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호구는 아닙니다만

내향인의 부탁

by 조이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 것은 어릴 때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일이다. 태권도 학원을 다녀왔고 엄마는 잠깐 저녁 식사 준비를 위해 장 보러 가셨을 때였다.


"따르릉-"

집 전화기가 울렸다.


"여보세요."

"어, OO이니?"


은근히 내 친구이기를 바랐지만, 수화기 너머에서는 한 아주머니가 다짜고짜 내 이름을 댔다.


"네. 맞는데요.."

뭔가 이상함을 느끼며 나는 대답했다.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 아주머니는 나를 무섭게 쏘아붙였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나 민호 엄마다. 네가 우리 아들을 놀리고 못됐게 굴었다면서? 우리 민호가 얼마나 애가 여리고 착한데. 그런 애를 두고 네가 감히? 어디서 못된 걸 배워가지고는. 네가 공부 좀 한다고 뭐라도 되는 줄 아니? 어디서 남의 귀한 아들한테 쪼그만 게 - "


아니 이게 무슨 소리 신지?

민호는 내 짝꿍이었다.

내가 학교를 이래 봬도 5년째 다닌 짬이 있는데. 그동안 한 번도 친구관계에서 트러블이 없었던 나였다.


아주머니는 말을 그만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계속 나를 몰아붙였고 나는 결국 민호에게 한 번 "에이 바보야~"라고 놀렸던 것을 기억해냈다. 12살짜리 어린아이에게 어른이 욕을 하며 가슴에 비수를 꽂아댔다. 그러고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리는 것이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나는 결국 전화기를 붙잡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집에 들어온 엄마는 내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라셨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어?"


나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더듬더듬 자초지종을 말했다.

내 생각에 나는 민호에게 크게 상처를 줄만한 일을 한 적이 없는데, 바보라고 한 거 너무 미안하고 잘못했다고 울면서 말했다.


엄마는 분노하셨다.

하지만 나중에 내게 말하기를, "그 사람이랑 똑같은 사람이 되기 싫어서" 꾹 참았다고 한다.

대신 롤케이크를 사들고 그 집에 방문하셨다. 그 아주머니에게 침착하게 이야기하고 좋게 좋게 풀었다고 당시엔 내게 별 거 아니라는 듯 말씀하셨다.


최근에서야 엄마는

"아니, 다른 애들이랑 애들 엄마들 이야기를 하는데 쌍욕을 하더라고. 자기랑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람들인데도 그러더라니까? 특히 성적 좀 좋은 애들을 두고 말이야. 그 나이 먹고 낯선 사람 앞에서 그렇게 입이 거친 여자는 또 처음 봤다."

라고 하셨다.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아 오히려 당신은 더 정중하게

"우리 딸이 철이 없어서 짝꿍이랑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그랬나 봅니다."라고 하셨다며.


그리고 나중에, 몇 년이 지나 우리 엄마가 그 아주머니를 다시 마주쳤을 때

그분이 엄마에게 사과하셨다고 한다. 그땐 좀 심했던 것 같다며.

(아니, 사과는 나한테 직접 하셔야 하는 것 아니신지...)






어린아이에게 이 사건은 큰 트라우마로 남았다.

원래 밖에서 싫은 소리 못 하던 나는 더욱 상대방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사소한 말 한마디도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고,

그것이 나를 위협해올지도 모른다는 잠재적 불안감.






(이제 와서 굳이 좋게 해석해보자면) 그분 덕분에 나는 같은 말도 조금 덜 기분 나쁘게 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눈치는 많이 보고 있다. 이것이 스스로를 얼마나 갉아먹는지 그 아주머니는 아마 모르시겠지?


타산지석으로, 절대 나는 기분을 그대로 드러내는 어른이 되지는 말자고 나 자신에게 약속했다.

대체로 이 약속은 지키고 있다.

내 감정은 내가 책임지는 사람이 되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렇지만 살다 보니 그런 노력을 받을 만한 가치도 없는 사람들도 있더라.

그저 내가 소중한 만큼 당신도 소중하니까.

서로를 지켜주자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뿐이니 내향인의 자그마한 배려를 우습게 보지 말아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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