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주말에는 집 안의 먼지란 먼지는 다 빨아들이고, 바닥 한 번 닦고 나면 오전 시간이 통째로 사라진다. 오후에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며 집에 있는 재료로 점심을 차려 먹고, 이불을 빨아 건조대에 널어두고 나면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하루가 끝나버렸어. 이렇게 허무할 수가! 물론 가끔은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버거워 곧잘 내일의 나에게 미룬다. 평일로 넘어온 일들은 남는 시간을 쪼개 대략적으로 정해둔다. 전부 잘 지키고 있다면 이런 글도 쓰지 않았겠지. 여전히 집안일이라는 무한 굴레 속에 갇혀 헤매고 있다는 뜻이다.
식구가 늘어나면서부터는 더욱 바빠졌다. 우연한 기회로 연이 닿은 고양이를 자녀이자 동생으로 맞이한 것이 벌써 작년 4월이다. 평소 나보다 나이가 많은 고양이만 봐왔기에 에너지 넘치고 깨발랄한 초코가 신기했다. 놀아달라고 울고, 밥 달라고 울고, 자기 좀 봐달라고 우는 관심이 필요한 고양이. 귀여워해 주는 건 당연지사고, 아침저녁으로 물그릇과 밥그릇을 씻고 화장실을 치워야 한다. 혼자 있어서 심심했을 테니 퇴근 후 15분 이상은 꼭 놀아주고, 노후를 염두해 양치도 해주는 게 좋다.
집안일이란 자고로 살기 위한 스킬에 가깝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집안일은 빨래, 밥하기, 청소 따위를 이른다. 그중 하나라도 빠진다면 삶의 질이 약간은 떨어질 것이다. 다행히도 나는 룸메이트와 함께 살고 있어 그 부담이 반으로 줄었다. b가 요리를 하면 나는 초코의 밥그릇과 물그릇을 씻거나 화장실을 치우고, b가 설거지를 하면 나는 초코와 놀아주는 식이다.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러니 집안일을 줄이고 싶다면 사람을 늘리거나 기계를 늘리는 편을 추천한다.
우리 집 세탁기는 베란다에 있다. 영하 10도를 웃도는 날씨지만 당장 쓸 수건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돌렸는데, 이쯤이면 끝나야 할 종료 알림이 들리지 않았다. 들여다보니 물이 차오른 채 그대로였다. 배수 호스가 얼었다는 걸 그간의 경험으로 알았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약속 시간을 미루고, 화장실에서 꺼내 온 드라이기로 호스를 말렸다. 이렇게 번거로울 수가. 어디에 이 답답함을 말해야 할지 몰라 한숨만 푹푹 쉬었다. 알아서 옆에 있는 세탁물을 집어 통 안으로 넣고, 소재에 맞는 코스를 고른 뒤 건조까지 마쳐서 제자리에 착착 개어 넣어주는 기계는 왜 아직 없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집안일이 한 단계, 아니 다섯 단계쯤은 줄어들 텐데.
이렇듯 나는 아무런 노력 없이 유지되는 집을 자주 상상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저절로 되는 것은 거의 없는데, 왜 유독 집안일만큼은 알아서 되기를 바라는 걸까. 눈에 보이는 수고가 너무 분명해서인지 매번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한다는 사실이 지겹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런 점에서 집안일은 제법 삶과 닮아 있다. 돌보지 않으면 서서히 흐트러지고, 반복되는 손길 속에서 간신히 형태를 갖춘다는 점에서. 그 지긋지긋함과 부지런함을 거듭해 온 시간 덕분에 무너지지 않고 지나온 하루들이 있다. 그래서 집안일은 오늘도 계속된다. 그건 꽤 성실한 자동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