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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꿀벌 Mar 04. 2022

화가 난다면 우물에서 나와야 한다.

한참 노래를 들으면 번역을 하던 중, 대리가 내게 말했다.


"지금 음악 듣는 거에요?"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대답했다. 네, 음악 듣고 있어요. 대리는 설마설마 했다며 어떻게 회사에서 이어폰을 꼽고 음악을 들을 수 있냐고 물었다.


"이미 다른 일이 없는 걸 사전에 물어서 다 확인했는데, 번역을 하며 음악을 듣는 게 왜 안돼죠?"


내가 대답했다. 음악을 듣냐고 물어보는 순간 의도는 알았다. 이 사람은 지금 나를 혼내고자 한다. 하지만 왜? 잘못이 있어야 혼나는데, 잘못한 일이 없었다.

내 업무에 지장을 준 적도, 노래가 너무 커서 피해가 가는 것도 아닌데, 그저 노래를 듣는 것 만으로 혼내려고 하는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내 분위기 조성 등을 위해 듣지 않기를 권고할 순 있겠지만, 잘못된 거라 말할 수 있을까? 이어폰을 끼던 드라마를 틀어놓던 자기 할 일 잘하고 소통에 문제 없으면 되는 것 아닌가. 


대리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그럼 그동안은 왜 안들었냐고 물었다. 나는 그동안도 들었다고 대답했다. 나는 어제도 들었고 그제도 들었다. 그저 오늘은 조금 신나는 노래를 들어서 내가 무심코 몸을 까딱까딱 움직여서 눈에 띄었을 뿐이다. 


"아무튼 우리 회사에서는 안돼요."


나는 네-. 하고 대답했다. 뭐 더 말해 무엇하랴. 

퇴사를 팔 일 앞둔 사람에게 굳이 이야기 하는 것도 이해가 안되지만, 전날 술퍼마시고 다음날 근무시간에 토하고 잠이나 자는 사람이 노래 좀 듣는다고 뭐라 하는 건 더욱 이해가 안된다. 


'저 사람에게 그런 말 할 자격이 있나?'


아쉽게도 그녀는 내 상사도 아니거니와 존경받는 선배도 아니었다. 허구헌날 지각하고, 술마시면 꼬장을 부리고 다음날 기억 안나요를 시전했으며, 근무시간에 토하고 잠자느라 못한 근무를 야근으로 대체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회사는 야근 수당을 지불했다. 


세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직종에 따라 회사에 따라 음악을 듣는 건 문제가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본이 되는 사람이 말을 해야 설득력이 있다. 아니면 말이라도 잘 하던가.

게다가 그녀는 이미 너무 많은 실수를 했다. 가만히 있는 나를 타겟으로 말하거나, 여우라느니 불륜이라느니 하는 근거없는 말을 술을 마시기만 하면 달고 살았다. 그녀는 회사에 있는 모두가 불만인 듯 했다. 그때마다 컴플렉스가 있겠거니, 삶이 고달파서 그러겠거니, 외로워서 그러겠거니, 자격지심이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어차피 상대해봐야 좋을 게 없으니까.


그런데 이제 곧 그만두는 마당에, 굳이 넘어갈 이유가 있을까?


이왕 이렇게 된거 허구헌날 하는 말도안되는 꼬장과 근무 시간에 잠자기 등과 함께 이어폰도 같이 회사 내규에 넣어달라고 건의라도 해야겠다. 무슨 초등학교 교칙 같다. 웃기다. 어차피 퇴사 직전 할 일도 없었던 나는 퇴근할 때 까지 이런 생각을 반복했다.



하지만 귀가 후, 나는 만사가 귀찮아 졌다. 어차피 만날 일도 없고, 내가 같이 일할 사람도 아닌데 굳이 내가 발벗고 나서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곳에 있는 모두가 그녀의 잘못된 행동을 보고 듣고, 알고 있었다. 내가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그녀는 알아서 자폭하는 중이다.


무엇보다, 귀찮아 졌다. 내 인생에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다는 말인가. 어차피 시간이 좀 지나면 이름도 기억못할 사람인데. 그저 내 생에 엑스트라C 같은 존재였다. 왜 그리 열을 냈을까? 어차피 그런 사람인걸 이미 알고 있었을 탠데. 


이유는 하나다. 내가 그곳에 있었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릴래도 퇴근할 때 까지 벗어날 수가 없으니까. 일도 없는데 음악도 못들으니 가만히 앉아 있어야 했다. 신종 고문인가? 


그러다 그 갑갑한 우물을 나온 순간, 내 정신도 함께 자유를 얻고 정상적인 사고를 시작한 것이다. 


화가 난다면 일단 우물에서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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