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07 | 자전거가 어울리는 도시

FEB2015 _ 여행 3일 차 :: 루앙프라방 르 바네통 & 자전거

by 아델리


오늘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이불속에서 꼼지락 대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누르고 배낭을 꾸려 예정에 없던 이사를 했다. 이유인즉슨, 애초에 루앙프라과 방비엥 사이에 둔 여유일 때문이다.


일정이 너무 꽉짜여 있으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 비워둔, 아무렇게나 할 수 있는 하루. 루앙프라방이 좋으면 루앙프라방에서, 별로면 방비엥에서 하루를 더 보내기로 하고 숙소 예약도 따로 하지 않았다.


루앙프라방에서 이틀 남짓한 시간을 보냈지만, 우리는 이 풍요로운 도시를 떠날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자연스럽게 하루 더 머무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아쉽게도 라오 루 롯지에는 더 이상 방이 없어서 어제 사카린 로드를 걷던 중에 찾은 세네숙 호텔(Senesouk Hotel)을 새 숙소로 정하고 아침 일찍 짐을 옮겨 놓았다.


내일이 되면 일정대로 루앙프라방을 떠나 방비엥으로 가야만 한다. 오늘을 잘 보내고 나면 떠나고 싶어 질까.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이 도시가 더 좋아진다. 오늘도 또 하나, 루앙프라방을 떠날 수 없는 이유가 추가된다. 바로 빵의 성지, 르 바네통(Le Banneton).




프랑스라는 먼 나라에
버터가 듬뿍 들어간
크루아상이 있었다.
열성으로 빵을 구운 제빵사가
따끈한 크루아상을
조심스레 바구니에 넣었더니,
그것이 라오스에 와서
르 바네통이 되었다.


사카린 로드에 르 바네통이라는 카페가 있어. 알아? 모른다고? 오, 맙소사. 거긴 꼭 가봐야 해. 내일 가서 뺑 오 쇼콜라를 먹어봐. 크루아상도! 커피도 꼭 한 잔 하고.


어제 야시장에서 만난 야닉이 극찬한 카페, 르 바네통. 사카린 로드를 산책하다가 외국인이 많이 들어앉은 카페를 지나쳤던 기억이 난다. 마침 옮긴 숙소 가까이에 있어 간단하게 아침을 먹을 겸 카페를 찾았다.



유럽 여행자들 사이에서 더 유명하다는 카페. 켜켜이 정갈하게 쌓인 빵 이외에는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외관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달달한 빵 냄새가 고소한 커피 향과 어우러져 침샘을 자극한다. 반들반들 광이 나는 크루아상과 데니쉬가 종류별로 바구니에 담겨 있다. 하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일단 야닉이 추천한 뺑 오 쇼콜라와 커피부터 주문한다. 커피가 준비되는 동안 각자 취향대로 나는 데니쉬를, 호주 언니는 곡물빵을 추가한다.


뺑 오 쇼콜라를 잘라 카푸치노와 함께 먹는다. 달콤한 초콜릿이 파삭하면서도 촉촉한 빵에 녹아들고, 그 위로 쌉싸름한 커피가 어우러진다. 한입 두입 먹다 보니 어느새 빈 손이다. 맛있다. 딱 행복해질 만큼.



설탕에 졸인 과일이 올라간 데니쉬도 훌륭하고 잘 구워진 곡물빵도 맛있지만, 우리가 사랑에 빠진 건 바로 Puff Pastry with Apple, 일종의 사과파이다. (이건 먹으라 바빠서 사진 찍을 새도 없었다.)


한 입 베어 물면 바사삭하고 부서지는 페이스트리가 달콤하면서도 식감이 살아있는 사과와 만나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지금껏 세상 여러 곳에서 사과파이를 먹어보았지만, 여기가 최고였고 여행에서 돌아온 지 1년이 지난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요즘도 가끔 그 맛이 생각나 그리워진다.




종류별로 빵을 잔뜩 먹고 커피도 두 잔이나 마셨다. 작은 수첩에 끄적끄적 일기를 쓰고 가계부 정리도 하며 여유를 부린다. 영수증을 받아보니 세상에, 이 작은 빵집에서 자그마치 10만 낍이나 썼다. 오늘 옮긴 세네숙 호텔 더블룸이 하루에 28만낍인 걸 감안하면, 빵집에서 쓰기엔 엄청난 금액인 듯. 하하. 빵이 비싼 건지, 우리가 너무 많이 먹은 건지 모르겠다. (그냥 빵이 비싼 걸로.)


계산을 마치고 카페에서 나와 사카린 로드를 느릿느릿 걷는다. 오늘이 루앙프라방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니 한 번 제대로 돌아보고 싶다는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툭툭은 부담스럽고 스쿠터는 엄두가 안 나서 만만한 자전거를 빌리기로 한다. 이른바 루앙프라방 자전거 셀프 투어.


여행자 거리에 있는 여행사 중 한 곳에서 튼튼해 보이는 자전거 두 대를 빌렸다. 대여 비용은 24시간에 한 대당 3만 낍. 다시 한 번 빵의 성지, 르 바네통의 위엄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가격이다. (어쨌든 전혀 아깝지 않은 10만 낍이었...)


루앙프라방은 자전거가 잘 어울리는 도시다. 스쿠터를 탈만큼 크지 않지만, 그렇다고 계속 걸어만 다니기엔 발바닥이 아프다. 이럴 땐 자전거를 빌려 설렁설렁 끌고 다니는 게 최고다. 화창할 날씨에 살랑이는 바람을 맞으며 사카린 로드 끝까지 페달을 밟는다.



사카린 로드 맨 끄트머리에 있는 작은 공원에 앉아 잠시 쉬면서 강물이 흘러가는 걸 바라본다. 주위가 조용해지고 맑은 새소리만 들려 명상이 절로 되는 기분이다.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려 내려다보니 남칸 강을 가로지르는 빼빼한 다리 위로 교복을 입은 소녀들이 장난을 치며 건너간다.


오늘 자전거를 탄 김에 사원도 가고 국립 박물관도 가고 강 건너 촘펫(Chom Phet) 마을도 가고 탓통 폭포(Tad Thong Waterfall)도 가보리라. 원대한 목표를 가슴에 품고 다시 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밟는다. 멀리, 아주 멀리까지 씽씽 달려가 본다.


느리게 달리는 스쿠터와 나란히 달리다 툭툭 꽁무니를 따라간다. 도시 중심지에서 벗어나자 화려한 레스토랑과 카페 대신 수수한 주택과 네모 반듯한 건물들이 이어진다. 길은 어디나 깔끔하고, 도로에 차가 많지 않아 자전거를 타기에 안성맞춤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원과 국립박물관은 갔지만, 촘펫 마을과 탓통 폭포는 못 갔다. 촘펫 마을에 가려면 메콩 강을 건너가야 하는데,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가늘고 긴 배는 자전거를 태우기엔 불안해 보였다. 탓통 폭포는 왕복 3시간 정도 걸린다기에 가볼만하다고 생각했지만 건기라 물이 별로 없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좀 꺾였다.


그 외에도 하루에 모두 소화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라는 등 이유야 많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사원과 국립박물관을 들른 후, 강가를 따라 앞서 달리던 호주 언니가 급하게 멈춰 섰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자전거에서 내리더니 한 손으로 정강이를 주무르며 다른 손으로 땅에 떨어진 뭔가를 줍는다.


내가 옆에 자전거를 세우자 울상을 한 언니가 부러진 페달을 들어보인다. 쇠가 잘려나갔다. 어이가 없다. 사고는 원래 예고 없이 찾아오는 거라지만, 쇠로 된 자전거 페달이 부러지는 날이 하필 오늘이라니.




아니, 어떻게 페달이 부러질 수가 있나요. 화가 나서 한달음에 자전거를 빌린 여행사로 달려갔다. 반은 화 때문에, 반은 숨이 차서 식식거리며 부러진 페달을 내밀었더니 역으로 우리한테 돈을 물어내란다.


너희가 망가뜨린 거니까, 물어내.

정상적인 페달이 이렇게 부러질 리가 있나. 이건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탓이라구.

어쨌거나 너희가 망가뜨린 거니까, 물어내.

아주 그냥 막무가내로 물어내란다. 서랍에서 계산기를 꺼내 두들기더니 견적이랍시고 6만 낍을 내놓으란다. 부들부들 떨리는 영어로 못 낸다고 버티자, 직원이 눈을 치켜뜨며 한마디 한다.


네 여권, 우리한테 있는 거 알지?


자전거를 빌릴 때 맡긴 여권. 돈을 안내면 안 주겠다는 말에 화가 폭발한다. 속사포 영어로 억울함을 호소하며 한참을 옥신각신 한 끝에, 원래 24시간 빌린 자전거를 바로 반납하는 대신 이미 낸 자전거 대여료에서 얼마를 제하고 3만 낍만 내기로 합의했다. 그냥 빵 하나 더 먹었다고 치자. 돈을 주고 여권을 받아 나왔더니, 호주 언니가 용감하게 잘 싸웠다고 위로해 준다.


비록 불운한 사고로 자전거 셀프 투어는 갑작스레 막을 내렸지만, 자전거와 함께한 한나절은 무척 즐거웠다. 루앙프라방을 돌아보기엔 자전거가 제격이지만, 사고 방지 차원에서 고를 때는 신중, 또 신중하시길.


평화로운 것은 한 순간. 깨지는 것도 한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