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03 | 루앙프라방의 첫날 밤

FEB2015 _ 여행 1일 차 :: 비엔티안 - 루앙프라방

by 아델리


아, 연착.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어라.


비행기는 예정된 오후 2시 50분보다 한 시간 정도 늦게 비엔티안에 도착했다. 짐을 찾고 나니 이미 4시 20분이라, 5시에 타야 하는 루앙프라방 행 국내선이 걱정되어 지나가던 공항 직원을 붙잡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손을 저으며 말했다. 다 기다려 주니 걱정 말아요. 그녀가 손짓으로 알려준 국내선 터미널은 바로 코 앞에 있었다. 국제선 터미널을 나가기 전, 환전소를 발견했다. 아직 라오스 돈인 "낍"이 한 푼도 없음을 깨달은 우리는 재빨리 50불을 환전하기로 했다.


보통 공항에 있는 은행이나 환전소는 환율이 좋지 않다는 통념이 있어서 오늘 사용할 돈만 약간 바꿨다. 환율은 미화 1불당 8,087낍으로 그리 나쁘지 않았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루앙프라방 시내에서 환전한 것과 동일한 환율이었다. 50불을 바꾼 총 환전액은 404,350낍. 동전은 돌아오지 않았다. 화폐단위가 워낙 크다 보니 지폐만 쓰는 것 같았다.

미화 1불이 1,000원인 한국에서도 화폐단위가 너무 크다고 리디노미네이션(화폐의 실질가치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거래단위를 낮추는 것)을 해야 하네 말아야 하네 말이 많은데, 미화 1불이 8,000낍이 넘는 라오스는 (라오스 사람들에겐 어떤지 몰라도) 그야말로 혼돈의 장이었다.


빳빳한 50불짜리 한 장을 유리 칸막이 너머로 건네자 한 다발의 낍이 돌아왔다. 급한 마음에 일단 돈뭉치를 받아서 지갑에 쑤셔 넣었다. 작은 지갑이 금세 빵빵해졌다. 이제 낍을 두둑하게 얻었으니 달러는 잊어야지. 오직 낍으로만 계산하는 거야. 여긴 라오스니까.


오후의 햇살이 내리는 건물 밖으로 나오자 누군가 목덜미에 입김을 부는 것 같은 은근한 후덥지근함이 온몸을 휘감았다. 빠른 걸음으로 덜덜덜덜 카트를 밀며 국내선 터미널로 들어가 티켓을 바꾸고 다시 짐을 부쳤다. 계속되는 배낭과의 이별. 안녕. 곧 다시 만나. 우리는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는 작은 대합실로 들어가 앉아 숨을 한 번 크게 쉬고 나서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느 나라에서든 공항을 생각하면 마음이 설레지만, 들어가 앉아 있을 때만큼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 떠날 수 없을 때는 가서 앉아라도 있고 싶지만, 떠나기로 작정하고 앉아있을 때는 1초라도 빨리 떠나고 싶은 곳이니까. 최종 목적지로의 도착을 꿈꾸면서.


도착은 나에게 달린 일이 아니다.
그것은, 그곳에 닿고자 하는
나의 열망과는 무관하게,
그리고 나의 의지와는
별개로 이루어진다.
기다리면 언젠간 닿을 것이요,
홀로 애태우고 화를 낸다고 해서
빨리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행기 탈 시간을 30분도 채 남기지 않고 들어와서인지 대합실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곧 비행기가 올 거야. 방금 바꾼 따뜻한 낍을 손에 쥐고 매점 앞을 서성거리기만 하다가 자리로 돌아오기를 몇 번. 하지만 약속한 5시가 지나도 비행기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흐린 구름이 점점 꾸물거리며 낮아졌다.


그렇게 라오항공은 시골버스터미널 같은 대합실에 한 시간 넘게 우릴 가둬두었다. 안내방송 한 번 없이. 그제야 공항 직원이 걱정하지 말라던 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기다려주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어차피 연착 때문에 기다리게 될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었나 보다.


예정대로면 루앙프라방에 내려 가방을 찾고 있어야 할 시간에도, 우리의 몸은 여전히 비엔티안에 있었다. 루앙프라방에 도착하면 대략 7, 8시쯤 될 것 같아서 마사지냐 저녁이냐, 고민하다가 하루 종일 고생한 몸을 생각해서 마사지로 결정했다. 밥이야 뭐라도 있으려니.


활주로 쪽에 난 큰 창문 밖으로 천천히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곧 참파 꽃이 꼬리에 그려진 비행기 한 대가 천천히 굴러들어 왔다. 비행기가 멈추고 사람들이 내리고 나서도 청소를 하는지 한참을 기다리게 하더니, 드디어 "이제 타세요!"라는 방송이 나온다. 늘상 있는 일이라는 듯이 모두 차분히 일어나 대합실 밖으로 나간다. 화를 내는 사람도, 짜증에 찬 얼굴도 없다.



비엔티안에서 루앙프라방으로의 이동에는 어쨌거나 하루가 꼬박 걸린다. 어떤 방법으로 이동을 하든 간에 시간은 애매하고, 어느 지점에서는 지루함을 꾹 참고 기다려야 한다. 그러다 보면 느긋한 태양도 어느샌가 다른 곳으로 굴러 가버리고, 여행 중에 더 없이 소중한 하루는 그렇게 의미 없이 지나간다. 뭘 어떻게 해도 그냥 하루가 걸린다, 라는 느긋한 마음으로 있는 게 차라리 정신 건강엔 좋을지도 모르겠다.




1시간 정도를 날아 루앙프라방에 도착하니 저녁 7시가 좀 넘었다. 인터넷에서 공항 바깥쪽으로 걸어나가면 시내로 들어가는 툭툭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팁을 읽은 게 기억이 나서 밖으로 좀 걸어나가 봤다. 어두운 도로를 씽씽 달리는 차들이 몇 대 있을 뿐, 툭툭은 없었다. 아마도 못 찾은 거겠지만, 이 밤에 어디 있을지 모를 툭툭을 찾아 도로변을 배회하고 싶진 않았다.


일단 숙소에 가서 짐을 던져 놓고 좀 눕고 싶은 마음에, 공항에서 오늘 머물 라오 루 롯지까지 미니밴을 타기로 했다. 기본 3명에 150,000낍이라는 가격표가 걸려 있었다. '0'이 너무 많아 무슨 전세 리무진인 줄 알았네. 느리게 돌아가는 머리로 계산을 해보니, 라오스 치고는 비싸지만 아주 터무니없는 가격은 아니었다. 3명이 탈 수 있는 금액에 둘만 타기는 좀 아까워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툭툭을 찾아 우왕좌왕하고 있던 한 남학생을 끼워 태웠다.


밴이 출발하자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본다. 호기심에 찬 어린아이처럼. 땅거미가 진 라오스의 상쾌한 저녁 공기가 몸 구석구석 스민다. 동네 슈퍼, 미용실, 가정집, 공구점, 무얼 파는지 모르겠는 가게, 집 앞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포대기에 아기를 업은 아줌마, 밝은 전등 및에서 머리를 깎는 아저씨, 과자 가판대 앞에서 머뭇거리는 꼬마들.


빠르게 지나쳐 가는 풍경들이 새삼스레 신기했다. 문을 연 모든 가게는 넓게 뻥 뚫린 상태였다. 가게로 들어가는 문도, 유리로 된 쇼윈도도, 큰 간판도 없었다. 문이 닫힌 가게에는 셔터가 무겁게 내려져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왠지 정겨웠다. 단출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높은 건물들이 빽빽한 곳에서 떨어져 나와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평지를 보니 마음이 안정되었다.


30분 후 라오 루 롯지 앞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내일 가려고 마음먹은 꽝시 폭포 투어를 예약했다. 짐을 던져두고 밖으로 나와서 메콩강가를 좀 걸었다. 조용한 루앙의 밤거리를 느릿느릿. 슬리퍼를 끌면서 걷다가 만난 한 작고 낡은 마사지 샵에서 1시간 정도 마사지를 받았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딱딱하게 뭉친 목과 어깨를 가진 우리는 마사지를 좋아한다. (사랑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결론적으로 말하면, 라오스의 마사지는 동남아 마사지의 메카인 옆동네 태국에 비하면 그다지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긴 하루가 끝날 무렵,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에 몸을 맡길 수 있다는 건 무척 기분 좋은 일이었고, 그 자체가 엄청난 특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라오스에 있는 동안 매일 마사지를 받았다.



마사지를 받고 나오니 시간이 정말 늦어져서 깜깜한 밤길을 더듬어 겨우 문을 연 슈퍼를 발견하고 감자칩과 맥주를 샀다. 호주 언니가 비상용으로 가져온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나니 저녁이 완성되었다. 다른 건 몰라도 비어라오가 있으니 비로소 라오스에 온 기분이 난다.


라오스에서의 소중한 하루가, 루앙프라방에서의 첫날밤이 그렇게 지나간다. 비상용 컵라면과 요상한 맛의 감자칩, 그리고 비어라오와 함께.



_ 총 여행 예산 (2인) : USD $900
_ 비엔티안 공항에서 첫 환전 :
USD $50 = 404,000낍

루앙프라방 공항에서 라오 루 롯지까지 미니밴 (3인) : 150,000낍
길가 마사지샵에서 1시간 전신 마사지 (2인) : 100,000낍
비어라오 500ML 2캔 & LAY 감자칩 2 봉지 : 40,000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