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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꿀벌 Jan 26. 2022

그렇게 간단하면 네가 하지.

스물 아홉 회사생활


아침 여덟 시. 오늘은 회사에 일찍 도착할 것 같다. 편의점에서 점심에 먹을 샐러드를 사서 사무실로 향한다. 새해를 맞아 다이어트 중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과장님 부장님이 앉아있다. 대체 언제 오신 거지? 평소보다 이십 분이나 일찍 왔거늘, 언제 오든 한결같은 모습으로 컴퓨터를 바라보고 있다. 지나가는 척 하며 슬쩍 모니터를 훔쳐본다. 딴짓이라도 하고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는데. 단순히 업무가 많으신 모양이다. 


겉옷을 걸고 탕비실로 향한다.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아침에 먹을 쿠키를 챙긴다. 다이어트 중이라도 다섯 시 전 까지 먹고 싶은 걸 먹는다. 점심은 예외다. 점심을 너무 든든히 먹어버리면 다이어트를 하는 의미가 없다. 


출근 시간이 다가오니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온다. 요즘은 다들 이시간에 온다. 딱 시간에 맞춰 도착한 직원들이 하나 둘 탕비실에서 커피를 내린다. 일찌감치 쿠키까지 챙겨온 나는 자리에 앉아 웹 서핑을 하는 중이다. 상관없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모두가 시간 맞춰 오는 덕에 조금만 일찍 와도 성실한 직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는 것에 비해 많은 득을 보는 세상이다. 


정해진 세미나를 수강하고, 자료를 만들어 제출하고, 어제 못한 일을 처리하고, 메일을 모두 송부 한다. 회사 생활 이 년차, 사회 생활 N 년차. 이정도는 아무 압박감도 없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할 일을 다 마친 나에게 남겨진 중대한 일. 어떻게 아무 일도 안하면서 일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가. 여기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절대 루팡을 자처하는 건 아니지만 일을 더 달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일이 있으면 어련히 알아서 주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루팡을 하자니 눈치가 보인다. 주위를 둘러본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컴퓨터를 보며 자판을 치고, 딸각딸각 마우스를 클릭하고, 전화를 받는다. 대체 무슨 할 일이 저렇게 많을까? 사회 생활 N 년차인 나는 알고 있다. 보나마나 일하고 있는 사람은 저 중에 반 밖에 안된다. 일과 딴짓을 섞어서 하는 것도 능력이다. 


어느 책에서 보니, 나도 모르게 다른 곳으로 시선이 가고 딴 짓을 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나도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그럼 적은 일도 늘려서 늘려서 할 수 있을 탠데. 절대 성실한 건 아닌데, 빨리 할 수 있는 일을 어떻게 늘려서 해야 할지 모르겠다. 덕분에 늘 일이 빨리 끝나고, 늘 시간이 남는다. 


처음에는 일을 더 받아서 했다. 한참 의욕이 넘치던 처음 몇 개월에는 말이다. 얼마가지 않아 매번 달라고 하는 것도 지치기 시작했다. 일을 더 달라고 하는 사람은 이 넓은 회사에 나밖에 없었다. 점점 귀찮아졌다. 이렇게 회사생활 권태기가 오는가! 아니다. 나는 열심히 하려고 했다. 일이 없는 건 내탓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나를 제대로 활용하는 것도 회사와 상사의 역할이 아닌가? 


그 때 상사가 나를 부른다. 새로운 일을 받았다. 아까까지 심심해 죽을 뻔 했는데 지금은 귀찮아 죽을 것 같다. 사람이란 얼마나 간사한가. 그래도 우리 상사는 괜찮은 편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특히 일을 받기 싫은 사람들이 있다. 본인은 아무것도 안하는 것 같은데 자기 자리에서 부르지도 않고 누구씨 이것좀 해줘요. 누구야, 이것 좀 해라. 이런식으로 지시하는 사람. 그러면서 꼭 '대충 보니까 이렇게 하면 될 것 같던데, 좀 해줘요'같은 말을 덧붙인다. 더 짜증난다. 그렇게 간단하면 네가 하지. 


반대로 일을 받아도 기분 좋은 사람이 있다. 따로 불러서 일을 제대로 설명해주고, '미안한데 이것 좀 해줄래요?' 이정도만 해도 기쁘게 할 수 있다. 어차피 회사에 있는 시간은 일을 하려고 있는 거니까. 게다가 어쩜 그렇게 일이 많고 바빠보이는지 뭐 하나라도 거들어주고 싶은 느낌이 팍팍든다. 같은 직급인데, 어쩜 이렇게 다를까? 역시 말은 예쁘게 하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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