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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꿀벌 Jul 12. 2021

외국에 나가면 뭔가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을 것 같지

너도 올래?




멜버른에 유학하던 시절, 방학이 오면 일 년에 한 번 정도 한국을 방문했다. 홀로 유학을 떠나 이년 만에 한국에 방문했을 때를 잊을 수 없다. 그 알 수 없는 기시감. 분명 내 나라에 돌아왔는데, 외국을 방문한 듯한 느낌. 익숙한 풍경이 주는 낯섦. 이걸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꼭 십 년 만에 다시 만난 애인 같은 느낌이다. 내가 아는 모습 그대로인데, 같은 사람인데 같은 사람이 아니고 뭐 그런 기분이랄까.

그렇다고 호주가 내 나라 같은 건 또 아니다. 익숙하고 기시감도 없지만, 여전히 ‘외국’이라는 느낌을 지워버릴 수 없었다. 언젠가 떠나야 하는 나라. 그런 인식이 어딘가에 깊이 남아 있는 탓이다. 그래서였을까. 늘 설명하기 어려운 외로움이 있었다. 향수라기보다 가족과 친구들과 떨어져 있는 데에서 오는, 말 그대로 적적함에서 오는 외로움이다. 적적하다니. 늙은이 같다.



유학 후 두 번째 한국을 방문했을 때였던 것 같다. 당시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십년지기 친구가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고려한다는 말했을 때, 나는 무척 기뻐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해 주겠다 약속했다.


“어차피 내가 시티에 사니까, 자리 잡을 때까지 우리 집에서 머물면 돼. 뭘 해보고 싶어? 영어만 할 줄 알면 사는 건 크게 지장 없을 거야! 일도 구할 수 있고. 졸업하고 나면 나오기 더 힘들어지니까 이 기회에 나와봐!”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물며 친구가 이미 살고 있으니, 길에 나앉을 걱정을 해야 했던 나와 달리 안정적으로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친구가 호주 땅을 밟은 지 반년 만에 다시 친구가 한국으로 돌아갈 때, 나는 내가 퍽 안일한 생각을 했음을 알았다.






특별한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녀의 기대와 현실이 많이 달랐을 뿐이다. 처음 호주에 도착한 그녀는 당장 어학교(language school)를 다니기 시작했다. 두어 달 어학교를 다니며 각지에서 온 친구들을 만나고, 영국인 강사와 친해질 수 있었다. 어학교를 마칠 때쯤, 그녀는 본격적으로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녀에게는 일자리를 찾는 큰 기준이 있었다. 호주에 온 만큼 외국인이 가득한 환경에서 일하는 것. 하지만 좀처럼 일자리가 잘 구해지지 않자, 그녀는 큰 상실감에 빠졌다.

그렇게 이 주 정도 흘렀을 때, 우리는 시티에 있는 한 버거집에서 영국 강사를 만났다. 수제 버거를 파는 체인점인 betty’s burger 였다. 긴 줄을 기다려 들어선 그곳은 온통 분홍빛으로 가득해 꼭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세트장 같았다. 반갑게 인사를 하는 그에게 우리는 안부를 나누며 자연스레 그녀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I have some friends looking for a person helping him in fish market. It is nothing difficult but

can be a little bit hard for woman. Do you want a try? (내 친구 중에 생선마켓에서 그를 도울

사람을 찾는 녀석이 있어. 어려운 건 없지만 조금 힘들 수도 있는데, 한번 해볼래?)”


그렇게 그녀는 정말 한국인을 찾을 수 없는, 사우스 멜버른(South Melbourne)에 열리는 마켓에 한 생선 코너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일하며 그녀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오면 신나서 이야기하고는 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 날 집에 돌아온 그녀는 풀이 죽은 모습으로 말했다.


“나 아무래도 잘린 것 같아.”


왜? 하고 물었지만, 그녀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뭔가 잘못한 걸까? 여자가 하기에 너무 힘든 일이었나? 여러 가지 의문이 들었지만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친구는 곧 다시 구직을 시도했지만 이렇다 할 소식은 없었다. 보다 못한 나는 당시 일하던 카페 사장에게, 내 친구가 일을 구하고 있는데 한번 데려와도 괜찮을까? 하고 요청했다. 당시 나를 퍽 마음에 들어 했던 사장은 흔쾌히 허락했고, 그녀를 고용했다. 당시 나는 한 이태리 체인점에서 일하고 있었다. 시티에서 조금 거리가 있었지만 한국인은 나 하나밖에 없는, 그녀가 원하던 완벽한 외국인 환경의 일자리였다. 그녀는 올 라운더(all-rounder)로 일하며 서빙도 하고 주문을 받고, 가끔은 커피도 만들었다. 하지만 이 또한 오래가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곧 그 이유를 알았다.

그녀가 일하지 몇 주가 지났을 때, 사장이 내게 와 말했다.


“Okay, there is one problem. She is not smile. (한 가지 문제가 있어. 네 친구는 웃지를 않아)”


나는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What? (뭐라고?) 그러자 그는 다시 말했다.


“Your friend. She is always upset! (네 친구 말이야. 항상 화가 나 있어)”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무관심한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었다. 아, 이거였나. 뭐 그런 것까지 지적하냐 싶을 수도 있겠지만, 서비스업에서 미소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 기본 중에 기본이었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아니, 웃기지 않은데, 왜 웃어?”


어?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 시절 이미 자본주의의 노예로 거듭난 나와는 달리 그녀는 일하는 대부분의 시간, 무표정을 유지했던 것이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방긋방긋 잘 웃는 직원을 좋아한다.


웃음의 영향력은 실로 굉장하다. 친절하다는 인상을 줌과 동시에 매장에 밝은 분위기를 만든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행복한 사람은 주변을 행복하게 만든다. 나를 미소로 맞아주는 밝은 식당과 무표정으로 주문만 받는 그런 식당. 어디를 들어가겠는가?


결국 그 일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갔다.





유학과 외국 생활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유학을 떠나면 뭔가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을 것 같고, 외국에 나가면 내가 지금껏 안고 있는 고민으로부터 해방되지 않을까 막연한 희망을 품는 것 같다.

희망을 갖는 건 좋다. 하지만 대가 없이 얻어지는 건 없다는 걸 반드시 유념해야 한다. 분명 외국에는 한국에 없는 새로운 기회와 배움이 가득하다. 하지만 반드시 그에 따른 시련과 도전이 따른다. 도전 없이 어찌 보상이 있겠는가.


내가 옆에서 고전하는 친구를 지켜보며 이해하지 못했던 게 하나 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조금 돌아다니고 집에 머물거나, 그저 나를 기다리거나, 왜 웃어야 하냐며 그 질문 자체에 의문을 품는 모습이 내게는 너무 의아했다. 이 모든 건 강요할 수 없다. 그러나, 간절한 사람은 의문조차 품지 않고 그들이 요구하는 모든 걸, 미소를, 노력을, 자기 계발을 할 것이다. 간절하기에, 이걸 얻기 위해서라면 미소를 띠는 것쯤, 기술을 익히는 것쯤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마치 내가 미소를 띠며 서비스를 하는 것에 단 한 순간도 의문도 품지 않았던 것처럼.


따라가고픈 사람들, 성공한 사람들, 이미 자리를 잡고 그 길을 모두 걸은 사람들의 삶은 언제나 멋지고 포장된 형태로 대중에게 비친다. 어릴 때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학생을 마냥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어릴 때 그가 받았을 인종차별과 원어민 사이에서 무시당하지 않으려 이를 악물고 노력했던 어린 시절의 고난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 역시 직접 겪어 보기 전까지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꿈을 쫓는 사람들을 응원한다. 지금 가진 것을 내려놓는 것도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도 당신의 삶에 그 어떤 특별한 경험을 남길 것만은 확실하다. 다만 겨우 한 걸음을 딛고, 환상과 다르다고 포기하는 것은 도전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했으면 한다. 물러설 곳이 있고, 보험이 있더라도 내가 단 한순간도 포기하지 않을 만큼 할 수 있는 모든 도전을 다 하고 돌아오길 바란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라지 않던가. 아무것도 안 베어도 좋으니, 적어도 더는 휘두를 방법이 없을 만큼, 알이 배겨, 더이상 칼을 들 힘이 없을 만큼 휘둘러 봐야 한다. 그래야 빈손으로 돌아오더라도, 나는 이것까지 해봤어. 아무 후회도 미련도 없어. 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노력과 도전의 과정들은 강단과 자존감의 뼈대를 만든다. 최선을 다한 사람은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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