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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꿀벌 Sep 19. 2020

감정을 떠나는 여행

다시 돌아보는 시간




  감정은 시도 때도 없이 불쑥 찾아오고는 한다. 어느 날 친구가 오랜만에 지방에서 올라왔다.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우리는 스스럼없이 놀고 잘 가라며 인사를 나누었다. 다음 날, 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잘 도착해서 연락하나 보다 싶어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친구는 지금 통화할 수 있는지 묻고는 뜸을 들이다 이렇게 말했다. 


 “정말 미안한데, 우리 모르는 사이로 지내면 안 될까? 처음부터 만난 적도 없던 것처럼 말이야.”


 장난이라는 생각이 들 수 없을 만큼 진지하게 말을 꺼낸 친구에게, 화가 나기보다 당황스러웠다. 놀라움을 감추며 이유를 물었다.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말실수라도 한 건 아닐까? 친구는 내게는 잘못이 없다며, 본인만의 이유라고 했다. 내가 곁에 있으면 자꾸만 자신에게 엄격해진다는 것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할 것만 같은 의무감이 들어 부담스럽다고 했다. 왜 그게 연을 끊는 이유가 되는 걸까. 아무런 다툼도 싸움도 없었다. 이 연락은 서운함을 전하려 하는 것도 화를 내는 것도 아니었다. 더는 관계를 이어갈 의사가 없다는 부탁이자 통보였다.

 4개월 만에 본 친구였다. 가끔 연락하는, 외국에서 만나 잠깐 같은 동네에 살던, 죽고 못 사는 사이도 아니고, 연인도 아니지만, 타지에서 말이 잘 통해 심심할 때마다 같이 놀고는 했던 친구. 우리가 생각 없이 놀던 그때, 내가 놓친 무슨 신호가 있었던 건 아닐까.

 함께 했던 기억들이 조각조각 떠올라 목을 매웠다. 아무 말 않는 내게, 그는 한참을 이야기했다.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내게 하는 그 모든 말들은 일방적으로 연을 끊는 것에 대한 미안함을 담고 있었다. 혹시나 내가 나도 모르게 어떤 형태로든 부담이 되었던 걸까. 무엇이 문제였던 걸까. 머릿속으로 어떻게든 스스로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으려 노력했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연이 사라질 때, 이유 같은 건 그리 중요치 않았다. 사람의 인연은 결국 상호의 의지로 이어가는 것이다. 이제와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연인과 헤어지는 것도 아닌데 끊어지는 연이 슬퍼 눈물이 흘렀다. 

 결국 간신히 알겠다고 대답했고, 전화는 끊겼다. 친구에게 건강히 잘 지내라고, 그간 고마웠다는 문자를 남겼다. 언제든 생각이 바뀌면 연락하라고 말할까도 생각했지만, 그것마저 부담이 될까 싶어 손끝에 담아두었다. 아침까지 평온하고 조금은 들 떠 있던 감정은 그사이 이유 모를 무게와 함께 가라앉아 있었다. 감정은 이성을 따라가지 못했다. 


 놀란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며 홍차를 마셨다. 조용한 글귀를 읽었다.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었지만 얼굴이 엉망이었다. 얼굴에 울음기가 사라진 걸 확인하고는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주문하고 앉아 글을 썼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이 카페는 두 벽면이 유리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유리 벽면에서 크게 ‘always, consistent’라고 적혀있었고, 새하얀 얇은 커튼 사이로 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항상성’이라는 말이 있다. 지속해서 언제나 그 상태를 유지한다는 이 말은, 사람을 안심시키는 힘이 있다. 흔히 법이나 물리학에서 많이 쓰이는 말이지만 우리의 삶에도 적용된다. 사람은 어느 정도 관계를 형성하고 나면 나도 모르게 이 관계가 크게 바뀌지 않을 거라 믿는다. 특히 그 관계가 사랑 같은 너무 뜨겁고 가변적인 관계가 아니라면 더욱더 그렇다. 내 삶에 한 부분을 이루지만 다른 부분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 관계는 그들에게도 내게도 굳이 바꿀 필요성을 느끼게 하지 않는다. 이렇게 방심한 틈에 공격을 받으면 항상성을 믿고 안주했던 마음은 무너져 내린다. 영원할 거라 믿은 건 아니지만 앞으로 한동안은 자연스럽게 변함없이 유지되리라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무너진 감정을 진정시키는 가장 빠르고 좋은 방법은 감정이 발발한 환경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그곳이 어디든 가능하면 최대한 빨리, 어디든지 말이다. 


 유학하던 시절, 기말고사를 앞두고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생계를 위해 파트타임으로 계속 일을 해야 했고, 낙제하지 않기 위해 공부를 해야 했다. 모든 시험이 에세이로 이루어지는 대학 기말 평가는 운에 점수를 맡기기 어려운 시험이었다. 그렇게 몇 주 동안 학교, 일, 집을 반복하며 잠들 때까지 공부에 매달렸다. 결국 시험날이 다가왔고, 기말고사가 끝났다. 깊게 몰두해서 노력했던 일이 끝나고 나면 해방감보다 허탈한 기분이 밀려온다. 수업이 끝나면 그날은 해방감이 느껴지지만, 수능이 끝나면 무언가 텅 빈 것 같이 느껴지는 것과 같은 기분이랄까. 공허한 기분에서 벗어나고자 작은 가방을 꾸려 지방으로 훌쩍 여행을 떠났다. 


 기차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빅토리아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라고 알려진 질롱(Geelong) 이었다. 아무 계획도 도착한 곳에서 제일 먼저 도서관으로 향했다. 당시 한참 도서관에 빠져 있던 터라 어디를 가든 도서관부터 들렸다. 사실 도서관은 여행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 중 하나다. 큰 도시에는 거대하고 멋진 도서관이 있고, 작은 도시에는 그들만의 감성을 담은 아기자기한 도서관이 있다. 게다가 무료 인터넷과 각종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여행에 있어 꽤 유용한 곳이다. 

 도서관을 한참 둘러보다 비치된 빈백에 기대어 잠깐 쉬었다. 조용한 도서관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마음이 편해진다. 도서관을 나오며 마주친 사람에게 이곳에서 무얼 하면 좋을지 물었다. 인심 좋은 마을 사람들은 보타닉 가든(Botanic Gardens)과 비치를 추천해 주었다. 멜버른이 그러하듯 질롱도 그리 넓지 않아 뚜벅이인 나도 하루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었다. 그리 복잡스럽지도, 한산하지도 않은 동네를 거닐며 산책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생전 처음 보는 내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아시아에 놀러 갔던 이야기, 키우는 강아지 이야기, 부자가 함께 놀러 온 이야기.. 마치 옆집 사람에게 말하듯 편안해 보였다. 덕분에 나는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시험이 끝나서 기분전환 겸 놀러 왔다는 한 줄이면 내 설명은 족했다. 종종 이야기하다 명함을 주거나 자신의 빛나는 커리어를 말하며 학생인 나를 격려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마도 언젠가 비슷한 경험을 한 자신의 모습을 겹쳐 보는 것이리라 짐작했다. 

 돌아오는 기차에서는 앞에 앉아 있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멜버른 대학교에 다니는 그도 시험이 끝나 기분전환 겸 놀러 왔다고 했다. 도착할 때까지 한참 이야기를 나눈 뒤, 연락처를 교환하고 헤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집으로 돌아와 지친 몸을 이끌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무언가 허탈했던 기분은 온데간데없고 여행의 잔상과 노곤함의 무게만이 남아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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