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세요."
한창 힘겨운 순간에 이 말을 들으면 그래그래, 사실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 충분히 잘하고 있어.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며 애써 스스로를 위로해볼 수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인생은 언제나 예측하지 못한 변수로 가득하다.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고, 단 하나의 실수로 공든 탑이 무너지고,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도 고개 숙여야 하고,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녀도 넘을 수 없는 벽에 부딪히는 느낌일 때가 있다. 불의의 사고가 나고, 믿었던 사람을 하루아침에 잃고, 모두가 나를 외면하는 것 같을 때가 있다. 하염없이 밤을 지새우며 내일이 제발 오지 않았으면, 세상이 망해버리거나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좋겠을 때가 있다.
그때마다 흩날리는 바람 같은 가벼운 말들로 애써 바스러지는 멘탈을 뒤늦게 보듬어본다. 그러나 다음 위기는 또 언제 어떤 모습으로 나를 찾아올지 모를 일이다. 본질적으로 내 상태가 그대로이면 다음 위기에서는 타격에 무뎌질 뿐이다. 마카롱같이 달달한 말보다 실질적인 비포 애프터의 변화가 필요하다.
행복해지기 위해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미국의 의사이자 철학자인 윌리엄 제임스가 1890년대에 처음 사용한 자존감이라는 단어는 2030 세대에서 특히 화두이다.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오롯이 사랑할 줄 아는 빛나는 내 인생! 너무 멋지지 않은가.
하지만 애초에 자존감은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고 어떤 성과를 이루어낼 만한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인데, 높낮이를 측정할 수 있는 걸까?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인가? 오늘 나 자신이 뿌듯하고 누가 뭐래도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지고 목표한 일을 잘 이룰 수 있을 것 같아도 내일 가정에서, 일터에서, 사회에서 내 모습이 너무나 보잘것없고 초라해지고 하는 일마다 쪽박을 차서 우울하면 나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인가, 낮은 사람인가?
인간은 가변적이다. 기분도 마음도 손바닥 뒤집듯 바뀐다. 삶이 계산대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정상적으로 타인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존감을 가지고 있다. 다만 상황과 환경에 따라 크게 발현되거나 위축되어 힘을 못쓰는 것이다. 어떤 이는 평화롭고 안정된 환경에서 사랑받고 자라서 노력하지 않아도 쉽게 자존감을 느낄 수 있지만 어떤 이는 사연 많은 환경에서 자라 모진 풍파를 겪다 보니 자존감이 생소할 수 있다. 핵심은 자존감 뒤에 가려져 있는 자기 자신 본체이다.
처음에는 비슷하게 시작했어도 시간이 흐른 후 내면의 자아가 여전히 어린아이에 머무를 수도,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도 있다. 어린아이는 여전히 옛날처럼 외부 자극에 취약하고 어쩔 줄 모르며 자존감이 쉽게 요동친다. 성숙한 어른은 외부 자극에 역치가 높고 자존감을 컨트롤할 줄 알기 때문에 항상성을 유지한다. 50대 중년이라도 내면의 자아는 철없는 20대일 수 있고, 20대 청년이라도 내면의 자아는 무르익은 50대일 수 있다.
A sound mind in a sound body.라는 속담이 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튼튼하고 견고한 자아에 성숙한 자존감이 자리 잡는다. 표면의 자존감보다 실질적인 내면의 변화로 포커스를 옮겨볼 때다.