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2016 _ 여행 준비 03 :: 고민과 걱정
7월. 그동안 꾹꾹 눌러놨던 불안이 터졌다.
나는 그동안 나름 차분히 터키 여행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눈이 시리게 아름다울 이스탄불의 건축물과 카파도키아의 이색적인 풍경을 보다 면밀히 보고 싶은 마음에 그림 수업을 들으며 스케치 공부를 한다거나, 작년 초 라오스에서 카약을 타다가 물에 빠뜨려 보내주어야 했던 내 오래된 카메라를 대체할 새 친구를 찾는 일 ─ 마음속에서 소니와 캐논이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이제야 겨우 캐논의 손을 들어주려는 찰나였는데 말이다.
시리아와 국경을 맞댄 터키이기에 그동안에도 테러가 계속 발생하긴 했지만, 관광객으로 가득한 이스탄불 술탄 아흐메트 광장에서 벌어진 폭탄테러 뉴스로 2016년을 시작하게 되다니. 테러공격은 예측이 불가능하기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명백히 외국인 관광객을 노린 테러였고, 사상자 대부분이 외국인이었기에 더 놀랐는지도 모른다. 끔찍한 뉴스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 후로도 터키, 특히 이스탄불에서 일어난 테러 뉴스가 줄을 이었다.
◆ = 이스탄불 발생 테러
★ = 그 외 다른 지역 발생 테러
◆ 1월 12일 _ 술탄 아흐메트 광장 폭탄테러 : 12명 사망. 사망자 중 9명이 독일인 관광객이었고, 한국인 관광객 1명이 다치고 이외에도 노르웨이, 페루 국적 여행객이 사상자 명단에 포함됨
★ 1월 14일 _ 터키 동부 디야르바키르주 경찰서 테러 : 6명 사망
★ 2월 17일 _ 앙카라 도심 차량 폭탄 테러 : 29명 사망, 61명 부상
◆ 3월 3일 _ 베이람파사 경찰서 여성 괴한 습격 : 순찰 중이던 경찰 2명에게 수류탄을 던지고 경찰 버스를 향해 총격을 가했으며, 경찰이 여성 무장 괴한 2명을 현장에서 사살
★ 3월 13일 _ 앙카라 도심 크즐라이 인근 버스 정류장에서 차량 폭탄 테러 : 37명 사망, 125명 부상
◆ 3월 19일 _ 이스티크랄가 자폭테러 : 터키 이스탄불 상업지구 이스티크랄가 폭탄테러로 5명 사망, 36명 부상 (그중 12명이 외국인 관광객)
◆ 4월 10일 _ 메시디에코이 버스정류장 폭탄테러 : 흔한 가방에 담긴 시한폭탄테러로 3명 부상
◆ 5월 12일 _ 사만드라 군부대 인근 시한폭탄테러 : 터키군 소형버스에 원격조종 폭발물을 심어 군인 5명 포함하여 8명 부상
◆ 6월 7일 _ 베즈네실러 차량폭탄테러 : 경찰 통근 버스 폭발로 경찰 7명과 민간인 4명 사망, 36명 부상
◆ 6월 28일 _ 아타튀르크 국제공항 연쇄 폭탄테러 : 6월 29일은 IS가 건국을 선언한 지 2주년이 되는 날로 공항에서 총기난사 및 폭탄테러로 170여 명의 사상자 발생
이스탄불에 무려 7번의 테러가 휩쓸고 지나간 7월. 막 유럽에서 돌아온 일본 친구와 스카이프로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테러와 IS로 흘러갔다. 그녀는 나의 터키 여행을 걱정하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 설마 한 번 터진데서 또 터질라고. 괜찮을 거야.
하지만 그렇게 말한 그녀조차도 한 달 가까이 유럽에 머무르는 동안 그토록 사랑하는 파리엔 끝내 들르지 않았다. 그렇게 조금씩 공포에 잠식되어 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에 테러의 위협에 안전한 나라는 없다. 비교적 덜 위험한 나라가 있을 뿐이다.
그녀와 세 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자정이 넘어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이 쉬이 오지 않았다.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는데 그 사이 터키의 상황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었다. 어제는 상상도 못한 터키 군부의 쿠데타. 아침에 멍하니 뉴스를 보고 있는데, 일본 친구가 메시지가 보내왔다.
- 뉴스 봤니.
이스탄불에서 일어난 쿠데타로 온 도시가 들썩이고 있을 때, 아주 오랜만에 프랑스 친구와도 연락이 닿았다. 터키도 터키지만 니스에서도 테러가 발생한 터라 내심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평소와 다름없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안부를 전했다. 당연히 니스 테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무섭지 않냐는 말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 그들이 그런 일을 저지르는 건 저지르는 거고. 나는 두려워하지 않을 거야.
프랑스 억양이 짙게 섞인 영어로 속사포처럼 쏟아내더니, 한쪽 어깨를 으쓱하며 씩 웃어 보였다.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만약 내가 그런 끔찍한 테러를 한국에서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겪는다면, 나는 신경증에 걸릴 것 같은데. 그녀는 지지 않겠다는 듯 다부지게 말했다.
-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7월 15일 터키 군부의 쿠데타와 7월 20일 쿠데타를 진압한 에르도안 대통령의 국가 비상사태 선포.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 태평하게 여행을 가도 괜찮은 건지도 전혀 감이 안 온다. 테러는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쿠데타와 이후의 상황은 뭔가 판 자체가 다른 레벨로 껑충 뛰어 올라간 느낌이다.
세상은 왜 점점 더 위험해지는 걸까.
너무나도 이기적인 말인 건 알지만, 왜 여행의 흥분으로 즐거워야 할 마음에 공포와 충격이 싸다구를 날리는 걸까.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또 어떤가. 아름다운 도시에 사는 게 무슨 잘못이라고 이런 고난의 시간을 보내야 하나.
테러리스트들의 꿈은 뉴스의 일면의 주인공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독립이나 전쟁의 승리보다도, 우선 몇 사이클이 돌고 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연기처럼 사라질 뉴스의 일면을 단 하루라도 차지하고 싶은 것 같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외국인 사상자가 많아야 유리하고, 따라서 유명 관광지가 테러리스트의 MUST-HIT LIST에 올라간다.
바보 같지만 아직 가지도 않은 여행에 대해 터키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지경이었다. 여행자가 없다고 해서 테러가 일어나지 않을 것도 아닌데. 아마 그들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곧 다른 타깃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여행 준비를 하면서 자주 찾게 된 여행 카페에는 여행 경로를 수정하거나 아쉽지만 항공권을 취소하고 환불을 받았다는 글이 올라온다. 8월 15일 항공편까지는 취소 수수료 없이 취소가 가능하다는데, 우리는 출국일이 1달 이상이나 남아서 무료 환불 대상이 아니다. 에효.
귀한 목숨 값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수수료를 내고 취소를 해야 하나. 머릿속이 뱅뱅 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또 이런 기회가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나는 그렇다 치고 엄마에겐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또 쉽게 포기가 되지 않는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것이 문제로다.
아, 신이시여.
왜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