중간에 한 시간이라도 비는 시간이 있으면 학교 과 사무실에서 근로 장학생으로 일했다. 그래도 시간이 남을 때는 학교에서 무료로 하는 토익 수업을 들었다. 친구들과 느긋하게 점심을 먹을 시간은 거의 없었고, 혼자 매점 앞에서 컵라면 먹을 시간조차 없을 때도 많았다. 평일 저녁에는 아르바이트 대타를 뛰었다. 주말은 당연히 하루종일 일하는 날이었다. 그렇게 일하면서도 장학금을 받아야 학교를 다닐 수 있었으니 학점 관리도 소홀히 하면 안 되었다. 성적 말고는 달리 장학금을 탈 방도가 없었으니까.
그렇게 입학 후에 매 학기 반액 장학금을 빠지지 않고 탔는데도 2년을 다니고 휴학을 했다. 남은 절반이 빚으로 남아있었던 게 점점 옥죄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한 편으로는 좀 쉬고 싶기도 했다. 평일에는 이 회사에서, 주말에는 저 회사에서 일하면서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해서 학자금 대출을 갚고 생활을 하고 다음 학기 학비를 미리 마련했다. 돈을 위해서 그렇게 했다. 딱히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기보다는 한 달이 지나면 보수가 나오는 일이라서 했다. 그 안에서 보람을 찾기는 어려웠다. 이렇게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랐다. 온 마음을 다해 그렇게 바랐다. 보람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일만 하면서 살다 보니까, 반대로 직업에 대한 생각은 더 풍선처럼 부풀어 커지기만 했다. 나를 땔감으로 때면서 계속 불을 지피면, 나의 이상과 꿈과 미래는 부풀어 올라 더 멀리 날아갔다. 손에 잡히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내가 선 자리에선 점처럼 보일 정도로 멀리.
그놈에 돈. 힘들고 지쳤다. 엄마에게 힘들다고 말하면, 엄마는 늘 우리보다 어려운 상황을 들고 와서 내 눈앞에 펼쳐 보였다. 내가 부당한 불평을 하고 어리광을 부리고 있나? 그래, 그래도 나는 일이라도 할 수 있고 학교도 다니니까. 나 정도면 괜찮은 거지. 힘들어도 힘들다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나 스스로도 그 감각에 무뎌지려고 했다. 무뎌지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아서.
마르쿠스에게는 침대 밖으로 나갈 사명이 있다. ‘사명’이지, ‘의무’가 아니다. 두 개는 서로 다르다. 사명은 내부에서, 의무는 외부에서 온다. 사명감에서 나온 행동은 자신과 타인을 드높이기 위한 자발적 행동이다. 의무감에서 나온 행동은 부정적인 결과에서 스스로를, 오로지 스스로만을 보호하려는 행동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처럼 침대에서 나오는 법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중에서
‘일’이라는 것도 살기 위해서 했던 임금을 위한 실질적인 노동과 어떤 내적인 즐거움을 찾아서 기꺼이 하는 노동으로 분리되었던 것 같다. 어떤 존재, 혹은 말이 하나 이상의 중첩된 의미를 갖는 일은 흔하지만, 내 경우에는 그 두 가지가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의무감에 하는 노동과 사명감에 하는 노동은 철저하게 분리되어 그 사이에는 진창의 밑바닥과 하늘에 뜬 달만큼이나 큰 괴리가 생겼다. 오늘을 살기 위한 노동을 끊김없이 하면서도, 언젠가 기꺼이 할 노동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했다. 고민만 많았다는 게 문제다. 아마도 뭔가 직접 도전하거나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머리로 고민만 했던 것 같다.
결혼에 대해 말할 때, 사람들이 으레 그냥 멋모를 때 해야 한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일도 그런 것 같다. 물론 결혼도 하지 않았다만. 어릴 때 뭐든 계기가 돼서 직접 해보고 부딪혀보면서 그게 좀 재미있어서 멋있어서 즐거워서, 또 해보고 도전해 보고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직업적으로 가야 하는데 머릿속으로 생각만 한다고 그 일의 현실을 어떻게 알겠나. 내가 이 일을 충분히 해낼 만한 사람인지,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이 이게 맞는지 어떻게 알겠냐고. 여러 가지로 머리만 아프고 결과는 도출하지 못하는 시간을 너무 오래 보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아등바등 버티면서 살았다. 한국에서도 외국에서도. 도저히 흐르는 대로 살 수가 없었다. 나랑 똑같이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 왔는데,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겨서 그 사람이랑 같이 지내다 보니까 사랑이 빠져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그렇게 가족이 되어 지금도 호주에서 두 아이의 엄마로 행복하게 살고 있는 친구가 있다. 나는 그렇게도 살 수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우연히 마음이 가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마음이 흐르는 대로 흐르게 둘 수가 없었다.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면서 나는 나의 길이 있다고 굳게 믿었다. 깊은 안갯속을 헤매는 기분으로 더듬더듬 걸으면서도, 멈출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멈추면 안 돼. 계속 가야 해. 이렇게 계속 걷다 보면 언젠가 내가 도달해야 할 곳에 자연스럽게 닿기를 소망하면서. 하지만 삶은 기도가 아니고, 무작정 계속 걷는다고 해서 원하던 곳에 닿는 것도 아니다. 물론 원하지 않던 곳에 닿는 것도 아니지만.
선생님은 모든 게 참 모호하게 들린다고, 굉장히 피상적이고 막연하다고 했다. 여기가 있고 싶은 곳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건 분명한 것 같네요. 결국 계속해서 오늘로부터 도망가는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닌가요. 오늘이 싫어서 이상을 향해 도망을 가는데, 왜 오늘이 싫은지에 대해서는 알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은 것 같아요. 결국 원하는 건 도망치는 게 아니라 자아실현이잖아요. 나는 자아실현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무척 거추장스럽게 느껴져서, 오늘이 만족스럽고 행복한 것 — 그게 원하는 거라고 답했다. 언젠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썼듯이 “막 구운 따끈한 빵을 손으로 뜯어먹는 것”과 같은, 손에 확실하게 전달되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감을 원한다고.
선생님은 내가 오늘에 머무는 것이 자아실현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겠다며 조금 웃었다. 늘 오늘로부터 도망쳐 왔으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말을 이었다. 이제는 도망치는 속도도 좀 느려졌어요. 갈 데가 없다는 생각도 들고요. 문이 가득한 미로를 헤매면서, 늘 문을 열고 어느 방으로 들어가면 그 안에 또 다른 문이 있어서 그걸 열고 또 다음 방으로 가고, 또 다음 방으로 갔는데, 이제는 앞에 문이 없는 방안에 들어온 것 같아요. 들어왔던 문은 등 뒤로 사라져 버리고. 그 방 안에 한동안 갇혀 있으면서 우울증이 심해진 것 같기도 해요. 선생님은 절망적인 상황이네요, 라고 덧붙였다.
슬픔은 무척 무겁게 느껴지지만 어쩌면 그건 환상이다. 어쩌면 슬픔은 우리 생각보다 가벼울 수 있다. 어쩌면 꼭 용감무쌍한 행동이 필요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삶에서 흔히 사소하다고 여겨지는 것들, 작은 것들의 위대한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할 수도 있다. 어쩌면 구원은 보기보다 가까울 수 있다. 우리가 해야 하는 건 그저 손을 뻗어서 문을 닫는 것뿐이다.
세이 쇼나곤처럼 작은 것에 감사하는 법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중에서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나에 대해서 물어보곤 한다. 네가 보는 나는 어떤 사람이야? 고맙게도 좋은 얘기들을 많이 해주었지만 탐탁지 않다. 사람들이 보는 나는 내가 아닌 것 같다. 전혀 편안함을 느끼지 않을 상황을 그 사람들은 편안해한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내가 누구인지 몰라서 남에게 의견을 구하다니. 참 안되었다. 저는 그다지 타인에게 관심이 많은 사람 같지 않아요. 이타적이지도 않은 것 같고요. 마음이 따뜻하다고들 하는데 사실 이기적이고, 탐구 정신도 별로 없고. 그래서 계속 수박 겉핥기 하듯 사는 것 같아요. 가장자리만 빙글빙글 돌면서. 길 못 찾는 개미처럼 한 곳에서 돌고 있어요. 선생님은 생각이 많은 사람은 탐구 정신도 있는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자꾸 차단당하니까 생각이 이어지지 않아서 도돌이표 같은 생각이 돼버린 거라고 말했다.
친구 이야기를 하다가 친구와 절교한 이야기를 하다가 관계를 쥐고 하는 협박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가 이혼을 무기로 나를 이용해 엄마를 조종하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어릴 때는 이 사람이 나에게 이런 식으로 행동을 하는 게 당연했고,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달리 배우지 못했다. 그게 당연하게끔 길들여졌다 — 가스라이팅 당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나에게는 첫째로서의 의무가 있었고, 그걸 수행하면서 살았다. 엄마한테 든든한 버팀목, 아버지한테는 말을 전해주는 메신저, 동생한테는 든든한 언니가 되어주면서.
선생님은 어릴 때 그렇게 가스라이팅 당한 걸 이제 알게 되었는데 어떠냐고 물었다. 어릴 때는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게 사실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니까 조금 후련하다고 답했다. 선생님은 부모님에 대해서 어떤 감정이 일지는 않느냐고 재차 물었다. 나는 딱히 어떤 감정이 일지는 않고, 그런 의무감을 가지도록 가스라이팅 당해와서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구나 하는 걸 알게 돼서 후련하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차단, 그 장애물이 부모님이라고 했다. 무슨 연유에서든 부모님의 이름표가 붙어 있는 방으로 이어지면 갑자기 문이 쾅 닫히면서 나를 문 너머 멀리로 밀어낸다. 그 방 안으로 들어가지 못해. 그 허들을 넘지 못해요, 라고 선생님이 마침표를 찍었다.
자라면서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하려고 애를 써왔다. 벗어나려고, 부모님의 자식이 아니라 나로서 살고 싶어서 도망을 치면서도 여전히 목에 걸려 있는 의무감에 괴로워했다. 청소년기에는 정서적으로, 20대가 되어서는 경제적으로, 30대에는 주거적으로 분리가 되어서 나는 독립을 완전히 이뤄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의무감으로부터의 독립은 일어나지 않았다. 선생님은 내 말에 독립은 무슨 독립이냐고, 전혀 독립하지 못했다고 했다. 모든 건 상대적이에요. 모든 단어들이 상대적인데, 독립은 뭐랑 한쌍인가요? 독립의 반대는 의존이에요. 의존이 있어야 독립이 있지요. 그런데 부모님한테 의존한 적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독립한 적도 없는 거예요. 결혼을 해야 이혼을 하지, 결혼도 안 했는데 무슨 이혼을 해요.
호주에 있을 때 주변 수백 킬로미터 내에 마을 하나 없던 척박한 아웃백 로드하우스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 그곳에 갔던 이유는 하나였다. 노동권이 보장되었기 때문에. 급여가 높았고 하루 8시간의 노동 시간을 보장해 주었으며 저렴한 가격에 숙소도 제공했다. 대신 매일 거의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일을 하고 똑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냈다. 남들은 두세 달이면 떠나는 로드하우스에서 거의 반년을 보냈다. 그렇게 돈을 차곡차곡 모았다. 3년 간의 외국 생활을 접고 한국에 돌아가기 직전이었고, 그곳에서 모은 돈으로 한국에 돌아가면 대학원에 갈 생각이었다. 드디어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의 시작점으로 삼을 만한 곳을 발견했었다. 그렇게 모은 천만 원 남짓의 돈을 가지고 한국에 돌아와서, 엄마의 반대에 부딪혔다. 한 번의 말다툼으로 나는 대학원 진학을 포기했다. 그렇게 다시 돈을 위한 노동의 세계로 흘러들어 갔다.
그때 왜 나를 위해서 조금 더 싸우지 않았을까. 지금에 와서야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독립을 한 적이 없다. 그저 분리가 되었을 뿐이다. 몸이 멀어진다고 해서 마음도 멀어지진 않는다. 마음이 멀어지기 위해서 몸이라도 멀리 매어 놓으려고 발버둥 쳤을 뿐이다. 선생님은 인간이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독립을 하게 되어 있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자연스럽게 독립한 게 아니라 아주 어렸을 때부터 독립을 갈망했고 노력했다. 왜 자연스러운 발달을 굳이 노력하면서 쟁취하려고 했을까요. 왜 애를 써서 겨울을 만들고, 왜 애를 써서 봄을 만들어요. 기다리면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계절인데.
그러게요. 왜 그럴까요. 저도 모르겠어요.
선생님 말이 맞다. 나는 정말 나를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