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를 기다리는 사람들
내가 아직 중학생이었던 시절, 때아닌 펜팔이 유행했다. 한참 사진기가 달린 핸드폰이 보급 되고, 이제는 사라져버린 ‘버디버디'라는 인터넷 메신저가 유행하던 무렵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된 이들에게, 편지는 생일에나 주고받는 부수적인 선물, 혹은 가끔 말하기 쑥스러운 일을 전하는 용도로 쓰였다.
덕분에 우표와 소인이 찍힌 편지를 받아보는 것은 특별한 이벤트가 되었다. 며칠을 꼬박 기다려 받아보는 편지는 우체통에서 편지를 발견하고 봉투를 뜯는 그 순간까지 작은 설렘을 원했던 사람들은 손편지를 주고받을 친구를 구하기에 이르렀고, 그렇게 펜팔이 시작되었다. 점점 높은 빈도로 짧아지는, 대화하듯 하는 채팅에 익숙해져 가는 시대에, 누군가는 맞춤법을 신경 쓰며 손으로 꾹꾹 눌러쓰는, 길어질수록 몇 시간의 중노동을 요구하는 편지의 애틋함을 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연락을 주고받기 위해 탄생한 편지는 그 필요성이 사라지면서 가치를 더해갔던 것이다.
그 시절, 나에게도 펜팔 친구가 있었다. 좀 멀리 떨어진 지역에 거주하는 비슷한 또래의 여자아이였다. 그 애는 소설을 쓰듯 편지를 썼다. 문단 하나하나에 번호를 붙여가며, 줄 공책을 찢어 쓴 듯한 하얀 페이지에 차곡차곡 이야기를 담아냈다. 싫어하는 수업이나 좋아하는 과목, 하고 싶은 일이나 방과 후의 계획까지 모든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었다. 당시에는 특히 편지에 향수를 뿌리거나 손수건을 함께 보내는 등 작은 선물을 함께 보내고는 했는데, 돌이켜보면 그때의 우리는 참 소녀다운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주고받던 편지는 어느 순간 끊기고 말았다. 계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한쪽이 깜박 답장하기를 잊어버린 채로 그렇게 잊힌 것이리라.
그러다 몇 년 전, 필기할 노트를 고르던 중, 그 아이가 쓰던 노트와 똑같은 노트를 발견하고는 잠깐 추억에 젖었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졌다. 8년이 지난 지금, 편지를 쓰면 그 애는 답해 줄까?
그해 말, 나는 한국을 방문하면서 그 애와 주고받았던 편지를 찾아 그 주소로 뒤늦은 답장을 보냈다. 호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편지를 쓰고 호주에 도착하자마자 부쳤다. 이름과 주소밖에 모르는 그 애는 이미 떠났을지 모르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답장을 기다렸다. 비록 반신반의하며 보낸 편지였지만 보내고 나니 은근히 답장이 기다려졌다. 아무래도 바다를 건너가니 오래 걸리겠지? 가는 데에만 몇 주는 걸릴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며 매일매일 우체통을 확인했다.
그러던 어느 날, 편지를 부친 뒤 한 달이 더 지났을 때쯤, 우체통에 하얀 편지 봉투를 발견했다. 기본 편지 봉투에 검은 볼펜으로 꾹꾹 눌러 담은 필체는 영락없는 그 애의 편지였다. 나는 너무 기쁜 나머지 환호성을 질렀다. 뛰어 올라가 짐을 내려놓고는 옷도 같아 입지 않은 채 편지를 읽었다. 이제는 어엿한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그녀는 놀랍게도 아직 8년 전 그 주소에 살고 있었고,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펜팔은 다시 시작되었다. 전보다 훨씬 멀어진 거리는 더 많은 기다림을 필요로 했지만, 그 점이 더없이 좋았다.
늘 긴 편지를 꼼꼼히 써 보내는 우리였지만, 여행할 때만큼은 엽서를 썼다. 멀리 여행을 떠난 누군가가 나를 떠올리며 쓴 엽서를 받는 일은 꽤 낭만적이다. 그런 마음을 알아서일까.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 기념품 가게에는 반드시 엽서가 있다. 그곳의 유명한 유적이나 상징,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엽서는 기념품 가게 카운터 근처를 빙글빙글 돌며 자리를 지킨다.
먼 거리를 건너, 긴 시간을 지나, 나에게 온 엽서. 그곳에서 나를 떠올리던 그 사람의 감정을 지금의 내가 공유한다. 어쩌면 이제는 그조차 잊고 있을 감정을 조심스레 읽어내려가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보낸 엽서에 그녀가 답할 때, 다시금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거리가 멀수록, 뜸을 들일수록, 그 가치는 배가 된다.
사실 펜팔 때문이 아니더라도, 나는 여행을 가면 늘 누군가에게 엽서를 썼다. 사실 쓰는 것보다 받는 게 몇 배는 더 기쁘지만, 보내는 순간에도 나름의 작은 설렘이 있다.
각종 삽화와 사진으로 꾸며진 아기자기한 엽서를 고르는 즐거움, 엽서를 사며 주인에게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엽서 부치며 우체국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우리나라의 우체국은 다른 구청이나 동사무소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반면, 뉴질랜드나 호주에 있는 우체국은 작은 동네 문구점 같은 느낌을 주었고, 베트남에서 들렸던 커다란 우체국은 역사 기념박물관 같았다. 그 중, 내가 좋아하는 우체국은 커봐야 두 평정도 될 듯한 한적한 마을에 있는 자그마한 우체국이다. 주인의 취향이 반영되어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인테리어는 문방구나 골동품점 같기도 하고, 향기로운 꽃집 같기도 하다. 대체로 항상 한가한 그곳은 기다리는 일이 거의 없고, 꽤 수다스럽다. 작은 질문에도 우수수 이야기를 쏟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연고 없는 타국이 조금은 정겹게 느껴진다.
하지만 엽서를 부치는 과정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바로 한적한 카페에 앉아 엽서를 쓰는 순간이다. 이를 위해 반드시 엽서를 산 후, 여행 중 마음에 드는 카페를 만날 때까지 기다렸다 우체국까지 다시 찾아가는 번거로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카페에 앉아 엽서를 쓰는 시간은 낭만적이다. 이국적인 모습을 가득 담고 있는 감성은 지금껏 하지 못했던 생각이나 잊고 있던 기억을 상기시킨다. 마음을 다잡고 펜으로 작은 엽서를 채울 때면 하고 싶은 말을 고르기 위해 무진 애를 쓴다. 그 시간 만큼은 타국에서 그 사람만을 온전히 생각하는 시간이다. 여행하며 느꼈던 기분, 당신이 생각났던 순간, 네가 보면 좋아할 만한 것들을 적으며 온전히 상대에게 집중하는 시간.
어느새 여행 곳곳에서 사람들에게 전할 풍경과 생각을 고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