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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꿀벌 Nov 06. 2020

모험과 도망은 한 끗 차이








얼마 전 기쁜 소식을 들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지만, 연락은 자주 못 하게 되는 친구가 있다. 미안한 것도 많고 고마운 일도 많아, 문득 생각이 날 때면, 짧게나마 그녀의 안녕을 기도했다. 그러다 일 년 전, 유학을 떠나 연락을 못 하고 살던 내게 청첩장이 날라왔고, 얼마 전에는 건강한 아이와 함께 세 가족이 되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놀라기도 하고 기쁘기도 한 이상한 감정, 그와 함께 어찌해야 할지 모를 동동거림이 있었다. 내 친구가 벌써 가족을 이루다니!

사람은 비슷한 성향끼리 만난다고 했던가. 애인하나 없는 나도 그렇지만, 오래 만난 연인이 있는 주변 친구들도 결혼 생각이 없었다. 어릴 때는 어른같이 느껴졌던 이십 대 후반이라는 나이가 우리에게는 그저 숫자에 불과해 보였다. 아직 혼자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하는 것도 너무 많았다. 

그런 우리에게 그 친구의 결혼과 연이은 출산 소식은 작은 충격이었다. 그래, 이런 소식이 이상하지 않을 나이지. 그렇다는 걸 우리는 그때 처음 피부로 느꼈다. 


외국에 있는 내게 메신저로 청첩장을 보내온 친구에게 나는 연신 감탄하며 말했다. 벌써 가족을 이루다니! 정말 대단하다. 믿겨지지 않아! 우리는 그간의 삶을 간략하게나마 주고받으며, 이제는 많이 달라진 서로의 삶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분명 몇 년 전까지 그리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던 우리는 어느새 이렇게나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내게 있어 그녀가 말하는 순탄한 삶은 가히 굉장한 일이었다. 진학한 대학을 무사히 졸업하고 바로 직장을 잡아 몇 년 동안 성실히 근무하던 그녀는 오래 만나던 남자친구와 오래도록 함께할 것을 약속하고 가족을 이루었다. 그리고 얼마 전, 아이까지 낳아 우리가 어린 시절 생각하던 이상적인 가족의 형태를 이룬 것이다. 너무나 순탄하고 안정되어 보이는 이 삶을 간단하게 요약하는 그녀가 내게는 몹시 대단해 보였다. 그녀가 이루어낸 그 순탄한 삶 중 그 어떤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나는 그녀와 똑같이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진학했지만 금세 싫증을 내고 말았다. 당시에는 학과, 환경, 수업 방식 같은 여러 핑계를 댔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싫증이 났었다. 줄줄이 갖다 붙인 핑계들이 거짓은 아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학교를 그만둘 만한 이유는 아니었다. 

그리고는 도피하듯 유학길에 올랐다. 모두가 반대하는 것을 고집에 고집을 써 오른 만큼 갖은 고생을 해야 했다. 뱉어 놓은 말이 있어, 그리고 다른 대안이 없어 이를 악물고 하다 보니 어느덧 졸업이었다. 그곳에 삶이 익숙해진 나는 첫 직장을 잡아 그대로 정착했다. 그러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귀국을 고민하던 차에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덮쳤고, 봉쇄된 도시의 감옥에서 탈출하듯 그곳을 떠났다. 

생각해보면 내 삶은 도피의 연속, 싫은 걸 피해 도망쳐 온 삶이다.


하지만 그녀가 보는 시선은 조금 달랐다. 그녀는 다들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두지 못한다고 말하며, 

‘그만둘 수 있었던 네가 대단한 거야. 나는 우리 중에 네 삶이 제일 궁금해’

그녀가 보는 내 삶은 도전하는 삶이었다. 원하는 삶을 찾아 도전하고 부딪히고, 그렇게 유학을 떠나 긴 타지 생활을 하는 내가 그녀에게는 용감하게 비치는 듯했다. 

처음 이런 반응을 접했을 때 나는 손사래를 쳤다. 아니야. 한국에서 자리 잡고 사는 너희가 더 대단하지! 진심이었다. 내가 끝까지 해내지 못한 일을 하는 이들이, 의무교육 십이 년 끝에 또 다른 사오 년을 더 공부하는 수많은 졸업생이 존경스럽다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어릴 때의 나는 무조건 높은 산을 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높게 솟은 산을 보고 지레 겁먹는 사람들을 두고 정상에 오르면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은 성취감을 가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오르다 보니 높은 경사에 숨이 차고 다리가 아파, 결국 그 산을 내버려 두고 낮은 길을 찾아 걸었다. 발에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의 완만한 곡선을 가진 길은 쉬이 지치지 않고 오를 수 있다. 그렇게 산을 오르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덧 저 멀리 내가 포기한 산들이 듬성듬성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정상에 있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가파른 산을 오른 그들에게 연신 감탄했지만, 그들은 같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들에게 내 산까지 오르는 길은 너무 험난했다. 길이 제대로 나 있지 않아 울퉁불퉁 위험해 보였고, 길잡이도 울타리도 없는 산은, 자칫 잘못하면 발을 헛디뎌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들은 오르지 못한 산을 보며, 내게 이곳에서 보이는 경치를 물었다. 


어느 한 길목에서 만나 함께 걷던 우리는 어느새 서로 다른 봉우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 그 봉우리는 삶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그 누구도 오를 수 없는 그 사람만의 정상이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앞으로도 서로를 바라보며 대단하다 할 것이다. 내가 피해온 길을 걸어 한 번쯤 오르고 싶었던 그곳에 올라있는 그들을 보며 감탄할 것이다. 그곳에서 보이는 풍경을 전해 들으며 신기할 것이고, 그들이 만난 등산객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놀랄지도 모른다. 


그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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