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04 | 낯선 아침 풍경

FEB2015 _ 여행 2일 차 :: 루앙프라방 아침 시장 & 시내 구경

by 아델리


고요할 줄 알았던 라오스의 새벽은
얼마나 시끄러운지!
닭 우는 소리,
물건 옮기는 소리,
옆집 고양이, 혹은 도둑고양이가
바닥으로 뭘 떨어뜨리는 소리.
온갖 소리가 난무하는
루앙프라방의 아침.


운치 있게 나무로 된 창문이 이중이긴 했지만, 방음을 위한 것은 아니리라 짐작은 했다. 그래도 그렇지. 꼬꼬댁 꼬꼬꼬꼬. 스륵 쿵. 스륵 쿵. 야옹야옹 야아아아옹. 챙그랑 챙챙챙챙. 아주 난리가 났다. 대체 몇 시길래 이렇게 부지런들을 떠는지, 잠결에 더듬더듬 핸드폰을 찾아 시간을 확인해보니. 뭐야, 아직 여섯 시도 안 됐잖아.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고양이 세수를 하고 나와서, 숙소 1층 리셉션 앞에 놓인 테이블 중 하나를 골라 앉았다. 한국과는 무척 다른 느낌의 아침이다. 상쾌하고 싱그럽다. 샤워를 하는 호주 언니를 기다리며 숙소 직원이 가져다준 따뜻한 커피를 한잔 마신다.


라오 루 롯지의 무료 아침식사


루앙프라방에 있는 대부분의 숙소는 간단한 아침식사를 제공한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보통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바게트와 선택 가능한 달걀 요리, 한 두 가지 과일, 그리고 커피나 차를 내온다. 간단해서 먹기 좋고 맛도 나쁘지 않다.


나무로 둘러싸인 마당에서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나무 둥치로 만든 테이블에 올려진 아침을 먹는다. 새벽에 잠을 깨웠던 그 온갖 난리법석이 음식에 맛있게 녹아 있다. 닭은 새벽에 알을 낳고 고양이는 닭과 장난을 치고 그 소리에 일어난 누군가는 부지런히 아침을 만들었겠지. 다 이유 있는 소란이었구나. 맛있는 아침이다.




라오 루 롯지에서 조금만 걸어 나가면 아침 시장이 있는 뒷길과 만난다. 아줌마들이 길가에 자리를 펴고 과일, 채소, 반찬 등을 판다. 어떤 과일은 늘 보던 거랑 똑같고, 어떤 과일은 한국에서 보던 거랑은 다르지만 뭔지 알겠고, 어떤 과일은 전혀 모르겠다. 과일보다 야채가 훨씬 낯이 익다. 무진장 매울 것 같은 쥐똥고추만 빼면.


메콩 강에서 아침에 잡은 싱싱한 물고기도 판다. 크기가 무서울 정도로 커서 '생선'이라기보다는 먹을 엄두가 안나는 '물고기' 느낌이다. 지나가다 본 메기는 사람 다리 만해서 사진을 한 장 찍고는 줄행랑을 쳤다. (아마 식당에서 나오면 맛있다고 먹겠지만.)



필요한 만큼 고기를 잘라서 파는 정육점 코너도 있고, 아침 일찍 장 보러 나온 아줌마 아저씨의 허기를 달래 줄 쌀국수 노점도 있다. 보통 시장이라면 활기차기 마련인데, 여기는 아침 시장마저도 느긋하다. 물건을 펼쳐 두고 먼산을 응시하거나, 옆에 앉은 아줌마랑 소곤소곤 담소를 나눈다. 큰 소리로 호객을 하는 사람도 없다. 이렇게 조용하고 느긋한 시장이라니.


아침을 든든히 먹었는데도 저 사이에 낑겨 앉아 같이 먹어보고 싶다. 없던 식욕도 샘솟게 만드는 뒷모습이여.




아침 시장을 벗어나면, 여행자 거리라고 불리는 시사방봉 로드(Sisavangvong Road)와 만난다.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맛의 과일 주스를 들고 각자의 목적지로 흩어진다. 광장 가운데 길게 늘어선 과일 주스 노점에는 여행자들이 적어두고 간 추천 광고판이 빼곡하다.


그중에서도 KBS 생생정보통에 출연했다는 광고판이 눈에 들어와 호주 언니가 망고 주스 한 잔을 주문했다. 망고를 쓱쓱 잘라 얼음을 넣고 믹서기에 웅웅 간다. 분명 한 잔만 시켰는데 두 잔이 나왔다.


아무래도 망고를 너무 많이 넣었나 봐. 그냥 너도 하나 마셔. 주문한 호주 언니 한잔, 구경한 나도 한잔. 1 + 1 망고주스를 내밀며 살풋 웃는 아줌마의 눈이 그렇게 말했다. 주스는 시원하고 달달했다. (공짜여서 그런 건 아니고... 망고가 잘 익어서.)


주스 노점에서는 원하는 과일을 고르면 섞어서 주스를 만들어준다. 주스뿐만 아니라 라오스식 커피나 샌드위치도 판다. 여행하는 기분을 만끽하고 싶다면 사람 구경도 할 겸 여기서 아침을 먹는 것도 좋겠다.



주스를 하나씩 들고 시사방봉 로드를 따라 걷다 보니 중심 거리인 사카린 로드(Sakkaline Road)에 접어든다. 시사방봉 로드와 사카린 로드 아래쪽에는 배낭여행자가 많아 시끌벅적하다. 투어 상품을 파는 여행사, 자전거와 스쿠터 대여소, 기념품 가게가 양 옆으로 쭉 늘어서 있다. 툭툭 기사의 손짓을 못 본척하고, 큰 배낭을 멘 달팽이 배낭여행자들을 지나친다.


그렇게 사카린 로드를 따라 한참을 걸어 올라가면 새소리가 다시 들릴만큼 조용한 길이 나온다. 한쪽엔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황금빛 사원이 있고, 반대편엔 호텔과 레스토랑, 고급진 부티크 샵이 이어진다.


여기는 중년 유럽 여행자들의 거리다.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 온 중년의 아줌마 아저씨들이 담소를 나누며 천천히 걸어간다. 목에 카메라를 매고 튼튼한 샌들을 신은 아저씨는 아줌마의 손에 끌려 부티크 샵으로 들어간다. 그들이 사라진 건너편으로 어린 스님들이 보인다. 학교에 가기엔 늦고, 마실을 가기엔 이른 시간. 어디를 가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신난 듯 보이는 소년 수도승들.



사카린 로드와 그 뒤에 한 블록 떨어져 있는 킹킷사라스 로드(Kingkitsarath Road) 사이에는 서로를 이어주는 길이 많이 나있다. 사람만 다닐 수 있는 작은 골목길 덕에 언제든 방향을 바꿀 수 있다. 꽃이 피어 있는 골목길, 건물의 독특한 측면을 볼 수 있는 골목길, 앞집 식당 아줌마가 나와서 큰 솥에 물을 끓이는 골목길. 어느 길을 골라도 떨어진 꽃잎 외에는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하다.


햇살이 기분 좋게 떨어지는 아침이다. 적당히 포근하고, 바람은 없지만 끈적임도 없다. 자동차나 툭툭은 구경도 할 수 없고, 사람의 발길마저 뜸한 길은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기까지 하다. 꽃이 예쁘게 핀 작은 골목길을 따라 남칸 강(Nam Khan River)이 보이는 호젓한 킹킷사라스 로드로 향한다.


강가가 보이는 자리에는 나무로 만든 테라스 위에 레스토랑 겸 카페가 즐비하다. 한낮의 뜨거운 볕을 덮어주는 큰 나무를 그대로 살린 테라스는 시원하고, 자연적인 운치도 있다. 망고주스 탓에 배가 불러 들어가진 못했지만, 배와 시간이 허락했다면 잠시 들어가 커피를 시켜놓고 심심하게 앉아만 있어도 좋을 것 같다.



너무 조용한 길에 심심해져서 메콩 강가가 보이는 캠콩 로드(Khem Khong Road)로 가로질러 걸어갔다. 나른한 아침 햇살에 반쯤 졸고 있던 아저씨가 일어나 보트 투어는 어떠냐며 손짓한다. 툭툭 기사 아저씨도 묻는다. 툭툭? 꽝시 워터폴, 툭툭? 그래도 과하게 적극적이거나 끈질기지는 않다. 타고 싶으면 타라고. 그냥 한 번 물어나 보는 거여. (사투리가 어울리는 이유는 뭘까.)


강가에는 투어용 보트 말고도 라오스 사람들이 강 건너편으로 건너갈 때 타는 기다란 배도 있다. 독특한 모자를 쓴 몽족 아줌마가 양손에 뭔가를 잔뜩 들고 배를 타러 가파른 계단을 내려간다. 잠시 강가에 앉아서 아줌마가 비틀비틀 내려가는 모습을, 노란 강물이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본다.


누런 강물이 느릿느릿 흘러간다. 늘 그랫듯이 평화롭게.


오후에 꽝시 폭포 투어를 가기로 예약을 해놓아서,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간단하게 점심을 먹기로 했다. 어디를 갈까 하다가 한국인 사이에서 유명하다는 조마 베이커리를 찾아 들어갔다. 아침 내내 낯선 라오스의 정취에 흠뻑 젖었는데, 갑자기 지나치게 익숙한 분위기가 훅 치고 들어온다. 딱 한국 어느 카페에 들어간 기분. 별로 맘에 들지 않아, 잠시 서성이다가 도로 나왔다.


점심시간이 되자, 땡볕이 쬐기 시작했다. 오래 걷고 싶지 않아서 그나마 사람이 없는 인디고 카페에 들어가 볶음 국수와 라오 커피를 주문했다. 나름 기대했던 라오 커피는 기대만큼은 아니었지만 색다른 맛이고, 볶음 국수는 예쁘게 장식되어 나왔지만 그 탓에 먹기가 좀 힘들었다.



루앙프라방에서 고작 오전을 보냈을 뿐인데, 이 낯선 풍경이 너무나도 마음에 든다. 한국과는 다른 차림의 다양한 사람들, 푸른 한강과는 사뭇 다른 누런 메콩강, 도시 중심엔 빌딩 숲 대신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사원이 있고, 노점에서는 매운 떡볶이 대신 달달한 망고주스를 파는 루앙프라방.


밥 대신 국수를 먹고 아메리카노 대신 라오 커피를 마신다. 오후엔 또 어떤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