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친 곳에 낙원은 있다

by 조설 joseol

집도, 땅도, 연고도 없이 내려왔다. 주변의 만류에도 개의치 않았다. 그렇다고 대단한 결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흔히 따라붙는 열정이나 패기도 미미했으니, 솔직히 말하면 별 생각이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하는 마음이 조금 더 컸을지도.


공기 맑고 사람 없는 곳에서 좀 쉬고 싶었을 뿐인데 어쩌다 보니 예상보다 일이 커졌다. 내 삶을 뒤흔드는 결정을 너무 쉽게 해버린 건 아닐까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지금이 아니면 영영 떠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모든 일에는 저마다의 타이밍이 있으니까.


진부한 이야기지만, 직장 생활에 넌덜머리가 난 데에는 일보다 사람이 한몫했다. 안되는 것을 되게 하겠다고, 어긋난 상황을 바로잡아 보겠다고 애써온 시간들이 있었다. 다들 이 정도는 견딘다는데 왜 나는 버겁지, 왜 나는 아무렇지 않지가 않지. 그런 질문을 곱씹으며 스스로를 다그친 적도 많았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됐다. 모두가 그렇게 산다고해서 나까지 꼭 같은 틀에 맞출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어쩌면 나는 현실세계로부터 도망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망쳤다고 해서 삶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자리에서야 비로소 내 몫의 삶을 온전히 살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내 선택의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자리라면 그곳은 충분히 낙원이라고.

작가의 이전글더 자유로워지는 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