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하고 살지?
스물 아홉이다.
1월 2일 저녁, 방에서 뒹굴거리다 번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벌써 스물 아홉이라니! 고등학교를 졸업한게 엊그제 같지는 않지만 (양심이 있지 엊그제는 아니다) 그래도 대학 좀 다니고 취준 좀 하고 사회에 좀 나와보나 했더니 스물 아홉이다. 아니, 원래 시간이 이렇게 막 가는 거였나? 한때는 영원할 것 같았던 젊음이,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청춘으로 보인다. 젠장.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지.
생각해보면 나는 스물 여덜의 연말, 그러니까 며칠 전 까지만해도 별 생각이 없었다. 12월 30일부터 연휴를 만끽하기 위해 연말 파티랍시고 친구들과 와인을 마시고 뻗어버렸다. 왜 30일이냐고? 31일은 남자친구랑 보내야 하니까. 그렇게 연말 정산이 끝나면 신년은 또 부모님이랑 보내야하니 모든 행사가 끝나고 혼자 사는 집에 돌아온게 1월 2일. 그러니까 지금이란 말이다.
스물 아홉.
열 아홉에는 얼른 한 살 더 먹고 싶었는데. 고등학교 때 부터였나. 시간이 너무 안가서 이러다 평생 청소년으로 머무르는 건 아닌지 의아할 만큼, 영겁의 시간을 사는 것 처럼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작년은, 작년은 정말 아무런 기억이 없다. 벌써 치매인가? 분명 일 년을 살았는데 기억나는건 마디마디 큼직한 몇 가지 사건 뿐이다. 이직했고, 이사했고, 남자친구랑 놀았고.. 끝이다.
아니, 이렇게 아무것도 안하고 살았다니. 언제부터 이렇게 나태해졌을까? 나름대로 열심히 산 것 같은데, 돌이켜보면 열심히 살았나?하는 물음표를 뗄 수가 없다. 그래.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살아보자. 근데 어떻게? 뭘 열심히 하면 되는거지?
생각해보면 어릴 때는 참 편했다. 학생은 공부만 하면 된다고 알아서 목표도 방향도 다 주어지고, 자격증이든 뭐든 뭘 해야하는지 적혀 있는 뽑기중 선택해서 그 길을 가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졸업하고 취직하고 집에서도 자립해 돈을 벌기 시작하니, 아무도 내게 무얼 하라 말하지 않는다. 나름대로 경력에 도움이 될만한 자격증, 책읽기 자기개발 같은 것들을 한다하지만 솔직히 뭐가 그리 도움이 되는지 잘 모르겠다.
아니, 이게 나중에 정말 내게 중요한 일이기나 할까? 마지막 이십대에는 뭔가 특별한, 중요한 걸 해야하지 않을까? 이십대가 끝나기 전에 뭔가 이뤄야하는게 아닐까?
이튿날, 회사에 출근해 대리에게 묻는다. 저 벌써 스물 아홉이에요. 뭘 해야 할까요? 그러자 대리는 자기도 그 때 생각이 참 많았다고 대답한다. 마지막 이십대라는 생각에 뭔가 우울하고 그랬다고. 그래서 스물아홉에 뭐하셨어요? 대리는 달력을 뒤져보더니 말했다. 음, 아무것도 안한 것 같은데, 진짜 아무것도 안했네요. 근데 딱 지나고 서른 되면 그냥 다시 아무렇지도 않아져요.
아니, 아닌데. 그런게 아니라. 서른이 되기 전에 뭔가 하고 싶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어릴적 상상하던 스물 아홉의 나는 이런게 아니었던 것 같단 말이지. 하지만 뭘 어떻게 해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