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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꿀벌 Dec 23. 2020

게으름은 어디에서 오는가


요즘 나는 인생의 권태기에 있다.


인생에 권태기라는 말을 대체 누가 처음 만들었을까.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기가 막히게 잘 만들었다. 몇 주 전부터 언니가 틈만 나면 '나 인생의 권태기 같아'라는 말을 했었다. 그때 까지만 해도 무슨 인생이 권태기가 있냐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난 지금, 내가 딱 그 인생의 권태기에 있는 기분이다. 





권태기를 느끼는 순간


물론 인생의 권태기라 느끼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귀국한 뒤로 이제 반년이 좀 지났는데, 그동안 내게는 많은 일이 있었다. 만약 정말 인생이 절대자(기독교)나 혹은 과거의 나(불교)에 의해 계획된 거라면 나의 인생은 참 꼬불꼬불 지루하지 않게 설계해 두었다. 사람에게는 언제나 많은 사건사고가 일어나는데, 그 사건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백만가지라고 한다면, 아마 '첫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이른 바 시발점에서 한다/안 한다의 결정으로 99만 9천 9백 99개의 가능성이 사라지는 게 아닐까? 그런 부질없는 생각을 하며 조금 지루할 만하면 이런저런 사건이 벌어지는 기연 같은 우연 같은 지난 시간을 주마등처럼 흘려보낸다. 


문득 권태기가 아닐까 느끼는 건, 내가 너무 게을러졌음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그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코로나가 한몫을 하여, 한 달 남짓 다니던 필라테스가 코로나 2.5단계에 돌입하며 할 수 되었고, 그럼 그만큼 늘어난 여유분의 시간이 생겨야 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새로운 일정이생기며 나의 시간은 턱없이 부족해졌다. 고, 핑계를 대고 싶다. 

나는 인생에서 꼭 하는 일들이 정해져 있는데, 첫째는 책 읽기, 둘째는 글쓰기, 셋째는 공부하기다. 이 중 요즘 전혀 하지 않는 것이 바로 글쓰기, 그리고 공부하기다. 결국 책만 읽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다른 분야의 공부를 하느라 바쁜 것도 있지만 (일주일에 한두 권의 관련 책을 읽고 북클럽에 참가하고, 스터디를 위한 미팅에 참석한다.)본래 풀타임 일을 하면서도 늘 했던 저 일들을 몇 주 째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스스로 느끼는 작은 충격이었다. 

아, 내가 이렇게 게으르구나. 느끼는 순간이다. 그러면서도 막상 이렇게 짬이 나면 글을 쓰기보다 아무 생각 없이 노래나 들으며 쉬기를 선택한다. 티비는 안본지 오래다. 남들보다 게으르게 사는 것 같은데, 남들보다 시간이 없다. 바쁘지 않은데 바쁘다. 뭐가 문제일까?





권태기의 이유


내 나름대로 내가 게을러진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우선 첫째로, 새롭게 알아보고 있는 분야가 꽤 흥미로운 데다, 초기에 요구하는 공부와 모임이 많아 시간을 많이 쏟고 있다는 점이다. 이 일을 시작한 한 달 남짓의 기간 동안 본업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물론 자투리 시간은 있었지만, 이미 공부와 외출로 심신이 지친 터라 음악이나 들으며, 혹은 잠을 청하며 쉬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내버려 둔 나의 부업들이 슬슬 걱정되기 시작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두 번째로, 건강에 문제다. 쉽게 피로해지거나 체력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은 바이오리듬이 깨지기 때문이다. 잦은 외출도 문제지만 중간중간 미리 계획했던 여행이나 모임이 겹치면서 하루에 4~5시간만 자고 기본 생활을 소화해야 하는 일정이 종종 발생했고, 그 피로는 실로 막대했다. 아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나의 몸은 영양소를 제대로 흡수하고 전달하지 못해, 가뜩이나 필라테스를 쉬며 긴장이 풀어졌을 근육에 단백질의 결핍마저 오게 될 지경이다. 종합 비타민과 식물성 단백질을 챙겨 먹으며 괜찮을 거라는 마음의 안정을 구하지만 기본을 지키지 못하면 보충제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기운이 없는 건 당연하다.


세 번째로, 곧 끝날꺼라 믿기 때문이다. 흔히 낙천적이라고 말하는데, 나는 이 게으름의 시기가 곧 지나가리라 믿는다. 나는 이렇게 계속 살 사람이 아니라는 미래에 나에 대한 믿음이다. 물론 그 믿음이 흔들리며 지금의 위기감이 찾아왔고, 그래서 이렇게 다시 글을 쓰고 있으니, 그리 틀린 믿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언제나 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내가 지키는 일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할 수 있고, 반대로 언제든 그만 둘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우선 켜고,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공부할 적에 '책상에 앉는 게 반이다.'라는 말이 있다. 글을 쓰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다 마찬가지다 우선 시작을 하는 것. 10분이든 5분이든 그 시간에 바로 일단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단 시작하면 지금까지 한 만큼을 잃고 싶지 않아서라도 웬만하면 끝을 보게 되어 있다. 


하지만 반대로, 시작을 안 하면 영영 안 하는 것이라 말하면서 결국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모든 것은 지금 해야 한다. 내 경험상, 불안이든 기쁨이든 기회든 실패든 우리의 무의식이 주는 감각은 대부분의 경우 꽤 예리했고, 그 신호가 게으름에 경고를 보낸다면 지금이 의식적으로 부지런을 떨어야 할 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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