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입맛에 맞는 맥주를 찾아라!
술은 다양한 맛을 지닌다. 같은 술도 달게 마실 때가 있는가 하면 입에 대자마자 얼굴이 찌푸려질 정도로 쓰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쓰면 쓴대로 달면 단대로, 술을 마신다. 술만큼 ‘풍미'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음식도 없을 것이다. 가지각색의 다양한 풍미를 지닌 술들은 사람들의 친목을 도모하기도 하고, 외로운 이들을 위로하기도 하며, 때로는 생각을 멈추고 숙면을 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보조제 같은 역할을 한다.
인류의 사랑을 듬뿍 술, 그중에서도 하나를 꼽자면 나는 와인 파다. 물론 그 맛과 먹는 분위기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기분 좋게 취하고 잠이 잘 온다는 점에서 와인을 좋아한다. 두 잔만 마셔도 몸이 축 처지면서 눈이 스스륵 감기는 기분 좋은 마법을 부린다.
맥주는 그에 비하면 내게는 꽤 불편한 술이었다. 마실 때 입안 가득 퍼지는 따가운 탄산도 그렇고, 아무리 마셔도 배만 부를 뿐 취하지 않을뿐더러 마실수록 살이 찔 것만 같은 묘한 불편함이 있다. 무엇보다 곡식을 증류해 만든다는 맥주는 풍미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한결같이 보리차에 알코올을 섞은 쾌쾌한 향이 났다. 그럼에도 맥주는 회사원들에게 소주만큼이나 인기가 많았고, 그들과 함께 하며 나 또한 한 두 잔씩 맥주를 삼켰다.
당시만 해도 주위에 있는 많은 애주가 덕분에 다양한 맛의 맥주를 맛보고 살았지만 영 마음에 드는 맥주를 찾을 수 없었다. 유명하다는 맥주 바에서 일곱 종류의 맥주를 맛보기도 하고, 일하던 매장에 새로 들어오는 맥주를 얻어먹기도 했지만 이거다! 싶은 맥주를 찾을 수 없었다. 그나마 거부감 없이 삼킬 수 있는 맥주는 생맥주 중에서도 아사히 블랙 정도였다.
그런 내가 맥주의 맛을 알게 된 것은 성인이 되고도 오륙 년이 지난 후에 일이다. 한번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호주에 놀러 온 일이 있었다. 멀리 한국에서 오는 친구와 여행도 할 겸, 멜버른으로 들어오기 전, 타즈메이니아로 이박 삼일의 짧은 여행을 떠났다.
작은 뉴질랜드라고 불리는 타즈메이니아의 고즈넉한 풍경과 유럽풍의 아름다운 건물은 마음을 치유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당시 타즈메이니아는 막 도시개발이 가능해진 직후였기에, 높은 건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곳이었다. 낮은 건물들은 알록달록 파스텔색으로 칠해져 그림책에나 나올법한 모습을 하고 울퉁불퉁한 거리를 꾸몄다.
독특하고 다양한 전시로 유명한 모나 박물관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카스케이드 맥주 공장(Cascade Brewery Co)은 처음으로 맥주는 맛없다는 편견을 깨준 곳이었다.
이곳에는 카스케이드 공장 탐험과 함께 맥주를 맛보게 해주는 패키지가 있었다. 이백 년이 다 되어가는 공장을 둘러본 후, 우리는 기대하던 맥주 바에 앉아 맛있는 안주를 곁들인 맥주를 마셨다. 각기 다른 여섯 가지 맥주를 조금씩 마시고, 맥주 한 잔씩을 시킬 수 있었다. 친구와 나는 Cascade Lager와 Cascade Draught를 고른 것으로 기억한다. 후에 기념품 가게에 들른 친구는 맥주를 한가득 사서 돌아왔다. 나 또한 그날 저녁 마실 맥주를 샀다. 우리가 마신 카스케이드의 맥주는 이곳에서만 취급하는 것으로, 호바트의 다른 맥줏집이나, 호주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도 그때의 추억은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맛있는 맥주와 비싸기만 한 안주를 먹던 우리는 더없이 행복했다. 여행을 떠나왔다는 설렘과 그런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자유로운 분위기에 젖은 건지는 몰라도, 맛있다며 한가득 사들고도 아쉬워할 만큼, 그 맥주는 맛있었다.
맥주에도 이토록 다양한 맛이 있다면, 사람들이 극찬하는 체코의 맥주는 어쩌면 내가 모르던 새로운 맥주의 세계를 열어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