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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꿀벌 Nov 19. 2020

이성,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어릴 때 종종 이 주제로 시비가 붙고는 했다.

'남녀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아직 이성과의 관계가 뭔지 모르던 어린 시절, 나는 어떤 대답을 했을까? 


이 질문은 커서 연애를 하면서도 함께 따라다녔다. 친한 이성 친구를 질투하는 연인, 쿨한 척 하지만 신경 쓰는 게 훤히 보이는 이가 있는가 하면, 대놓고 차단하라고 요구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 인간관계를 논하는 사람이 퍽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이게 또 익숙해지다 보니 질투를 안 하면 셈이 났다. 그만큼 어렸다.


그러다 나이를 먹고, 어느 정도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나한테는 아주 가까운 이성 친구가 있다. 하루에 몇 시간이고 통화를 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친구다. 한때는 이성 친구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이런 친구를 사귀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이성 친구가 되는 조건이랄까?


첫 번째, 동성 친구보다 막대한 시간이 필요하다. 단순히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지속해서 연락하는 '기간'이 어느 정도는 꼭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이 친구가 익숙해질 때까지 정신을 잘 부여잡고 허튼짓을 하지 않는 다면 우선 가능성이 있다.


두 번째, 서로 흑심이 없어야 한다. (혹은 그 흑심을 품기 전에 이미 '친구'로 낙인찍혀야 한다) 나와 내 친구는 서로 전혀 다른 이성 취향을 가지고 있었고, 이성으로 보는 일은 잘 없었다. 물론 그래도 같이 있다 보면 종종 딴마음을 품게 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는 그러기에 이미 너무 친해져 버렸다. 이렇게 친한 친구를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 허튼짓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첫눈에 이성적 호감이 생기지 않을 만큼 서로 취향이 맞지 않아야 한다.


세 번째, 이성 친구의 연애를 존중해야 한다. 내가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을 무렵, 우리는 서로의 연인을 존중하지 않았다. 연인이 있음에도 평소와 똑같이 자주 연락하고, 평소와 똑같이 자주 만났다. 결국, 서로 아무 일도 없다는 우리의 주장을 뒤로하고, 연애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모든 사람은 처음에 '친구? 괜찮지. 난 이해할 수 있어!'라고 말한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절대 이해 못 한다. 이성이 보기에 이성은 이성일 뿐이다. 우리는 한 번씩 이런 이유로 연인과 헤어졌고, 그 후 연인이 생기면 우리의 관계를 구태여 설명하거나 말하지 않았다. 소개하지도 않았고, 서로 연인과 있을 시간에는 구태여 연락하지 않았다. 부딪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요하다면 일 년 넘게 연락을 안 하기도 했다. 우리는 개의치 않았다. 언제 다시 연락해도 전과 같은 '친구'라는걸 알았으니까. 연인에게 괜한 질투를 살만한 모든 행동은 안 하는 것이 좋다. 이게 안 된다면 진정한 이성 친구는 사귀기 어렵다. 



이렇게 어느 정도 스스로 가치가 선 다음에도 간혹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바로, 새로운 이성 친구를 사귀는 시점이다. 특히 한참 친해져 짓궂은 장난을 치게 될 때쯤에는 나도 모르게 경계심이 피어오른다. 이 친구를 의심하는 게 아니라, 선을 넘을 만한 어떤 씨앗도 만들지 않는 편이 이 친구와 '친구'가 될 수 있는 길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이게 참 애매하다. 괜히 확 벽을 쳤다가는 어색해질 수 있고, 일일이 설명하자니 구차하고, 장난을 계속 치자니 불안하다. 


얼마나 더 시간이 지나야 아무 생각 없이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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