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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꿀벌 Oct 20. 2021

호주 회계사의 연봉 계산법

같은 연봉이라고 다 같은 금액을 받는게 아니다.


어카운팅 펌(Accounting Firm)에서 근무를 시작하고 한동안은 연수를 받으며 간단한 일만 맡아서 했다. 서류 보관, 정리, 회사 등록과 같은 간단한 업무부터 매 분기 찾아오는 각 기업의 세금 신고, 연금 신고, 보험 갱신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어서 법률 사무소와 은행과 함께 처리하는 회사 개설과 관련된 업무를 배웠다. 호주에 회계연도가 유월에 마감되는 탓에, 오월에 입사한 나는 비교적 빠르게 업무를 배울 수 있었다. 회계연도가 마감되는 기간은 고양이의 손이라도 빌리고 싶을 만큼 업무량이 많다. 나로서는 일을 빨리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야근을 해야 했다. 


"무리하지 말아요. 그러면 빨리 지쳐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말의 의미를 바로 알았다. 하루, 이틀, 일주일 바짝 한다고 끝나지 않는 업무. 백 미터 달리기를 생각하고 전신전력을 다하자 생각했는데, 백 미터 뒤에 십 킬로미터의 거리를 더 가야하는 마라톤 경주와 같았다. 일주일이 지나자 피로가 누적되고 잠이 부족해 스스로 조금씩 피폐해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은 나로서는 무리하지 않기가 더 어려웠다. 잘 하고 싶다는 마음보다도 '민폐는 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으로 늘 긴장하고 있는 상태였다. 기 기간은 경력이 쌓이고 이직을 하면서 점점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입사 후 한달 정도는 이 '초기 긴장 상태'가 지속되는 것 같다. 긴장한 채 하루 열 시간 동안 서류와 컴퓨터를 들여다보면 몸도 마음도 지치기 마련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월급(月給)이 아닌 주급(週給)을 받는다는 것이다. 바쁜 와중에도 이 주에 한 번씩 통장에 꽂히는 주급을 보면 일할 맛이 났다. 월급을 두 번에 나눠 받으면 너무 적어서 감흥이 없지 않을까? 싶을 수 있다. 내가 이 주간 일하고 받던 금액은 약 백팔십만 원이었다. 주에 한 번이든 이 주에 한 번이든 백만 원을 넘게 받으면 충분히 보상받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일하는 동안 먹는 것도, 늦은 시간에 귀가하며 쓰는 택시비도 모두 회사에서 지급되고, 일한 만큼 연장 근무 시간에 대한 수당이 지급되었다. 집에 빨리 가고 싶은 마음은 모두가 마찬가지였지만, 나로서는 퍽 나쁘지 않았다. 일한 만큼 받는 돈이 늘어나니, 이럴 때면 조금 과장해서 월급을 두 번 받는 기분이었다.


후에 한국에 살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호주와 한국의 연봉 계산법은 많이 달랐다. 한국에 와서 깜짝 놀란 점 중 하나는 직원이 자신의 연금의 일부를 월급에서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호주에서 연봉을 제시할 때는 보통 '기본급'을 기본으로 한다. 보통 채용공고를 살펴보면 '$00,000+Super' 이라는 표현을 볼 수 있다. 앞의 금액은 기본급으로 계산된 월급이며, 뒤에 붙은 Super는 'Superannuation'의 줄임말이다. 연금은 별도라는 표시다. 


나라에서 지정한 회계 대졸자의 연봉은 기본 시만 오천 불, 한국 돈으로 약 사천만 원 정도의 연봉을 받는다. 이렇게 보면 사실 한국의 연봉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 보인다. 한국의 연봉제를 모를 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저 사만 오천 불은 연장근무 수당이나 성과급, 교통비 및 기타 복리후생, 사대보험, 연금 등이 포함되지 않은, 순수한 기본급을 말한다. 주 38시간 근무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돈이다. 이 외에 회사에 종사하며 들어야 하는 각종 보험과 연금(연봉의 약 10%)은 모두 회사에서 전액 부담한다. 연금은 호주를 떠나거나, 퇴직 후에 돌려받을 수 있다. 나 역시 돌아올 적에 그간 회사에서 차곡차곡 쌓아준 연금 약 칠백만 원가량을 전액 환급받았다. 환급을 받으면서는 꽁돈이 생긴 것 같아 신이 났다. 하지만 동시에 머리에 스치는 생각, 저 금액의 열 배는 더 벌었다는 말인데, 그 돈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건 호주에서 책정한 기본연봉 수준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내가 다닌 회사는 대기업도 아니거니와 연봉이나 복지가 뛰어나게 좋은 회사도 아니었다. 그저 아주 평범한 회계사무소일 뿐이었다. 당시에 내가 굉장히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거나, 회계사 자격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호주라는 나라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글로벌(Global)을 추구하는 회사는 국경을 초월하는 도전정신을 추구한다. 벌써 꽤 오래 지속되어 온, 사회적 흐름이다. 하물며 내 생의 도전을 국경이 막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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