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2015 _ 여행 2일 차 :: 루앙프라방 야시장
폭포에서 돌아와 오전에 예약해둔 마사지를 받고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사위가 깜깜한 밤. 사카린 로드를 따라 숙소가 있는 시사방봉 로드 쪽으로 걷는다. 밤은 상쾌하고 몸은 부드럽고 배는 꼬르륵거린다.
어둑어둑한 도로 한복판에 환하게 불을 밝힌 야시장이 섰다. 낮엔 툭툭이 다니고 자전거가 달리던 도로가 밤에는 텐트가 줄줄이 이어진 시장이 된다. 그 북적임과 웅성거리는 소리가 좋아, 입구에서 과일 주스를 하나 사서 물고는 노란 불빛 아래로 첨벙, 뛰어든다.
저 멀리 불이 둥둥 떠 있다.
눈 부신 노란 등불이.
도깨비불처럼, 별무리처럼.
허공에 둥둥 떠있는 밤.
루앙프라방을 이야기할 때면 빠지지 않는 야시장. 들어가는 입구는 두개지만 오른쪽이냐 왼쪽이냐, 고민할 필요는 없다. 어디로 들어가든 가운데서 빠져나갈 방법이 전혀 없기 때문에 왕복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그야말로 야시장 강제 쇼핑. 우리도 아픈 다리를 끌고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는지.
야시장에선 젊은 배낭여행자와 나이 지긋한 중년 여행자가 자연스레 섞인다.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도, 주머니가 빵빵한 여행자도 모두 모두 쇼핑을 한다.
더운 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한국에서 가져온 옷이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분명 여름옷인데도 더운 거 같고 찍은 사진을 보면 어색하다. 몇 번의 경험 끝에, 이제는 아예 여행지에서 옷을 사 입는 편을 택한다.
여기서 파는 현란한 프린트와 가벼운 재질의 옷이 맘에 들어, 야시장에서도 나의 관심사는 온통 옷이다. 호주 언니와 이 가게 저 가게를 기웃거리리다 헐렁한 코끼리 무늬 바지와 드레스를 몇 벌이나 사버렸다.
루앙프라방 야시장은 옷가게고 신발가게고 인테리어 소품점이고 갤러리이자 문구점이다. 없는 거 빼곤 다 판다. 대충 보면 파는 게 다 똑같은 거 같지만, 자세히 보면 또 그렇지도 않다.
이 가게에서 고른 옷은 저 가게에는 없다. 오른쪽 길에서 본 신발은 왼쪽 길에서 만난 신발가게를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는다. 고로 마음에 드는 물건은 바로 사야 한다. 한 번 지나가고 나면, 똑같은 건 다시 찾기 힘드니까.
시장을 한 바퀴 돌고 나오자 배가 엄청나게 꼬르륵 댄다. 시장 끄트머리에 코코넛 빵을 구워 파는 아줌마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작고 둥근 코코넛 빵 다섯 개가 담긴 잎사귀 접시를 하나씩 사서 애피타이저로 삼았다. 어릴 때 하굣길에 사 먹던 풀빵 같은 느낌. 달짝지근하고 은은한 코코넛 향이 난다.
야시장 끝에서 안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뷔페 골목이 나온다. <꽃보다 청춘>에서 침샘을 자극했던 만낍 뷔페는 어느새 만 오천 낍으로 올랐다. 그래도 앞에 켜켜이 쌓인 음식의 산을 보면, 비싸다고는 할 수 없다.
작은 접시를 들고 먹고 싶은 대로 음식을 골고루 담는다. 나름 보기 좋게 담는다고 잘 쌓아 올려 계산하러 갔더니, 돈을 받은 라오스 언니가 묻는다. "데워줄까?" (대충 그런 말인 것 같아서) 좋다고 고개를 끄덕였더니, 정성스레 쌓아 올린 내 음식을 우르르 프라이팬에 쏟아붓고 즉석에서 쓱쓱 볶아준다. 결국 잡탕밥이 되고 말았군. 언니가 음식을 볶는 동안 바짝 잘 구운 생선을 한 마리 샀다. 여기에 비어라오까지 곁들이고 나니 저녁 만찬 완성.
라오스에선 레스토랑이든 카페든, 낮이든 밤이든, 언제 어디서든 비어라오를 마실 수 있다. 괜히 나라 이름을 딴 국민 맥주가 아니다. Big Beerlao or Small Beerlao. 두 가지 사이즈가 있지만 우리는 작은 비어라오는 취급하지 않았다. 라오스에 온 이상 하루에 적어도 큰 비어라오를 한 병 정도는 마셔줘야 하루를 잘 마무리했다고 할 수 있지. 적어도 우린 그렇게 믿었다.
한 손엔 큰 비어라오, 다른 손엔 잡탕밥 접시를 들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 옆에 홀로 앉은 한 외국인 남자도 큰 비어라오와 잡탕밥을 먹고 있다. 스위스에서 온 그의 이름은 야닉. 스위스에서 출발해 유럽과 동남아를 거쳐 호주로 갈 예정이란다. 지금까지 반년 정도 여행을 했고, 앞으로도 반년을 더 할 거라고 한다. 좋겠다. 좋겠다. 좋겠다.
너희는 라오스 다음에 어디로 가니.
우리는 이번엔 라오스만 여행해. 모처럼 긴 연휴를 만나서 운이 좋았지. 뭐, 유럽의 휴가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유럽 사람을 만나면 늘 느끼는 감정, 부러움. 언제쯤 모든 회사원이, 모든 노동자가 여름이면 한 달씩 유급 휴가를 받아 마음껏 쉴 수 있게 될까. 언제쯤 모두가 그런 시간을 가질 권리가 있음을, 또 그렇게 여유로운 삶을 사는 것이 사회의 근간을 흔들거나 발전을 저해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될까.
휴가가 짧은 건 유감이지만, 친구가 한국은 굉장히 안전한 나라라고 하던데.
전체적으로 치안이 좋은 편이지. 그렇지만 스위스도 안전하잖아.
꼭 그런 건 아니야. 스위스 사람 중 절반은 집에 총 하나씩은 갖고 있어서, 가끔 총기사고가 나기도 하고. 나도 모르는 동네는 밤늦게 다니기 무서워.
스위스 하면 떠오르는 청정한 이미지와 총기사고는 좀 맞지 않는 것 같은데, 사실이란다. 스위스는 전통적으로 무장중립을 지켜온 나라라서, 병역 의무를 지는 18-30세 남자들은 일정 기간의 군사 훈련을 마치고 예비역이 된다. 예비역은 비상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집에 총기를 보관해야 하는데, 이런 합법적인 총기가 때로 사고의 원인이 되는 모양이다. (물론 미국의 총기사고에 비하면 세발에 피겠지만.)
호주 언니는 우리 얘기를 한참 듣더니, 왜 우울한 얘기만 하냐고 타박한다. 화제를 호주로 돌려 여행 이야기를 좀 더 한다. 밥을 다 먹고 비어라오도 깨끗하게 비운 후 야닉과 함께 일어난다. 굿럭. 대충 이런 말을 건네고 악수를 하고 각자의 숙소로 돌아간다.
여행을 하면서 다른 여행자들과 되도록 대화를 많이 나누려고 노력한다. 정치나 사회문제와 같이 조금은 심각해 보일 수 있는 주제도 예외는 아니다. 각 나라에 대한 생각도 인상도 사람마다 다르니까. 발행처는 같지만 모양은 각기 다른 우표를 모으는 기분으로 여행자들의 이야기에서 그 나라에 대한 단상을 모은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부러움이 커지는 만큼 동시에 감사함도 커진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없듯, 완벽한 나라도 없다. 발끝까지 따뜻하게 이불을 덮고 잠자리에 누워 생각한다. 이렇게 좋은 시대에, 발전된 나라에서 태어난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게다가 여행까지 다닐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소란했던 아침과는 달리 창문 너머로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소리만 간간이 들리는 조용한 밤. 잠든 호주 언니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행복한 마음으로 잠을 청한다.
_ 두 번째 환전 : 3일 치 USD $300
= 2,425,000낍
(그렇게 우리는 부자가 되었다...)
꽝시 폭포 미니밴 (2인) : 120,000낍
망고주스 (1+1) : 10,000낍
사진엽서 (7장) : 14,000낍
인디고 카페에서 점심 (2인) :
96,000낍 (각 볶음국수 & 커피)
꽝시 폭포 입장권 (2인) : 40,000낍
간식 : 27,000낍 (커피 & 크레페)
툭툭 (숙소 >> 마사지샵) : 30,000낍
르 히비스커스 라오 마사지 (2인/1시간씩) : 220,000낍
야시장 저녁 & 쇼핑 : 총 308,000낍
- 동남아 향기가 물씬 나는 코끼리 바지 4벌 : 105,000낍
- 여기가 바로 동남아 드레스 1벌 :
50,000낍
- 태피스트리 : 64,000낍
- 코코넛 볼 2개 : 5,000낍
- 야시장 뷔페 (2인) : 30,000낍
- 생선구이 & 큰 비어라오 2병 :
54,000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