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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꿀벌 Nov 15. 2020

개인의 철학, 세계 철학의 날

뉴 아크로폴리스

얼마 전 연탄 봉사를 다녀왔다. 불우한 이웃에게 연탄을 배달한다는 마음 따듯한 행사였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지친 몸을 이끌고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참여한 행사였다. 

친구와 함께 온 사람 중, 외국인이 있었다. 이스라엘에서 왔다는 그 두 사람은 한국에 '철학 학교'를 세우러 왔다고 했다. 친구는 그곳에서 주에 한 번씩 철학 수업을 듣고 있었다. 


세계에 뻗어있다는 이곳의 이름은 '뉴 아크로폴리스'. 


철학은 꽤 재미있는 소재이니만큼 사짜에게 활용되기 쉽다. 세상에 수많은 '도를 아십니까?'는 그들의 철학에서 나왔음이 틀림없으니까.

그래서 어느 정도 마음의 경계를 가지고 물었다. 철학을 가르친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는 일상에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철학 (practical philosophy) 을 가르치고 있어요. 우리는 철학을 배우고 실생활에 적용함으로써 많은 배움을 얻었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돕고자 아직 이 학교가 세워지지 않은 한국에 와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어요. 모든 것은 자발적 봉사(volunteer) 입니다.'


그녀의 대답은 분명했고, 거짓은 없었다. 그들이 영적인 무언가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학생들로부터 금전적인 대가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 사실에서 우선, 조금 신뢰가 생겼다. 이런 걸 보면 나는 참 속물이다. 

연탄 봉사는 오전 내내 이루어졌고, 한 가구에 연탄을 다 배달하고 나면 다음 가구로 이동했다. 연탄을 배달하며 나는 그들과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나는 철학 하면 생각나는 것을 물었다. 당신의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요?


'삶을 의미 있게(meaningful) 만드는 것입니다.'


추상적인 발언에 자세히 묻자 그는 친절히 대답했다.


'나는 물질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그는 다른 생계유지를 위한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이 어떤 일인지는 내게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그건 이 철학교육을 실현하기 위한 존재(support)이니까요. 사람들을 돕고, 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내적으로 성장함을 느낍니다. 철학을 공부하고 전파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경영학을 배울 때, 인간의 욕구 피라미드 (매슬로의 욕구단계설)을 배운다. 이들의 행동이 내게는 그 꼭대기에 있는 '자아실현의 욕구'로 보였다. 음, 이런 사람들이 정말 있구나. 


사실 이 욕구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일은 굉장히 어렵고 흔들리기 쉽다. 스무 살이 되어 사회를 마주한 사람들은 꽤 오랫동안 '생리적 욕구(의식주)'와 '안전의 욕구(집/차 등 내 공간마련)' 그리고 '사회적 욕구(사랑, 우정 등)'를 충족시키기 위해 살게 된다. 생리적 욕구는 어떤 일을 해도 비교적 달성되는 반면, 안전의 욕구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며, 젊은 나이에 달성하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이 욕구에 매달리다 사회적 욕구를 놓친 사람들은 '혼기를 놓쳤다'며 어느 정도 타협하고 살아가기도 한다. 


이 모든 게 안정되고 나면, 보통 '존경의 욕구'로 넘어가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취미활동을 시작하고, 지금껏 배우지 못했던 것들을 배우기도 한다. 하지만 저들처럼 오롯이 이것들에 몰두하며 다른 욕구들이 '부차적 수단'이 되어버리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간혹 세간에 자신은 월세에 살면서 다달이 큰 금액을 기부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사람마다 '안전의 욕구'가 충족되는 기준이 다르겠지만, 내게는 이 사람들이 퍽 대단해 보인다. 과연, 나는 상상할 수 없는 그릇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저들의 철학에 나는 완전히 공감하지는 못했다. 다만 그들의 철학을 인정했다. 개인의 철학은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11월 22일, 세계 철학의 날이라고 한다. 코로나의 여파도 있어, 화상으로 참여할 수 있다고, 관심이 있으면 들어와 보라고 했다. 

세계 철학의 날이라니. 그런 게 있었구나.


연탄봉사를 마치고 집에 오니, 미처 가리지 못한 발목주위가 연탄으로 얼룩져 있었다. 아 다 빨아야겠네.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던져 넣고 샤워를 마친 뒤 지친 몸을 뉘고 오랜만에 내 철학을 생각했다. 나의 삶의 목표. 내가 정한 삶의 방향. 아직은 깜박하면 현실에 가려 잊게 되는 위태로운 철학.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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