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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꿀벌 Feb 01. 2022

언니는 ISTP다.

MBTI, 누가 만들었을까?

            

연휴다. 설이다. 구정이다. 한 달 사이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가 다시한번 쏟아져 나온다. 


그렇다. 한달이 지났다. 


스물아홉이 한 달 지났다. 이제 열한 달 남았다. 나의 마지막 이십대의 한 달 간, 나는 뭘 했을까? 곰곰히 생각해본다. 특별히 떠오르는 건 없다. 


"야, 설빔이야."


말과 함께 툭 던진 건 양말이다. 갈색양말. 올해는 설빔으로 양말을 선물하는 모양이다. 침대에 쌓여있는 양말이 보인다. 모두에게 돌릴 셈인가. 크리스마스 날 문 앞에 걸어놔야겠다. 


언니는 침대에 누워 MBTI특징을 읽고 있다. 언니는 ISTP다. 얼마 전에 유투브를 검색하고 깜짝 놀랐다. ISTP가 자주하는 열 가지 말 이라는 영상이 있었는데, 언니가 하는 말이랑 똑같았다. 관심없는 이야기에 영혼없이 반응하는 말투. 이상한 행동을 하면 '왜저래 - -'라는 표정으로 영혼없이 대답하는 것도 똑같다. 언니가 쓴 줄 알았다. 소름. 혈액형보다 잘 맞는 것 같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올려놓은 영상을 보는게 재밌다. 댓글도 재밌다. 세상에는 비슷한 사람들이 참 많다.


그 중에서 가장 웃긴건 ESTP다. 주변에 ESTP 있는 사람들은 알거다. 보고 있으면 웃기다. 유쾌하다. 세상 참 편하게 사는 구나 싶다. 멘탈이 말도 안되게 강하다. 그래서 너무 웃기다. 모든 고민이 하찮게 느껴진다. 이렇게 단순하게 사는 사람도 있는데. 처음 ESTP를 만나고 깜짝 놀랐다. 너무 특이해서. 유투브를 찾아보고 더 놀랐다. 이미지가 정말 말도 안되게 똑같아서. MBTI, 누가 만들었을까? 외로운 이 사회에 딱 어울리는 성격테스트다. 


핸드폰이 울린다. 메세지다. 아니나 다를까, 시스템 메시지다. 요즘은 모두 카톡으로 연락한다. 아니면 전화를 한다. 메시지를 사용하는 건, 업무, 광고, 모르는 사람이다. 최근에는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많이 걸려온다. 전화를 받으면 뜬금없이 이름을 밝히고 유세를 시작한다. 새로운 선거 전략인가보다. 내 개인 정보는 어디서 가져온 걸까? 불쾌할 필요는 없다. 이미 오래전에 전 세계에 퍼져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행히 털릴 만큼 대단한 것도 없다.


'강의가 오픈되었습니다....'


아, 회사에서 수강하는 연수 프로그램에서 온 알림이다. 2월의 강의가 오픈되었으니 제 때에 수강하라는. 시스템은 굉장하다. 휴일이 없다. 황금같은 연휴에도 꼬박꼬박 알람을 보낸다. 하지만 나는 들을 마음이 없다. 회사 연수 강의는 회사에서 합법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꿀같은 시간이다. 합법적 월급루팡의 순간이랄까. 그래도 결과적으로 업무에 도움이 되니, 웹서핑이나 하는 것 보다야 훨씬 양심적이다. (고 생각한다.)


이렇게 일만하다 끝나는 건가. 내 이십대. 다시 생각해본다. 한 달 동안 뭐했지? 

최근에 골프 레슨을 등록했다. 주변에서 다 하길래 궁금해서 한번 등록해 봤다. 회사에서도 가끔 라운딩을 가니 배워두면 좋다고 했다. 그림도 그린다. 하얀 벽지에 분위기를 좀 내고자 백드롭 페인팅을 취미삼아 하고 있다. 남자친구도 있다. 장거리가 된 탓에 한달에 한 번 정도 만난다. 뭐랄까. 불타오르던 이십대 초반과는 좀 다르다. 이제 서로가 없어도 아무 일 없이 잘 살거라는 것 정도는 안다. 그냥, 있는 편이 더 좋아서 유지하고 있다. 바람직하다.


나열하고 보니 생각보다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인생은 잘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이걸로 괜찮을까? 마지막 이십대에 뭔가, 특별한, 인상적인 기억을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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