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2015 _ 여행 1일 차 :: 인천 - 비엔티안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던 날도,
오기는 온다. 결국은.
다만 기다림이 더딜 뿐.
드디어 2월 14일이 왔다. 짐을 쌀 시간이 두 달이나 있었지만, 너무 긴 시간은 아주 짧은 시간만 못하다. 떠나기 며칠 전부터 퇴근 후 짬짬이 싼 배낭을 둘러매고 비엔티안 행 12시 10분 비행기를 타러 룰루랄라 인천공항으로 출발했다.
긴 연휴가 시작하는 토요일의 공항은 그야말로 사람의 홍수였다. 대략 30%의 한국인과 69.8%의 중국인, 그리고 0.2%의 기타 등등의 사람들이 공항 여기저기에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카페에도, 햄버거 주문 창구에도, 공항 내 모든 항공사 창구에도.
괜히 조급한 마음이 들어 우리도 라오항공 창구가 열리자마자 티켓을 받고 짐을 붙였다. 공항에서 가장 긴 줄은 단연코 입국장으로 들어가는 줄이었고, 한참을 걸어 입국장 문이 아득히 보이는 긴 줄의 끝에 섰다. 오늘 내로는 들어갈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
X-RAY를 통과하고 출국 스탬프를 받고 사람들로 북적이는 면세점 순례를 마치고, 티켓에 쓰인 대로 11시 40분에 탑승할 114번 게이트에 도착했다. 얌전히 기다렸다가 스티커가 너덜너덜 붙은 작은 탑승권을 돌려받고는 하얀색 라오항공 비행기의 입구를 향해 달렸다. 우와앙.
비행기 입구에서 라오항공 승무원 언니들이 예쁘게 웃으며 고운 손을 모아 "사바이디!"하고 인사를 건넨다. 승무원 복은 짙은 파란색 바탕에 목 부분과 치마 끝단에 화려한 자수무늬가 들어가 있고, 가슴엔 라오항공의 금색 브로치를, 망으로 단정히 올린 머리에는 라오스의 국화인 참파(Champa) 꽃핀을 꼽았다. 심플하지만 색깔 덕분에 눈에 잘 띄고, 하얀 꽃핀 때문인지 여성스럽고 단아한 느낌이다.
비행기가 작아서인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탑승이 모두 끝났다. 곧 라오 말과 영어가 섞인 안내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웃긴 건 두 언어가 전혀 구분되지 않아서 라오 말도 라오 말 같고 영어도 라오 말 같다. 결론은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는 슬픈 이야기.
한국을 떠날 때 흐렸던 하늘은 점점 시원한 파란색으로 물들었고, 생선이 들어간 기내식은 꽤 맛이 좋았다. 배 부르고 느긋한 기분으로 여행책을 좀 뒤적이다가 우연히 옆에 앉은 믹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조심스럽게 한국어로 인사를 건넨 믹은 한국에 한 대학교 연구실에서 공부 중인 라오스 사람이었다. 설 연휴를 맞아 가족들을 보러 집에 가는 길이었는데, 비행기에 탄 후 몇 시간 동안 우리에게 말을 걸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단다. 그는 우리와 함께 여행책을 뒤적이며 라오스와 여행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알려주었다. 영어와 한국어가 섞인 대화는 비행기가 비엔티안에 완전히 착륙할 때까지 몇 시간 동안 이어졌다.
여행에는 늘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 따른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행운은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때 온다.
라오스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역사이야기를 듣고 라오 말을 몇 마디 배우고 가볼만한 추천 명소와 먹어봐야 할 음식들에 대해 들었다. 같은 내용이라도 말로 전해지는 라오스는 글로 보는 라오스보다 몇 배는 더 흥미로웠고, 조곤조곤한 말투가 귓가에 스며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 믹의 라오스 소개
_ 라오스의 옛 이름은 '란쌍'으로 백만 코끼리란 뜻인데, 이는 군사력을 의미한다. (참고로 스리랑카는 실론, 캄보디아는 크메르)
_ 라오스는 공식적인 불교국가로 80% 정도는 불교, 20% 정도는 조상신을 모신다. 어릴 때 출가하여 스님이 되는 것은 이제 하지 않는다. 다만 학교 대신 출가를 해서 공부를 하기도 하고, 성인이 되면 3개월 정도 출가를 하는 의식을 갖는다고 한다.
_ 모든 라오스 청년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대학에 가면 1개월 정도 군사 훈련을 받는다. 훈련을 통과하면 카드를 발급한다고 하는데 용도는 물어보지 못했다.
_ 라오스는 불교국가이므로 불교 달력을 사용하며, 2015년은 불기로 2557년이다.
_ 라오스는 19세기 후반부터 약 백 년간 프랑스의 식민지였다가 미국으로 넘어갔고, 이후 베트남 전쟁의 우회로로 사용되다가 전쟁이 끝난 후 왕국에서 베트남과 같은 공산주의 공화국으로 바뀌었다.
★ 믹의 간단 라오 말
_ 사바이디 :: 안녕하세요.
_ 콥 짜이 :: 감사합니다.
_ 쏙디 :: 행운을 빌어요.
_ 토다이 :: 얼마예요?
_ 펭 :: 비싸요.
_ 룻따이보 :: 깎아주세요.
_ 수에커이네 :: 도와주세요.
_ 펫 :: 맵게
_ 모 펫 :: 안 맵게
★ 믹의 추천 음식
_ 맑은 국물의 쌀국수 포(Pho)는 비엔티안이 맛있고, 한국의 해장국처럼 얼큰하고 진한 국물의 쌀국수 카오 소이(Khao Soi)는 루앙프라방이 맛있다.
_ 바게트(Khao Jee)는 어디나 맛있다. (프랑스 식민지의 영향인 듯)
_ 행운이라는 뜻의 음식인 랍(Laab)은 좋은 날에 좋은 운을 위해 먹는 음식으로, 지역마다 재료나 맛이 다 다르다.
_ 이외에도 돼지고기 소시지인 솜 무(Som Moo)와 사이와(Sai Ua) 도 추천!
폭신한 구름 대신 따뜻한 노란색의 지면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비행기는 마침내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 도착했다. 우리의 라오스 전문가와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사람들이 엉덩이를 들썩이며 몸을 푸는 사이, 믹이 수줍게 웃으며 내 일기장 한 귀퉁이에 연락처를 적어 주었다. 나중에 비엔티안으로 돌아오면 함께 식사라도 하고 싶다는 말에, 우리는 꼭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일주일 뒤에 비엔티안으로 돌아온 우리는 약속대로 믹과 함께 맛있는 레스토랑에서 훌륭한 점심을 먹었다.
멀어지는 믹과 손을 흔들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아직 찬 바람에 익숙한 폐에 따뜻한 공기가 훅 들어와 잠시 숨이 막혔다.
여기는 따뜻한 남쪽나라 라오스.
여행은 이미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