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여행 갈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 꿀벌 Oct 25. 2020

그리움은 코끝에서 온다


 잊히지 않는 기억은 대게 코끝에서 온다. 지나친 이성의 그리운 향은 과거의 그 사람을 내 앞으로 데려온다. 십 년이 지나면 눈으로 본 기억은 금세 흐릿해지지만, 향기만은 오래도록 그 기억을 간직한다. 그리고 그 기억은 단순히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그치지 않는다.


 실제로 많은 사람은 어린 시절 기억하지 못하는 많은 부분에 대한 느낌을 향기로 기억한다고 한다. 어딘지 그리운 느낌이 드는 향은 비록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잊어버린 과거의 단편이다. 

 나 역시 향으로 기억하는 많은 것들이 있다. 추운 겨울, 바다에서 나는 시원한 소금 내와 크라운 카지노에 들어서면 어김없이 나는 ck 향수와 똑 닮은 냄새, 돈을 세면서 나는 화폐의 때 묻은 쇳내 같은 것들이 그렇다. 


 개중에는 어떤 특정한 장소나 대상을 연상케 하는 향도 있다. 예를 들어, 바스마티 쌀에서 나는 인도의 향 같은 것이 그렇다. 내가 만난 모든 인도 사람들에게서는 이 향이 났는데, 처음 바스마티 쌀을 잘못 구입하고 딱 한 번 밥을 지어 먹었을 때 알았다. 단 한번 지어먹었을 뿐인데 일주일 동안 쌀을 씻은 손에서 향이 떠나지 않았다. 결국 남은 쌀은 친구에게 줘 버렸다. 

 간혹 한국인에게 ‘마늘 냄새'가 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건 도저히 비할 바가 못된다. 바스마티의 향은 한번 맡으면 잊혀지지 않을만큼, 정말 강렬하다. 내게 이 바스마티의 향은  호주에서 만난 모든 인도 사람들을 연상시킨다. 우리가 소위 말하는 ‘마늘 냄새'라는 걸 맡을 수 없듯이, 그들도 이 강렬한 향을 맡을 수 없는 걸까?



 내가 이 향을 싫어하게 된 데에는 호주에서 만난 인도사람들의 영향이 컸다. 하인을 부리듯이 종업원을 부리던 인도 사장이나, 그들에게 복종하며 성추행을 하든 소리를 지르든 


“He is a good man, he is the best boss!”


 하고 진심인지 아닌지 모를 소리를 하는 종업원도 그랬다. 그곳에서 더 일하다가는 내가 이상해질 것 같아 삼 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원래도 강한 향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바스마티 향에 얼굴이 찌푸려지게 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정말 안 좋은 기억으로 가득한 향이다. 


 향은 기억과 함께 감정을 남긴다. 기억이 사라져도 그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에 남아 나에게 신호를 보낸다. 안 좋은 향이야, 어서 도망가! 하고. 


 반대로 기분이 좋아지는 향도 있다. 한낮에 퀸스타운에서 맡았던 바닷가 내와 섞인 달콤한 술과 칩스의 향이라던가, 태즈메이니아 숙소에서 나던 고요한 고양이들의 향, 와이너리에 푸릇하고 느끼한 향이 그렇다. 

 특히 술과 칩스의 향은 꽤 좋은 느낌으로 남아있는데, 아마 그 시간은 늘 좋아하는 사람들과 왁자지껄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보냈던 기억으로 가득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향을 맡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절로 신이 난다. 즐거운 일이 지금 시작될 것 같은 기분을 왕왕 주는 것이다. 


 슬플 때 술을 마시지 말라는 말은 알코올 중독이나 누군가에게 실수할 가능성을 염려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술에 대한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소주를 양껏 마시고 속이 뒤집어지는 경험을 한 사람은 한동안 알코올 향만 맡아도 속이 울렁인다. 하물며 슬프고 힘든 감정에 길든 술의 향은, 그간 술과 함께한 좋은 감정을 앗아갈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의 쳇바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