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첫눈에 반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과 오랜 세월을 같이 하려면 그 사람의 성격, 취향 등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예쁘고 잘생긴 사람이라도 악취 나는 말만 늘어놓고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자기가 머물던 자리 정리조차 안 한다면 함께하는 인생을 꿈꾸기 어렵다. 그리고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이라도, 가장 가까운 부부로 20년을 같이 살아도 처음 보는 그 사람의 모습에 흠칫할 수 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이는 타인을 대할 때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종종 내가 나를 모르겠다는 게 문제다. 그 순간은 보통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 할 때, 위기가 찾아왔을 때, 인간관계에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널 때 슬며시 찾아와 나를 후회하게 만든다. 답을 알고 있으면서 왜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 왜 바보같이 그렇게밖에 말하지 못했을까, 왜 그렇게 모질게 대했을까, 왜 그렇게 집착했을까 등등. 누구나 한 번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휘둘려 상대방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경험이 있다. 반대로, 나는 대수롭지 않은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별 거 아닌 게 아니었던 경우도 있다. 그 사람의 그런 태도가 나에게는 유독 왜 이리 아프고 서럽게 느껴지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는 것이다.
자기 인생을 주체적으로 디자인해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은 본인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진심으로 자기를 사랑할 줄 안다. 사랑의 첫 단추는 알아가는 것이다. 길에서 마주친 첫눈에 반한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외치면 그 사람은 경계부터 할 것이다. 그보다는 먼저 나에 대해 차근차근 알아가도록 해주는 게 내 진심이 통하는 데 효과적이다. 나 자신을 사랑하자고 매일 노트에 쓰고 메신저 상태 메시지로 멋지게 올려놓는 일을 수없이 반복해봐도 내가 나를 잘 모른다면 허공에 외치는 메아리에 불과하다. 자아존중감이라 불리는 자존감의 시작은 자아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수용하는 "자기 보기"이다.
궁극적으로 내가 무엇을 갈망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이 나를 불안하게 하는지, 어떤 모양으로 살고 싶은지, 어디까지 상처를 받아도 일어날 수 있는지, 어디까지 저질러볼 수 있는지 등 나의 외적 조건과 능력이 아니라 내면의 역량을 재단해 봐야 나 자신을 거울로 한 번 봤다고 할 수 있다. 거울을 평생 한 번만 보고 사는 사람은 없다. 아침에 일어나서, 외출하기 전에, 화장실 갈 때마다, 화장을 고칠 때마다 거울을 보며 용모를 정돈한다. 이와 같이 삶의 현장에서도 계속해서 자기 보기를 해야 한다. 밀려드는 파도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끊임없이 부서지고 불타올랐다가 재로 변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내면이 단단한 금으로 제련된다.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내 앞에 던져지는 인생의 숙제들과 부딪히는 인간관계들을 쳐내기도 버거운데 관점을 안으로 돌려 나와의 싸움을 해야 하다니. 한 번만 눈감고 지나가면 내일의 해는 뜨니까 알코올로, 다른 사람으로, 운동으로, 기타 외적 행위로 넘겨보기로 한다. 괜찮다. 어쨌든 살아내고 있으니. 그러나 지금보다 나를 좀 더 사랑해주고 싶다면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라도 거울 앞에 서야 한다. 직면하는 순간이 자존감이 자라나는 시작점이다.
자기 보기가 잘 되는 사람은 대자연 앞에서 겸허히 자신과 타인을 수용한다. 타인을 두고 이리저리 평가하며 훈수를 두는 사람들 중에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다. 알지 못하니 스스로를 건강하게 사랑할 줄 모른다.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지 못하니 타인에게 내어줄 마음의 여유도 없고 타인의 내면 또한 볼 줄 모른다. 이들에게 본인의 방식대로 되돌려주면 오히려 누구보다 빠르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 이들은 주위의 기준과 사회의 관습의 틀 안에서 남들 사는 대로 하루하루 지내왔다. 어쩌다 보니 지금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똑바로 마주하는 고통을 지속적으로 외면해왔다. 무의식적으로 나의 결핍을 타인에게 투사하므로 남는 것은 상처뿐이다.
자기를 잘 알게 되면 과욕을 부리지 않기 때문에 크게 망할 위험이 줄어든다. 일이 잘 풀리면 다음 스텝을 묵묵히 준비하고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결단을 내린다. 내가 얼마나 연약하고 동시에 강한 사람인지 잘 알기 때문에 타인에게서도 겉을 보지 않고 내면을 본다. 인간관계에서 오해가 줄어들고 필요 이상의 에너지 소모를 하지 않는다.
자기 보기에는 왕도가 없다. 다만 수없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기를 경험해봐야 한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엉켜 도저히 풀어나갈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이다. 약을 먹고 심리치료를 받더라도 진심에서 우러나는 자기 보기를 지속해야 변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